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첨돼도 살 돈이 없다”…5개월새 26만명이 떠난 '청약통장'
2026-04-17 1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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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양가 급등·대출 규제 이중고에 청약 시장
사실상 현금 부자만의 리그
청약통장 가입자 수가 5개월 만에 26만 명 넘게 이탈했다.

17일 한국부동산원 청약홈에 따르면 올해 3월 말 기준 청약통장(주택청약종합저축·청약저축·청약부금·청약예금) 가입자는 2605만1929명으로, 지난해 10월 말 2631만2993명에서 26만1064명이 이탈했다. 한 달 전인 2월 말과 비교해도 3만5575명이 줄었다. 1년 전인 지난해 3월(2643만 명대)과 비교하면 38만156명이 통장을 해지한 셈이다.
청약통장은 한때 '로또 청약' 열풍과 함께 가입자가 빠르게 불어났다. 2019년 11월 분양가상한제 도입이 예고되자 서울을 중심으로 시세보다 수억원 싸게 새 아파트를 받을 수 있다는 계산이 퍼지면서 통장 개설이 줄을 이었다. 2019년 12월 2550만7354명이던 가입자는 이듬해 말 2722만4983명으로 불어났고, 2022년 6월에는 2859만9279명으로 정점을 찍었다. 하지만 이후 계속 줄어 현재까지 200만 명 이상이 이탈한 상태다.
감소 흐름은 수도권에서 두드러진다. 서울은 지난해 10월 642만5413명에서 올해 3월 635만9013명으로 6만6400명이 줄었다. 인천·경기는 같은 기간 872만7128명에서 863만3226명으로 9만3902명 감소했다. 수도권 이탈 인원이 전체 감소분의 61.4%를 차지한다.

이탈의 배경은 분양가 급등과 대출 규제 강화의 이중고다. 서울 강남권은 물론 비강남권까지 분양가가 25억원을 넘는 단지가 속출하면서, 청약에 당첨되더라도 실제로 계약을 포기해야 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지난 3일 분양한 노량진 '라클라체 자이 드파인'은 가장 작은 59㎡ 2층 가구 분양가가 19억5660만원이었다. 거래가액 15억원 초과 시 주택담보대출 한도가 4억원으로 제한되는 탓에 당첨자가 스스로 마련해야 할 자금은 최소 15억원이다. 84㎡는 분양가가 25억원을 넘어 주담대 한도가 2억원으로 줄어드는 만큼, 현금 23억원을 손에 쥐어야 입주가 가능하다. 수억원의 현금을 손에 쥐고 있지 않으면 청약에 당첨되더라도 실제 계약으로 이어지기 어려운 구조다.
분양가 상한제가 적용된 단지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30일 분양한 '이촌르엘'은 가장 저렴한 100㎡ 가구의 분양가가 25억9200만원으로, 주담대 한도 2억원을 감안하면 현금 23억원을 확보해야 잔금을 치를 수 있다.
같은 날 분양을 시작한 서초구 잠원동 '오티에르 반포' 역시 84㎡ 분양가가 25억1500만원부터 시작하는데, 일반청약 43가구 모집에 3만540개의 통장이 몰려 평균 710.2대 1을 기록했다. 높은 경쟁률 이면에는 분양가 상한제로 인한 시세차익 기대가 자리하고 있어, 청약 경쟁은 사실상 자금력을 갖춘 수요자들만의 싸움으로 흘러가고 있다.
당첨 가점 인플레이션도 실수요자를 밀어내는 요인이다. 서초구 '아크로 드 서초' 59㎡ C형의 당첨 가점은 84점 만점이었다. 이 점수는 무주택 기간 15년 이상(32점), 청약통장 가입 기간 15년 이상(17점), 본인 제외 부양가족 6명 이상(35점)을 모두 충족해야 받을 수 있다. 7인 이상 가족이 15년 넘게 무주택 생활을 유지해야 가능한 점수다.
'더샵 신길센트럴시티' 84㎡ B형은 당첨 커트라인이 79점, '더샵 프리엘라'도 최고 70점을 기록하는 등 선호 단지일수록 당첨 가점이 60점대 후반에서 70점대 이상으로 치솟고 있다. 지난해 서울 1순위 청약자 60만4481명 가운데 42만8416명(71%)이 강남 3구(서초·강남·송파) 분양 단지에 쏠린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가점도, 자금도 모두 갖춰야 당첨이 가능한 시장이 됐다.
대출 규제는 이 장벽을 더 높인다. 중도금 대출에서 LTV 40%까지 받더라도 잔금 대출 단계에서 거래가액에 따라 한도가 줄어들고 DSR 규제까지 적용된다. 청약통장 금리가 평균 3% 수준에 머물고 있고 투자 대안도 늘어난 점 역시 가입 유인을 약화시키는 배경으로 꼽힌다. 정부가 월 납입 인정금액을 25만원으로 상향했지만 25억원을 넘는 분양가 앞에서는 실효성이 미미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일각에서는 이번 감소세가 구조적 붕괴가 아닌 일시적 조정일 수 있다고 본다. 10년 전과 비교하면 가입자 규모는 여전히 큰 편이고, 허수 수요가 빠진 이후에는 실수요자 중심으로 재편되면서 감소세가 완화될 수 있다는 시각이다.
하지만 고유가·고환율·고금리 속에서 공급 감소까지 겹쳐 주택가격 상승 압력이 계속되는 한 구조가 바뀔 여지는 크지 않다. 당첨 가점은 사실상 만점에 수렴하고, 분양가는 수십억원대로 치솟고, 대출 한도는 쪼그라든 상황에서 청약통장을 수십 년 유지해도 자금력이 없으면 당첨 후 포기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 달라지지 않는 한, 가입자 이탈은 당분간 멈추지 않을 전망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