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 한복판에 이런 곳이?…역에서 5분, 빌딩 숲속 '500년' 세계유산 정체

2026-04-17 18:18

add remove print link

서울 강남에서 만나는 유네스코 세계유산, 선릉과 정릉

서울 강남 한복판에는 빌딩 숲과 나란히 푸른 숲이 자리하고 있다. 완만한 능선과 숲길이 이어지는 이곳은 조선 시대 왕과 왕비가 잠든 왕릉이다. 도심의 분주한 흐름 속에 있지만, 경내로 들어서면 바깥 풍경과는 다른 시간의 결이 느껴진다.

선릉과 정릉(선정릉) / Johnathan21-Shutterstock.com
선릉과 정릉(선정릉) / Johnathan21-Shutterstock.com

서울 강남구 삼성동에 있는 '선릉'과 '정릉'은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된 조선왕릉이다. 조선 제9대 임금 성종과 그의 계비 정현왕후 윤 씨의 능인 선릉, 그리고 제11대 임금 중종의 능인 정릉을 합쳐 보통 선정릉이라 부른다. 이곳은 사적 제199호로 지정돼 국가 차원의 보존과 관리가 이뤄지고 있다. 주변이 상업 시설과 업무 빌딩이 밀집한 강남 도심이지만, 내부로 들어서면 울창한 숲과 넓은 능역이 펼쳐져 전혀 다른 분위기를 만든다. 지하철 선릉역과 선정릉역에서 도보로 접근할 수 있어 시민들에게는 역사 교육의 현장이자 도심 속 산책 공간으로 자리하고 있다.

선릉은 성종과 정현왕후의 능이 각각 다른 언덕에 놓인 동원이강릉 형식이다. 정자각을 중심으로 왼쪽 언덕에는 성종이, 오른쪽 언덕에는 정현왕후가 안장돼 있다. 성종은 조선 전기 통치 체제를 정비한 군주로 평가된다. 재위 기간에는 경국대전을 완성해 국가 운영의 틀을 정리했고, 홍문관을 설치해 학문과 언론 기능을 강화했다. 1494년 성종이 승하한 뒤 이듬해인 1495년에 지금의 자리에 능이 조성됐다. 본래 이곳은 세종의 아들 광평대군의 묘역이 있던 자리였으나 왕릉 부지로 결정되면서 광평대군의 묘는 현재의 강남구 수서동으로 옮겨졌다. 이후 1530년 정현왕후가 세상을 떠나 성종의 능 옆에 안장되면서 오늘날 선릉의 구성이 완성됐다.

선정릉   / trabantos-Shutterstock.com
선정릉 / trabantos-Shutterstock.com

선릉의 구조를 보면 조선왕릉의 전형적인 공간 배치를 확인할 수 있다. 진입부에는 성역의 시작을 알리는 홍살문이 서 있고, 여기서 제향 공간인 정자각까지는 향로와 어로가 이어진다. 박석이 깔린 두 갈래 길 가운데 약간 높은 쪽인 향로는 제향 때 향과 축문을 들고 가는 길이고, 오른쪽의 낮은 길인 어로는 임금이 걷는 길이다. 능역의 중심 건물인 정자각은 위에서 보면 정(丁)자형 평면을 이루며, 이곳에서 국왕의 제례가 거행된다. 능침 주변에는 문석인과 무석인이 배치돼 있고 석양과 석호 같은 석물들이 놓여 왕릉을 지키는 상징적 구실을 한다. 특히 성종의 능은 조선 전기 왕릉 조각 양식을 살펴볼 수 있는 사례로 꼽힌다. 병풍석에 새겨진 십이지신상은 당시의 조각 수준과 왕릉 조성 문화를 보여주는 자료다.

선릉에서 숲길을 따라 조금 더 걸어가면 중종의 능인 정릉에 닿는다. 정릉은 왕 한 사람만 모신 단릉 형식이다. 중종은 1544년 승하한 뒤 처음에는 경기도 고양시 서삼릉 권역 안의 희릉 옆에 묻혔다. 희릉은 그의 두 번째 왕비 장경왕후의 능이다. 그러나 중종의 세 번째 왕비였던 문정왕후의 뜻에 따라 1562년 정릉을 현재의 위치로 옮겼다. 문제는 새로 옮긴 자리가 주변보다 지대가 낮아 비가 오면 침수 피해가 반복됐다는 점이다. 결국 문정왕후는 사후에 이곳에 묻히지 못하고 노원구의 태릉에 홀로 안장됐다. 이 때문에 정릉은 중종이 홀로 잠든 왕릉으로 남게 됐다.

선정릉 / Joshua Davenport-Shutterstock.com
선정릉 / Joshua Davenport-Shutterstock.com

선릉과 정릉은 조선 왕실이 겪은 수난의 흔적도 함께 품고 있다. 1592년 임진왜란 당시 왜군에 의해 능이 훼손되고 왕의 시신이 담겼던 재궁이 불에 타는 피해를 입었다. 전쟁 중이던 1593년 조정은 새 재궁을 마련하고 다시 장례를 치러야 했다. 이후에도 선정릉은 오랜 세월 동안 훼손과 정비, 복구를 거치며 현재의 모습을 유지해 왔다. 오늘날 경내를 걷다 보면 정돈된 숲과 봉분, 석물이 먼저 눈에 들어오지만, 그 배경에는 여러 시대를 지나며 이어진 보존의 시간이 쌓여 있다.

선정릉이 도심 속 문화유산으로 주목받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역사 공간과 자연 경관이 함께 어우러져 있다는 점이다. 봄이면 산책로 주변으로 벚꽃과 진달래가 피고, 여름에는 녹음이 짙어지며, 가을에는 단풍이 숲길의 분위기를 바꿔 놓는다. 겨울에는 잎이 떨어진 숲 사이로 능선과 봉분의 윤곽이 한층 또렷하게 드러난다. 경내에는 수령이 500년이 넘는 것으로 추정되는 은행나무도 서 있다. 높이 약 24m에 이르는 이 나무는 왕릉 조성 이후 오랜 시간을 함께해 온 존재로 거론된다. 계절에 따라 달라지는 숲의 색과 왕릉의 형태가 겹쳐 보여 선정릉은 같은 장소라도 방문 시기에 따라 다른 인상을 남긴다.

선정릉 / Takashi Images-Shutterstock.com
선정릉 / Takashi Images-Shutterstock.com

산책로를 따라 걷다 보면 선정릉의 지형과 식생도 자연스럽게 눈에 들어온다. 능역을 둘러싼 숲에는 소나무가 많이 자라고 있으며, 이 나무들은 봉분과 제향 공간을 감싸는 배경을 이룬다. 완만한 흙길과 잔디, 숲이 이어져 있어 걷기에 큰 부담이 없고, 능 주변을 천천히 둘러보는 데에는 약 1시간에서 1시간 30분 정도가 걸린다. 곳곳에 벤치가 마련돼 있어 쉬어 가기에도 무리가 없다. 강남의 높은 건물과 차량 흐름이 가까운 거리에 있지만, 안쪽 숲길에서는 비교적 차분한 분위기 속에서 걸음을 이어갈 수 있다. 고층 빌딩이 둘러선 도심 한가운데 조선왕릉의 숲길이 놓여 있다는 점은 선정릉이 지닌 뚜렷한 특징이다.

주변 명소와 연계해 둘러보기 좋은 점도 선정릉의 장점이다. 도보 이동권 안에는 코엑스가 있다. 코엑스에는 별마당도서관, 전시장, 아쿠아리움, 쇼핑 시설 등이 모여 있어 선정릉 관람 전후로 함께 둘러보기 좋다. 별마당도서관은 대형 서가와 개방감 있는 내부 구조로 많은 방문객이 찾는 공간이다. 조금 더 범위를 넓히면 삼성동 일대 상업지구와 신사동 가로수길도 연계할 수 있다. 역사 유적과 현대적인 도시 공간이 가까운 거리 안에서 맞닿아 있다는 점은 선정릉이 지닌 입지적 특징 가운데 하나다. 한쪽에서는 조선왕릉의 배치와 석물을 살피고, 다른 한쪽에서는 서울의 현대적인 도시 풍경을 접할 수 있기 때문이다.

먹거리 역시 이 일대를 찾는 사람들이 함께 고려하는 요소다. 강남 일대에는 전통 한식부터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한식, 카페와 디저트 공간까지 선택지가 다양하다. 서울의 대표적인 음식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설렁탕은 오래 끓인 소뼈 국물에 밥이나 국수를 곁들여 먹는 음식으로, 관람 뒤 식사 메뉴로도 무난하다. 봄철에는 달래, 냉이, 쑥 같은 제철 식재료를 활용한 한정식이나 비빔밥을 내는 식당도 적지 않다. 서울식 불고기 역시 강남 일대에서 비교적 쉽게 접할 수 있는 메뉴다. 선정릉 자체가 향토 음식 여행지라고 보기는 어렵지만, 역사 유적 관람과 식사를 함께 계획하기에는 편리한 입지다.

선정릉 전경 / 연합뉴스
선정릉 전경 / 연합뉴스

방문 전에는 운영 시간을 미리 확인하는 것이 좋다. 관람 시간은 계절에 따라 달라진다. 3월부터 10월은 오전 6시부터 오후 9시까지, 11월부터 1월은 오전 6시 30분부터 오후 5시 30분까지, 2월은 오전 6시부터 오후 6시까지 운영한다. 입장 마감은 운영 종료 1시간 전이다. 매주 월요일은 정기 휴무일이다. 입장료는 내국인 기준 만 25세부터 64세까지 1000원이며, 외국인은 만 19세부터 64세까지 동일하다. 자세한 운영 시간과 무료 혜택 등은 궁능유적본부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교통편은 지하철 이용이 편리하다. 2호선과 수인분당선이 지나는 선릉역 10번 출구에서 정문까지는 도보로 약 5분이면 충분히 닿는다. 9호선과 수인분당선이 지나는 선정릉역 3번 출구에서도 걸어서 약 15분 정도면 도착할 수 있다. 주차장은 마련돼 있지만 공간이 협소하고 주변 도로 사정도 혼잡한 편이어서 승용차보다는 대중교통 이용이 수월하다. 강남 중심부라는 위치를 고려하면 짧은 시간 안에 방문 일정을 짜기 좋은 문화유산이기도 하다. 직장인들이 점심시간이나 퇴근 후 가볍게 산책을 하러 들르기도 하고, 주말에는 가족 단위 방문객과 연인들의 발길도 이어진다.

관람할 때는 몇 가지 유의할 점이 있다. 선정릉은 시민들이 산책하는 공간으로 자주 이용되지만, 본래는 왕실의 장례와 제례가 이뤄지던 장소다. 음식물 섭취와 돗자리 사용은 제한되며, 반려동물 동반 입장도 허용되지 않는다. 자전거와 킥보드 같은 이동 수단의 반입도 금지된다. 정해진 관람로를 벗어나지 않고 조용히 둘러보는 태도가 필요하며, 석물과 건축물을 훼손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선정릉 / Joshua Davenport-Shutterstock.com
선정릉 / Joshua Davenport-Shutterstock.com

선정릉을 걷다 보면 서울이라는 도시가 가진 시간의 층위를 새삼 느끼게 된다. 자동차와 업무 빌딩이 빽빽하게 들어선 강남 한가운데에 500년 전 왕릉이 남아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서울의 복합적인 성격이 드러난다. 이곳에서는 조선 전기 국왕의 통치와 제도, 왕실의 장례 문화, 임진왜란의 상처, 왕릉 보존의 역사까지 한 자리에서 살펴볼 수 있다. 동시에 숲길을 걸으며 계절 변화와 도심 속 녹지의 의미도 함께 체감하게 된다. 역사 학습과 산책, 휴식이 한 공간 안에서 이어진다는 점은 선정릉의 큰 장점이다.

가족 단위 방문객에게는 조선왕릉의 구조와 의미를 익히는 현장 학습 공간이 될 수 있고, 직장인에게는 잠시 걸으며 호흡을 고를 수 있는 도심 속 녹지로 기능한다. 혼자 찾는 이들에게는 비교적 조용한 분위기 속에서 머무를 수 있는 장소가 되기도 한다. 선정릉의 가치가 큰 이유는 이용 방식이 다양하면서도 공간의 본래 성격이 분명하게 유지된다는 데 있다. 서울의 수많은 명소 가운데 선정릉은 화려한 볼거리보다는 오래 남은 시간의 질서를 보여주는 곳에 가깝다.

봉분의 형태와 정자각의 배치, 석물의 모습, 숲길의 흐름을 따라가다 보면 조선왕릉의 의미를 자연스럽게 살펴보게 된다. 강남의 빠른 흐름과는 다른 호흡으로 걷고 싶을 때, 혹은 서울이 품은 오래된 시간을 직접 확인하고 싶을 때 선정릉은 차분히 둘러보기 좋은 공간이다. 도심 속 숲으로 보기에는 역사적 깊이가 있고, 역사 유적으로만 보기에는 일상 가까이에 놓여 있다. 계절에 따라 풍경이 달라진다는 점도 선정릉의 특징이다.

선릉과 정릉(선정릉) / 구글 지도
home 이영란 기자 yrlee31@wikitree.co.kr

관련기사

NewsChat

NewsCha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