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로 존재하는 음식이었어?"... 충청도에만 있다는 '상상 초월 음식'
2026-03-17 16:35
add remove print link
제사상의 낯선 손님, 알고 보니 깊은 사연

프라이팬 위에서 지글지글 익어가는 흰 반죽. 그 위에 올라앉은 마른 멸치 한 마리. 처음 보는 사람이라면 눈을 비비고 다시 볼 법하다. 멸치볶음도 아니고 해산물전도 아닌 낯선 음식은 명절이나 제삿날 충청도 집안의 부엌에서만 조용히 등장한다. 다른 지역에 사는 사람이 처음 마주치면 십중팔구 고개를 갸우뚱한다. "이런 음식이 실제로 있는 거였어?"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이 전의 사진이 퍼질 때마다 달리는 댓글의 첫 반응은 대개 이런 식의 놀라움이다.
멸치전은 밀가루나 찹쌀가루로 만든 묽은 반죽을 둥글넓적하게 부치고, 그 위에 마른 멸치를 한두 마리 가지런히 올려 구워낸 음식이다. 찹쌀풀을 써서 부치면 전이 쫀득쫀득한 식감을 낸다. 집안이나 지역마다 재료의 조합이 조금씩 다른 것도 이 전의 특징이다. 청주에서는 쪽파와 씻은 김치, 미나리를 함께 넣기도 하고, 충주에서는 소금에 살짝 절인 배추 한 장을 얹는 방식이 전해진다. 쪽파 서너 줄기를 올린 전을 제사 때마다 봤다는 이들도 있다. 
한 가지 궁금증이 생긴다. 충북은 내륙 지방이다. 바다와 닿지 않는 곳에서 왜 굳이 멸치를 전 위에 올리게 됐을까. 충청도의 식문화를 다룬 기록에 따르면, 충남은 황해에 인접한 어장을 갖추고 있어 해물을 식재료로 활용하는 문화가 일찍이 발달했다. 마른 멸치처럼 장기 보관이 가능한 건어물은 내륙 깊숙이까지 유통될 수 있었고, 이런 조건이 내륙 지역의 제사 음식에까지 멸치가 스며드는 배경이 됐을 것으로 추측된다.
KBS '한국인의 밥상'에서도 멸치전이 짧게나마 소개된 바 있다. 마른 멸치로 부친 전이 바다가 없는 충북의 자연이 만들어낸 음식으로 묘사됐다. 다슬기날떡국, 뱃사공들의 해장떡국과 함께 충북 특유의 지형과 식재료가 빚어낸 결과물로 그려졌다.
유래담을 살피면 멸치전이 보다 흥미로워진다. 멸치전은 '보자기 전설'이라고 불러도 좋을 유래담을 품고 있다. 한 인터넷 이용자는 "돌아가신 분이 제삿날 오셨을 때 음식을 싸가실 수 있도록 보자기 개념으로 부친 것이라고 들었다"고 말한다. 고인이 음식을 싸서 돌아갈 수 있도록 넉넉한 마음으로 부쳐낸 전이란 얘기다.
다만 충청도인들의 반응도 크게 나뉜다. "충청도 출신인데 생전 처음 봤다"는 반응과 "우리 집에서는 제삿날마다 꼭 나왔다"는 반응이 맞선다. 청양·논산·대전 출신 중에는 이 전 자체를 모른다는 이들도 있다. 이처럼 충청도 안에서도 지역별, 집안별로 편차가 크다. 청주나 괴산, 증평 등 충북 내륙 지역에서는 친척 모임 때 반드시 이 전이 등장한다는 증언이 많은 반면 일부 충남 지역에서는 전혀 낯선 음식으로 여기는 이들도 있다. 멸치전이 충청도 전역의 공식 향토음식이라기보다는 충청도 안에서도 특정 지역과 집안의 전통으로 이어져 온 음식임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먹는 방식도 다양하다. 간장에 찍어 먹는 것이 기본이지만 살짝 말려 꾸덕하게 만든 뒤 전찌개에 넣으면 수제비 같은 식감으로 탈바꿈한다는 이들이 적지 않다. 탕국에 넣어 먹으면 진하고 구수한 국물이 우러나온다는 것도 멸치전을 즐기는 충청도 사람들 사이에서 익히 알려진 방법이다. 집에 가져와서 다시 빠짝 구워 먹으면 또 다른 맛이 난다는 이도 있다. 처음 봤을 때의 밋밋한 외양과는 달리 먹는 방법에 따라 다양한 풍미를 내는 것이 멸치전의 매력인 듯하다.
멸치전이 온라인에서 화제를 모은 데는 드라마도 영향을 미쳤다. 안재현이 출연한 주말드라마에서 재벌가 할머니가 손주며느리에게 멸치전을 만들라고 지시하는 장면이 나오면서 "저런 음식이 실제로 있었구나"라는 반응이 쏟아졌다. 드라마에서 멸치전은 고된 시집살이의 상징처럼 쓰였지만, 해당 장면이 방영된 뒤 충청도 출신들 사이에서 제 고향 음식이 드라마에 나왔다는 반가움과 웃음 섞인 반응이 이어졌다.
멸치전은 화려하지 않다. 어느 집안의 제삿날 부뚜막 앞에서 묵묵히 부쳐내던 손들이 빚어낸 이 음식은 그 소박함 자체만으로도 충청도 식문화의 결을 담고 있다. 꾸밈없이 수수한 음식 하나에 사람과 사람 사이의 정과 조상을 기리는 마음이 깃들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