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폼나는 밥상] "한 끼에 이만큼 먹었다" 세계가 경악한 조선의 압도적 먹방#TOP3

2026-04-03 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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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대식가들, 현대 먹방의 원조가 되다
'냉면 3그릇 만두 100개'를 한 끼에?
세조가 인정한 대식가

폼나는 밥상

[역사 속 식탁] ''한 끼에 만두 100개?'' 세계가 경악한 조선 시대 ''레전드 먹방'' TOP 3

오늘날 대중의 큰 사랑을 받는 ''먹방'' 문화가 사실은 수백 년 전 조선 시대부터 왔을지도 모른다는 훙미로운 이야기가 있습니다. 현대의 독보적인 대식가들조차 조선 시대에 가면 평범한 축에 속할지도 모른다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로, 당시 대식가들의 클래스는 상상을 초월했습니다. 역사 기록 속에 남겨진 조선의 대표적인 ''푸드 파이터'' 3인과 그들의 놀라운 일화를 정리했습니다.

■ 명나라 재상을 당황하게 한 ''밥 사랑'', 이정구 선생
1599년, 명나라의 사신으로 간 이정구 선생은 현지 재상의 초대를 받았습니다. 재상이 자리를 비운 사이 가족들이 술과 안주를 산더미처럼 내왔으나, 선생은 이를 모두 비우고도 ''아직 식전이라 밥 먹으러 이만 가보겠습니다''라는 말을 반복했습니다. 당황한 가족들이 떡과 과일을 또 내왔지만 이 역시 순식간에 해치웠고, 결국 숙소로 돌아가 쌀밥을 따로 지어 먹었다는 기록이 전해집니다. 이 소식을 들은 명나라 재상은 ''조선 사람은 쌀밥을 먹지 않으면 굶었다고 한다는데, 미리 말 안 한 내 잘못''이라며 자책했을 정도로 선생의 밥 사랑은 대단했습니다.

■ 왕이 공인한 진정한 장사, 홍일동 선생
세조가 인정한 대식가 홍일동 선생의 기록은 더욱 놀랍습니다. 성현의 ''필원잡기''에 따르면 그는 '진관사'라는 절에 올라 떡, 국수, 밥, 두부국 등 총 16그릇을 한자리에서 비웠습니다. 더 놀라운 것은 절에서 내려오자마자 찐 닭 두 마리와 물고기국 세 주발, 생선회 한 쟁반에 술 마흔 잔을 또 먹었다는 점입니다. 이 소문을 들은 세조가 직접 불러 확인한 뒤 ''진짜 장사로구나''라며 감탄했다고 합니다. 훗날 그가 세상을 떠났을 때 사람들이 ''배가 터져 죽었다''고 생각했을 만큼 그의 식사량은 전설적이었습니다.

■ ''만두 100개''의 전설, 실학자 박제가 선생
정조 임금의 아낌을 받던 당대 최고의 브레인 박제가 선생은 반전의 대식가 면모를 지녔습니다. 그의 별명은 무려 ''냉면 세 그릇에 만두 100개''였습니다. 당시 만두는 아이 주먹보다 컸다고 하는데, 이를 앉은 자리에서 한 번에 해치웠다는 것입니다. 절친한 동료였던 이덕무 선생은 ''박제가는 단것만 보면 사족을 못 쓰고 내 숨겨둔 간식까지 몰래 훔쳐 먹으니 제발 좀 혼내달라''며 장난스럽게 일러바치는 편지를 남기기도 했습니다.

■ 세계가 놀란 조선의 ''위대(胃大)''한 역사
조선인들의 대식 문화는 비단 특정 인물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일반 백성들도 앉은 자리에서 참외 20개를 해치울 정도로 위장이 컸으며, 조선을 방문한 세계 여행가 '헤세 바르텍'은 ''조선인들은 대식가라는 점에서 전 세계 그 누구와도 비교할 대상이 없다''며 혀를 내둘렀습니다. 그러나 약 1.2L에 달하는 웅장한 고봉밥의 전설은 1970년대 정부의 쌀 소비 절약 정책과 공기 규격 표준화로 인해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큰 사발에 밥을 파는 식당은 영업 정지까지 시켰을 정도로 강력한 단속이었습니다.

■ 맺음말
비록 지금은 규격화된 작은 밥공기가 일상이 되었지만, 기록에 남은 조상들의 호쾌한 식사 모습은 우리 민족이 얼마나 '밥'에 진심이었는지를 보여주는 흥미로운 대목입니다.

home 허지혜 기자 hzezze04@wikitre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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