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서울의 봄'에서 1300만 명 울린 실제 군인, 무공훈장 다시 받는다
2026-04-04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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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직에서 전사로 재분류된 김오랑 중령, 왜 43년 만에 공적을 재평가했나?
12·12 군사반란 당시 반란군에 맞서 항거하다 전사한 고 김오랑 중령에게 수여됐던 보국훈장이 취소되면서, 국가가 그의 공적에 맞는 최고 수준의 예우를 다시 정비하는 절차에 들어갔다.
정부에 따르면 국무회의는 고 김오랑 중령에게 추서됐던 ‘보국훈장’을 취소하는 안건을 의결했다. 이번 결정은 단순한 훈장 취소가 아니라, 고인의 공적을 재평가해 보다 높은 수준의 훈장을 수여하기 위한 사전 절차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김오랑 중령은 1979년 12·12 군사반란 당시 정병주 특전사령관의 비서실장으로 근무하던 중, 사령관을 체포하려는 반란군에 맞서 끝까지 저항하다 총격전 끝에 목숨을 잃었다. 당시 상황은 군 내부의 지휘 체계가 붕괴되는 극도의 혼란 속에서 벌어진 사건으로, 김 중령은 상관을 보호하고 군의 정통성을 지키기 위해 끝까지 자리를 지킨 인물로 평가받는다.

그는 사망 이후 1980년 2월 국립묘지에 안장됐고, 1990년 2월 중령으로 추서 진급됐다. 그러나 그의 희생이 국가적으로 본격 조명된 것은 비교적 뒤늦은 시기였다. 2012년 국회에서 ‘고 김오랑 중령 훈장 추서 결의안’이 발의되면서 재평가가 시작됐고, 그 결과 2014년 4월 보국훈장이 추서됐다. 당시에는 순직으로 분류된 상태에서 국가에 대한 공헌을 인정받은 조치였다.
이후 상황은 다시 변화했다. 국방부 중앙전공사상심사위원회는 2022년 고인의 사망 구분을 ‘순직’에서 ‘전사’로 변경했다. 이는 단순 사고나 직무 수행 중 사망이 아니라, 적 또는 반란 세력과의 교전 상황에서 전투 행위 중 사망했다는 점을 공식적으로 인정한 것이다. 이 판단은 김 중령의 행위를 보다 적극적인 ‘전투 공로’로 재정의한 결정으로 평가된다.
문제는 기존에 수여된 훈장이었다. 현행 상훈법 제4조에 따르면 동일한 공적에 대해 두 개 이상의 훈장을 중복 수여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에 따라 전사자로서 무공훈장을 새롭게 수여하기 위해서는 기존 보국훈장을 취소해야 하는 절차가 필요했다. 이번 국무회의 의결은 바로 이 법적 요건을 충족하기 위한 조치다.

정부와 국방부는 보국훈장 취소 이후, 전사자에게 수여되는 최고 수준의 예우인 무공훈장 추서를 추진할 방침이다. 무공훈장은 전투에서 공을 세운 군인에게 수여되는 훈장으로, 전사자의 희생과 공적을 가장 높은 수준으로 기리는 상훈 체계에 해당한다. 김 중령의 경우 반란군에 맞서 실질적인 교전 행위를 벌이다 사망한 점이 인정되면서, 이에 부합하는 훈장으로 격상되는 셈이다.
국방부는 이번 결정의 배경에 대해 “국가안보와 민주주의 수호를 위해 자신의 생명을 바친 고인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고, 공적에 걸맞은 최고의 예우를 다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는 단순한 행정 절차를 넘어, 과거 군사정권 시기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던 인물들에 대한 재조명 흐름과도 맞닿아 있다.
이번 조치는 역사적 사건 속 개인의 선택과 희생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에 대한 국가의 입장을 보여주는 사례로도 해석된다. 군 내부의 반란이라는 특수한 상황에서 정통 지휘 체계를 지키기 위해 행동한 인물에 대해, 그 공적을 ‘전사’로 규정하고 최고 수준의 예우를 부여하는 방향으로 정리되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김오랑 중령의 사례는 단순한 과거사가 아니라, 현재의 군 가치와 국가 정체성을 반영하는 지표로도 읽힌다. 그의 행적이 시간이 흐른 뒤 다시 평가되고, 그에 맞는 예우가 단계적으로 조정되고 있다는 점에서, 역사적 정의와 국가 보훈 체계의 변화가 어떻게 맞물려 작동하는지를 보여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