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 없는 천사' 기념관 만드는 데 12억 쓰는 전주시...기부금보다 공사비가 더 많다

2026-03-31 1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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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년 익명 기부, 12억 기념관 건립이 정당한가
조용한 나눔의 가치 vs 나눔 문화 확산의 딜레마

전주시가 ‘얼굴 없는 천사’ 기념관 건립에 나서면서 나눔 문화 확산이라는 취지와 예산 적정성을 둘러싼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전주시에 따르면 시는 지난 13일 전북 전주시 중노송동에서 ‘얼굴 없는 천사’ 기념관 착공식을 열고 본격적인 사업에 돌입했다. 이 기념관은 2000년부터 26년간 매년 성탄절 전후로 익명 기부를 이어온 ‘얼굴 없는 천사’의 나눔 정신을 기리기 위한 공간으로, 국비와 지방비를 포함해 총 12억7000만 원이 투입된다. 오는 6월 완공을 목표로 지상 2층, 연면적 165.63㎡ 규모로 조성될 예정이다.

기념관 내부에는 1층에 기부자의 선행을 소개하는 전시 공간과 시민 휴게 공간이 마련되고, 2층에는 기부의 역사와 기록을 담은 자료실이 들어선다. 전주시는 이 공간을 단순한 전시 시설을 넘어 나눔과 기부 문화를 체험하고 확산하는 교육의 장으로 활용하겠다는 계획이다.

전주한옥마을 / 뉴스1
전주한옥마을 / 뉴스1

‘얼굴 없는 천사’는 이름과 직업 등 신원이 전혀 공개되지 않은 채 26년간 꾸준히 기부를 이어온 인물이다. 그가 지금까지 전달한 성금은 총 11억3488만2520원에 달한다. 매년 일정한 시기에 현금이 담긴 상자를 주민센터 인근에 두고 사라지는 방식으로 기부를 이어왔으며, 지난해 12월에도 9000만 원이 넘는 성금을 남긴 것으로 알려졌다.

이 성금은 그동안 소년·소녀 가장, 독거노인 등 지역 내 취약계층 7000여 가구에 전달됐고, 일부는 장학금 등으로 활용됐다. 전주 지역에서는 오랜 기간 이어진 이 익명의 선행이 ‘나눔의 상징’으로 자리 잡으며 전국적으로도 널리 알려졌다.

하지만 이번 기념관 건립을 두고는 찬반 의견이 뚜렷하게 엇갈리고 있다. 가장 큰 쟁점은 사업 규모와 필요성이다. 기부자가 26년간 전달한 총액보다 기념관 건립 비용이 더 크다는 점이 알려지면서 “상징성을 기리는 데 비해 과도한 예산이 투입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특히 전주에는 이미 ‘얼굴 없는 천사’를 기리는 다양한 시설과 공간이 존재한다. 노송동 주민센터 인근 지역은 ‘천사마을’로 불리고 있으며, 주변 도로는 ‘천사의 거리’로 조성됐다. 이 밖에도 기념비와 쉼터, 안내판 등이 설치돼 있고, 주민센터 내부에도 소규모 기념 공간이 운영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별도의 기념관을 새로 건립하는 것이 중복 투자라는 비판으로 이어지고 있다.

시민단체를 중심으로는 ‘선행의 본질’을 훼손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일부에서는 익명성과 조용한 나눔이 핵심 가치인 만큼, 이를 대대적으로 기념하고 시설화하는 것이 오히려 취지에 어긋날 수 있다는 지적이다. 한 시민단체 관계자는 “이 기부의 의미는 드러내지 않는 선행에 있는데, 지나친 기념사업은 본래의 정신을 흐릴 수 있다”고 비판했다.

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한 AI 생성 이미지
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한 AI 생성 이미지

반면 기념관 건립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의견도 적지 않다. 얼굴없는천사축제 조직위원회 측은 “전주 ‘얼굴 없는 천사’는 이미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나눔의 상징이 됐다”며 “기념관은 그 정신을 체험하고 다음 세대에 전달하는 교육 공간이자 공동체 회복의 거점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단순한 시설이 아니라 사회적 가치 확산의 기반이 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전주시는 이러한 논란에 대해 “기념관 하나만 놓고 보면 오해가 있을 수 있다”면서도 사업의 필요성을 설명했다. 시 관계자는 “현재 여러 곳에 분산된 기념 시설을 하나로 통합해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보다 효율적으로 활용하기 위한 목적이 크다”고 밝혔다. 또한 장기적으로는 노후화된 주민센터를 신축하고, 이를 행정과 문화 기능이 결합된 복합 공간으로 확장하는 계획도 검토 중이라고 덧붙였다.

이번 사업은 전임 시장 재임 시기인 2020년 말 결정돼 2021년부터 부지 매입과 설계 작업이 진행돼 왔다. 시는 당초 조용히 사업을 추진할 계획이었지만, 지역 주민들 사이에서 “기부의 의미를 더 널리 알려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되면서 착공식도 공개적으로 진행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결국 이번 논란은 ‘나눔을 어떻게 기릴 것인가’에 대한 사회적 질문으로 이어진다. 선행을 널리 알리는 것이 또 다른 선행을 촉진할 수 있다는 기대와, 조용한 나눔의 가치를 지켜야 한다는 인식이 맞서는 지점이다. 기념관이 나눔 문화를 확산하는 계기가 될지, 아니면 과도한 상징 사업으로 남을지는 향후 운영 방식과 시민들의 평가에 달려 있을 것으로 보인다.

home 김민정 기자 wikikmj@wikitre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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