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영동1985' 실제 모델…'고문기술자' 이근안 사망, 향년 88세
2026-03-26 1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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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근태 등 민주화 인사 고문 주도

군사정권 시절 민주화 인사들에 대한 수사를 맡아 ‘고문 기술자’로 악명을 떨친 이근안 전 경감이 숨졌다. 향년 88세. 박종철 군 고문치사 사건, 권인숙 양(전 의원) 성고문 사건과 함께 1980년대 군사정권 시절 발생한 3대 인권유린 사건 중 하나인 김근태 씨(전 의원) 고문 사건을 주도한 인물이다.
26일 경기일보에 따르면 그는 최근 건강이 악화해 서울의 한 요양병원에 입소했다가 전날 사망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근안은 1970~80년대 치안본부 대공수사관으로 활동하며 강압 수사와 고문을 주도했다. 전기 고문 등 가혹 행위를 통해 허위 자백을 받아냈다는 의혹이 잇따르며 ‘고문 기술자’라는 별칭으로 불렸다.
남민전 사건, 김근태 전 민청련 의장 고문 사건 등 다수 공안 사건에 연루됐고, 이른바 ‘서울대 무림사건’에서도 가혹 행위를 주도한 것으로 지목됐다. 당시 그는 이 사건과 관련해 1981년 내무부 장관 표창을 받기도 했다.
피해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그는 90kg의 거구에 떡 벌어진 어깨, 구릿빛 얼굴, 핏발 선 눈, 굵은 목, 솥뚜껑 같은 큰 손을 지닌 우락부락한 모습이었다고 한다.
노무현 정부 시절 보건복지부 장관을 지낸 김근태 전 의원은 고문 후유증 등으로 2011년 64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민주화 이후 과거사 정리가 진행되면서 이근안은 1988년 수배됐고 12년간 도피 생활을 이어가다 1999년 자수했다. 이후 고문 및 불법 구금 혐의로 기소돼 대법원에서 징역 7년과 자격정지 7년을 선고받고 복역했다.
출소 이후 이근안은 목사가 돼 공개 간증 등을 통해 과거를 반성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피해자들과 시민사회는 사과의 진정성에 의문을 제기하며 책임 있는 참회를 요구해 왔다.
그는 생전 자서전에서 “간첩과 사상범을 잡는 것은 애국이었다”라는 취지의 발언을 해 논란을 빚었다. 자신을 소재로 한 영화 ‘남영동 1985’에서 묘사된 고문 행위가 과장됐다고 주장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