부모님과 걷기 좋은 '고즈넉한 고택'…지폐 주인공이 탄생한 '조선 최고령 한옥'
2026-03-17 1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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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 오죽헌, 신사임당·율곡의 자취를 보존하다
강원특별자치도 강릉시 죽헌동에 자리한 오죽헌은 집 둘레를 에워싼 대나무 줄기가 까마귀처럼 검은빛을 띤다고 하여 이름 붙여진 유서 깊은 유적지다. 이곳은 조선 시대를 대표하는 예술가 신사임당과 그의 아들이자 대학자인 율곡 이이가 태어난 곳으로 잘 알려져 있다. 조선 전기의 문신 최치운이 지은 이 가옥은 우리나라 주택 건축사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 가운데 하나로 손꼽히며, 그 가치를 인정받아 보물 제165호로 지정됐다.

오죽헌은 규모 면에서 정면 3칸, 측면 2칸의 단정한 구성을 이루고 있다. 지붕은 옆에서 바라보면 여덟 팔(八) 자 형태를 떠올리게 하는 팔작지붕으로 꾸며져 있어, 전체적으로 우아하고 안정감 있는 곡선을 드러낸다. 건물 전면을 기준으로 왼쪽 두 칸은 널찍한 대청마루를 두어 시원하고 개방적인 분위기를 살렸고, 오른쪽 한 칸에는 온돌방을 배치해 실제 생활 공간으로서의 기능을 갖추었다. 특히 처마를 받치는 부재를 새 부리처럼 간결하게 다듬은 익공계 양식을 적용해 화려함을 앞세우기보다 절제된 단아함을 보여주는 점이 인상적이다. 이러한 건축적 특징은 조선 초기 상류층 가옥이 지녔던 소박하면서도 엄정한 기풍을 오늘날까지 고스란히 전해준다.

경내를 천천히 거닐다 보면 신사임당이 율곡 이이를 낳기 전 용꿈을 꾸었다고 전해지는 몽룡실과 마주하게 된다. 이 공간은 단지 두 역사적 인물의 삶이 시작된 장소라는 상징성에만 머물지 않는다. 오랜 세월을 견뎌낸 목조 건물이 지닌 강인한 생명력과, 그 안에 축적된 시간의 깊이를 직접 체감하게 하는 장소이기도 하다. 마당 한편에서 계절의 변화를 알리는 배롱나무와 오죽헌의 상징인 검은 대나무 숲은 고택 특유의 고즈넉한 정취를 한층 더 깊게 만든다. 인위적인 장식을 최소화하고 자연과의 조화를 우선한 공간 구성은 방문객에게 단순한 관람 이상의 경험을 선사한다. 이곳에서는 잠시 걸음을 늦추는 것만으로도 정적인 휴식과 함께 역사와 전통을 되새기는 사유의 시간을 가질 수 있다.

오죽헌 경내에는 강릉시가 운영하는 오죽헌시립박물관도 함께 자리해 있어, 건축물 자체에 담긴 의미뿐 아니라 조선 시대의 예술과 학문, 인물사까지 폭넓게 살펴볼 수 있다. 관람 시간은 매일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이며, 입장은 오후 5시에 마감된다. 입장료는 개인 기준으로 성인 3000원, 청소년 및 군인 2000원, 어린이 1000원이다. 또한 65세 이상 어르신과 미취학 아동, 강릉시민 등은 관련 증빙서류를 지참할 경우 무료 관람이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