굴 18일 동안 깐 청년에게 달랑 '23만원' 준 사장 (전라남도 고흥)

2026-04-16 1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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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 브로커 개입과 강제 노동, 농어업 현장의 숨겨진 착취

전남 고흥의 한 굴 양식장에서 필리핀 청년이 하루 12시간 넘게 일하고도 월 20만 원대 임금을 받았다는 의혹이 사실로 확인되면서, 외국인 노동자를 둘러싼 구조적 착취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단순한 임금 체불을 넘어 불법 브로커 개입과 강제 노동 정황까지 드러나며 ‘현대판 노예’라는 표현까지 등장한 이번 사건은 농·어업 현장의 인권 사각지대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고용노동부가 15일 발표한 특별근로감독 결과에 따르면, 고흥군 소재 굴 양식장 2곳에서 외국인 계절노동자 26명을 상대로 총 3170만 원의 임금이 체불된 것으로 확인됐다. 세부적으로는 연장근로수당 약 1650만 원, 야간근로수당 약 1100만 원이 지급되지 않았고, 최저임금에도 미치지 못하는 급여를 지급해 발생한 미지급액이 약 420만 원에 달했다. 겉으로는 정상적인 고용 형태를 갖춘 것처럼 보였지만 실제 운영 방식은 법과 거리가 멀었다.

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한 AI 생성 이미지
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한 AI 생성 이미지

피해 사례 중 하나로 알려진 필리핀 국적 여성 A씨의 상황은 특히 충격적이다. 그는 농번기 인력 부족을 해소하기 위해 도입된 계절근로(E-8) 비자로 입국해 해당 양식장에서 일을 시작했다. 근로계약서에는 월 200만 원이 넘는 임금을 받기로 명시돼 있었지만, 현실은 전혀 달랐다. 사업주는 굴 무게 1㎏당 일정 금액을 지급하는 수당제를 적용했고, 목표 작업량을 채우지 못하면 사실상 제대로 된 임금을 받을 수 없는 구조였다.

A씨는 매일 새벽 3시에 일을 시작해 12시간이 넘는 노동을 이어갔다. 굴 껍데기를 까는 단순 작업이지만 반복성과 강도가 높은 일로, 장시간 노동이 이어질 경우 신체적 부담이 큰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럼에도 첫 달 그가 실제 손에 쥔 돈은 20만 원대에 불과했다. 숙식비 명목으로 일정 금액이 공제된 뒤 남은 금액은 약 23만 원 수준이었다. 계약서상 임금과는 큰 차이가 나는 금액이다.

더욱 문제가 된 부분은 계약 외 노동 강요와 협박 정황이다. 쉬는 날로 예정된 날에도 A씨는 유자 농장으로 보내져 일을 해야 했고, 업주는 “목표를 채우지 못하면 본국으로 돌려보내겠다”는 취지의 발언을 하며 압박을 가한 것으로 전해졌다. 외국인 노동자의 체류 자격이 고용주에게 크게 의존하는 구조를 악용한 셈이다.

이 같은 구조에는 불법 브로커도 깊이 관여하고 있었다. 노동부 조사 결과, 외국인 노동자들은 임금을 고용주로부터 직접 받지 않고 브로커를 통해 전달받는 방식에 놓여 있었다. 이는 근로기준법상 ‘직접지급 원칙’을 위반한 것이다. 브로커들은 노동자 1명당 매월 약 20만 원씩을 공제했고, 이런 방식으로 총 700만 원가량을 중간에서 빼돌린 것으로 조사됐다.

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한 AI 생성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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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은 단순히 금전만 챙긴 것이 아니었다. 노동자들의 작업량을 매일 확인하고, 이탈 여부를 감시하는 등 사실상 관리·통제 역할까지 수행한 것으로 파악됐다. 그러나 이들에겐 외국인 노동자를 관리할 법적 권한이 전혀 없다. 한 브로커는 조사 과정에서 혐의를 인정했지만, 다른 한 명은 이를 부인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장 전반의 노동 환경 역시 열악했다. 근로조건이 명확히 기재되지 않거나 서면으로 교부되지 않은 사례가 있었고, 임금대장 작성과 임금명세서 제공 의무도 지켜지지 않았다. 작업장에는 안전난간이 설치되지 않았고, 사다리 등 설비도 부실하게 관리되는 등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사항도 다수 확인됐다. 노동부는 이에 대해 과태료를 부과하는 한편, 고용주와 브로커를 입건해 추가 조사를 진행 중이다.

문제는 이러한 사례가 특정 사업장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노동부가 고흥군 일대에서 외국인 계절노동자를 고용한 농·어업 사업장 5곳을 추가로 점검한 결과, 모든 사업장에서 노동관계법 위반 사항이 확인됐다. 이들 사업장에서 발생한 임금 체불 규모도 2,320만 원에 달했다. 일부 사업장에서는 여전히 브로커를 통한 임금 지급 구조가 유지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이 16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세종대로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노동안전 관계장관회의에서 공공부문 도급 운영 개선방안에 대해 모두 발언을 하고 있다. / 뉴스1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이 16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세종대로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노동안전 관계장관회의에서 공공부문 도급 운영 개선방안에 대해 모두 발언을 하고 있다. / 뉴스1

이처럼 구조적인 문제가 반복되는 배경에는 외국인 계절노동자 제도의 허점이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단기간 인력을 충원하기 위해 도입된 제도지만, 현장 관리와 감독이 충분히 이뤄지지 않으면서 오히려 취약한 노동 환경을 고착화시키는 결과로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언어 장벽과 체류 자격 문제로 인해 노동자들이 부당한 대우를 받아도 문제를 제기하기 어려운 구조가 근본적인 원인으로 꼽힌다.

정부는 사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대응에 나섰다. 고용노동부는 이달부터 5월 말까지 외국인 노동자 인권침해 집중 신고기간을 운영해 유사 사례를 추가로 발굴하겠다는 방침이다. 신고가 접수될 경우 즉각적인 조사와 함께 사업장 감독을 병행해 위법 행위에 대해서는 엄정 조치할 계획이다.

최근에는 외국인 노동자를 대상으로 한 폭력 사건도 이어지고 있다. 경기 화성의 한 도금업체에서 사업주가 외국인 노동자를 향해 에어건을 쏴 다치게 한 사건이 알려지며 사회적 공분을 산 바 있다. 이처럼 노동 현장에서의 인권 침해가 잇따르자 정부도 대응 수위를 높이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폭력과 차별은 결코 용납될 수 없는 범죄라고 강조하며, 관계 부처에 철저한 대응을 지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전문가들은 단속 강화와 함께 제도 개선이 병행되지 않으면 유사한 피해가 반복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한다. 안정적인 인력 수급이라는 명분 뒤에 가려진 노동 현실을 바로잡기 위한 보다 근본적인 접근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home 김민정 기자 wikikmj@wikitre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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