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탐구 집’ 동백숲 귀틀집부터 1938년 여관까지…세월 품은 집들의 사연

2026-04-14 2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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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탐구 집’ 4월 14일 방송 정보

자연 속 귀틀집에 정착한 배우와 1938년생 여관집을 되살린 집주인의 이야기가 방송에 담긴다.

이번 방송에서는 전남 장흥의 동백숲 작은 집과 전북 순창의 오래된 여관집을 통해 집이 한 사람의 삶을 어떻게 바꾸고 또 어떤 기억을 붙들어두는지 들여다본다. 화려하거나 편리한 공간은 아니지만 저마다의 시간과 선택이 켜켜이 쌓인 집들이 각기 다른 방식으로 등장한다.

EBS1 '건축탐구 집' 미리보기 페이지에서 제공하는 예고편 사진. / EBS 제공
EBS1 '건축탐구 집' 미리보기 페이지에서 제공하는 예고편 사진. / EBS 제공

동백숲에 반해 집을 산 배우의 귀틀집

전남 장흥의 동백나무 숲 사이를 따라가다 보면 전형적인 귀틀집 형태를 갖춘 작은 집 한 채가 모습을 드러낸다. 지금도 이런 집에 실제로 사람이 살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시선을 끄는 공간인데 이 집의 주인은 배우이자 춤꾼 송영탁 씨다.

송영탁 씨는 영화와 CF, 전통무용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해온 인물이다. 젊은 시절 우연히 찾은 신안의 섬 공연에서 사람들의 순수한 분위기와 자연 풍경에 매료된 뒤 시골 생활에 대한 동경을 품게 됐고 이후 인터넷에서 현재의 동백숲 작은 집 매물을 발견한 뒤 직접 매입했다. 분위기에 끌려 덜컥 집을 샀다는 표현이 어울릴 만큼 첫인상이 강하게 남았던 공간이었다는 설명이다.

이 집은 송영탁 씨가 세 번째 주인이다. 첫 번째 주인은 현재 별채로 쓰이고 있는 귀틀집을 직접 지은 인물이고 두 번째 주인은 지금의 본채를 지은 젊은 부부였다. 이들은 자연의 가치를 중시하는 생태 활동가로 알려졌으며 전기와 수도, 가스 없이 생활하는 방식으로 집을 꾸려갔다. 옹달샘에서 물을 길어다 먹고 장작불을 때 화덕에 밥을 짓고 시냇가에서 손빨래를 하는 식의 삶을 이어온 것이다. 이후 두 아이의 부모가 된 부부가 집을 떠나면서 송영탁 씨가 그 자리를 이어받게 됐다.

도시 생활에 익숙했던 송영탁 씨는 이전 주인들의 삶을 그대로 답습하기보다는 지킬 것은 지키고 바꿀 것은 바꾸는 방식으로 적응해왔다. 장작불 화덕 대신 가스레인지에서 밥을 짓지만 부엌 창밖으로 펼쳐진 풍경 앞에서는 소박한 식사 한 끼도 충분하다고 느낀다고 한다. 이 집은 그의 식생활만 바꾼 것이 아니다. 흙과 나무, 돌로 지어진 공간을 유지하기 위해 직접 수리와 보강에 나서면서 생활 방식 자체가 달라졌다.

장마철에는 습기로부터 집을 지키기 위해 바람이 통하도록 환풍구를 설치하고 고랑을 내 배수를 준비한다. 지붕에 올라가 기와를 손보는 일도 일상이고 금이 간 회벽을 메우거나 바깥 흙벽에 황토칠을 하는 작업도 반복된다. 연기 외에는 딱히 할 줄 아는 일이 없었다고 말하던 그는 어느새 집을 손보는 만능 수리공에 가까운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한 공연이 끝난 뒤 다음 무대를 기다리는 시간이 길어질 때면 배우의 일상은 때로 공백처럼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송영탁 씨는 이제 자연을 벗 삼아 또 다른 무대를 살아간다. 문명적 편의와 생태적 삶 사이에서 자신만의 균형을 찾아가는 세 번째 주인의 동백숲 작은 집이 이번 방송의 한 축을 이룬다.

EBS1 '건축탐구 집' 미리보기 페이지에서 제공하는 예고편 사진. / EBS 제공
EBS1 '건축탐구 집' 미리보기 페이지에서 제공하는 예고편 사진. / EBS 제공

1938년에 지어진 네모 여관집의 현재

전북 순창에는 1938년에 지어진 미음자 모양의 집과 1960년대 들어선 디귿자 형태의 여관이 함께 남아 있는 공간이 있다. 여러 시대의 흔적이 한자리에 겹쳐진 이 집의 주인은 한때 잘나가던 의류 사업가였지만 지금은 오래된 여관집을 지키며 사는 홍성순 씨다.

홍성순 씨는 백화점에서 20년 동안 의류업에 종사하며 도시 생활을 이어왔다. 그러던 중 아버지가 위독하다는 연락을 받고 급히 고향으로 내려왔지만 끝내 임종을 지키지 못했다. 아버지의 마지막을 함께하지 못한 기억은 오랫동안 마음에 남았고 결국 그는 연로한 어머니만큼은 곁에서 지키겠다는 마음으로 27년 만에 고향 순창으로 돌아왔다. 그렇게 다시 밟은 고향 땅에서 만나게 된 공간이 바로 이 오래된 여관집이었다.

처음 이 집은 오랫동안 사람이 살지 않아 쓰레기가 가득 쌓인 채 방치된 상태였다. 홍성순 씨는 주변의 도움을 받아 공간을 하나씩 정리하고 보존할 부분은 최대한 살리며 집을 다시 손봤다. 본채에는 일제강점기에 지어진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고 내부 구조에도 오래된 생활 방식이 배어 있었다. 부엌으로 쓰였던 공간은 지금 거실과 공용공간으로 바뀌었고 대청마루를 겸한 방들은 벽과 기둥을 일부 남긴 채 지금의 분위기를 만들었다.

과거 손님을 맞이했을 것으로 보이는 공간은 이제 집주인과 여행자가 쉬어갈 수 있는 서재가 됐다. 낡은 문틀은 손상된 부분만 수리해 다시 달았고 마당의 육각 블록도 일일이 걷어낸 뒤 다시 깔았다. 지붕 역시 보강을 위해 덧씌워졌던 기와를 모두 드러내고 짚과 황토를 사용해 예전 모습을 되살렸다. 가능한 한 원형을 유지하려는 선택이 곳곳에서 이어진 셈이다.

이런 홍성순 씨가 과감하게 바꾼 공간은 부엌이었다. 그는 13년 전 직접 콘크리트 싱크대를 만들었고 레미콘조차 들어오지 못하는 상황에서 손으로 시멘트를 개어 부어가며 작업을 이어갔다. 벽의 새 벽돌 느낌이 마음에 들지 않아 직접 흰 페인트를 덧칠해 다른 질감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오래된 공간을 무조건 과거에 묶어두기보다 필요한 부분은 자신의 방식으로 손본 결과다.

이 집을 쉽게 포기하지 못했던 이유는 마당 한가운데 있던 자목련 나무 때문이었다. 꽃을 좋아했던 어머니의 기억이 그 나무에 남아 있었고 생계를 위해 자목련을 팔아야 했던 과거 장면도 오랫동안 잊히지 않았다고 한다. 결국 어머니는 이 집의 자목련 꽃이 피는 모습을 여러 번 본 뒤 세상을 떠났고 홍성순 씨에게 이 집은 단순한 부동산이 아니라 가족의 시간이 남아 있는 공간이 됐다.

자연 속에서 새로운 생활을 배워가는 동백숲 귀틀집과 오랜 세월의 흔적을 보존하며 살아가는 1938년생 여관집. 이번 ‘건축탐구 집’은 서로 다른 두 집을 통해 공간이 사람의 삶과 기억을 어떻게 품는지 보여줄 예정이다.

home 정혁진 기자 hyjin27@wikitre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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