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감 걸려 '40도 고열'인데도 출근하던 유치원 교사, 결국 사망
2026-03-19 1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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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감에 걸려도 쉬지 못한 유치원 교사, 무엇이 막았나
제도는 있는데 왜 못 쉬나…'눈치 문화'가 부른 비극
명절 준비와 각종 행사로 바쁜 시기에도 아픈 몸을 이끌고 출근한 끝에 숨진 유치원 교사의 사망 사건이 노동 현장의 ‘아파도 쉬지 못하는 문화’를 다시 드러냈다.
지난 18일 한겨레 보도에 따르면 경기도 부천시의 한 유치원에서 근무하던 20대 교사 A씨는 지난 1월 27일 B형 독감 판정을 받았음에도 사흘간 정상 출근을 이어갔다가 결국 중환자실에 입원한 뒤 약 2주 만에 숨졌다. 사망진단서에는 독감으로 인한 연쇄알균 독성쇼크 증후군과 폐 손상, 패혈성 쇼크 등이 사인으로 기록됐다.
유족과 의료계에 따르면 B형 독감은 단순한 감기 수준을 넘어 면역력을 크게 떨어뜨릴 수 있으며, 이로 인해 심각한 합병증이 동반될 위험이 있다. 특히 연쇄알균 감염이 겹칠 경우 독성쇼크 증후군으로 급격히 악화될 수 있는데, 이는 짧은 시간 안에 생명을 위협할 정도로 치명적이다.

문제는 A씨가 이러한 위험 신호 속에서도 충분한 휴식을 취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그는 독감 판정 이후에도 30일까지 출근을 이어갔고, 이후 상태가 급격히 악화되면서 조퇴 후 입원했다. 가족에게 보낸 메시지에는 “너무 아파서 눈물이 난다”, “열이 39도까지 오른다”는 호소가 담겨 있었지만, 실제로는 업무를 이어가야 했다.
유족은 “독감에 걸렸다면 선제적으로 쉬도록 해야 하는데 그런 조치가 없었다”고 주장했다. 반면 유치원 측은 “본인이 병가나 조퇴를 요청하지 않았고, 외관상 근무가 어려울 정도로 보이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또한 병가 사용 자체는 허용되고 있었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현장에서는 ‘쉴 수 있는 제도’와 ‘실제로 쉬는 것’ 사이의 간극이 크다는 지적이 나온다. 해당 유치원에서 근무한 경험이 있는 한 교사는 “아파서 쉬는 것이 가능하긴 하지만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다”며 “쉬고 돌아와도 ‘미안하다’는 말을 먼저 하게 되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특히 사건 당시 시기는 발표회, 졸업식, 입학식 준비가 겹치는 시기로 업무 부담이 집중된 시기였다. 유치원 교사들은 대체 인력 확보가 쉽지 않은 구조 속에서 동료에게 부담을 준다는 인식 때문에 병가를 적극적으로 사용하기 어렵다는 점도 문제로 지목된다.

제도적 한계 역시 영향을 미친다. 유치원 교사에게 적용되는 ‘교원휴가에 관한 예규’는 연가를 수업일을 피해 사용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어, 사실상 학기 중 휴가 사용이 제한되는 구조다. 실제 조사에서도 사립유치원 교사의 절반 이상이 “휴가를 제대로 사용하지 못한다”고 답했으며, 병가 제도가 아예 없다는 응답도 절반을 넘었다.
이 같은 환경은 질병 상황에서도 무리한 근무를 이어가게 만드는 구조적 요인으로 작용한다. 감염병이 유행하는 시기일수록 교사와 원생 간 접촉이 잦은 유치원 특성상 건강 악화 위험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노동 전문가들은 이번 사건이 개인의 선택이 아닌 구조적 문제에서 비롯됐을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노무법인 관계자는 “업무 환경과 질병 사이의 인과관계를 따져볼 필요가 있다”며 “특히 감염병 유행 상황에서 충분한 휴식이 보장되지 않았다면 산업재해로 인정될 여지도 있다”고 설명했다.
유족은 현재 업무상 재해 신청을 검토 중이며, 법적 대응도 이어갈 계획이다. 사건의 책임 소재는 향후 조사와 법적 판단을 통해 가려질 전망이다.
이번 사건은 단순한 개인의 안타까운 죽음을 넘어, ‘아프면 쉬어야 한다’는 기본적인 원칙이 현장에서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는 현실을 드러냈다. 제도적 보장뿐 아니라 실제로 눈치 보지 않고 쉴 수 있는 문화가 정착되지 않는 한, 유사한 비극은 반복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