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슨 철길에 '하얀 눈'이 내렸나… 평소엔 닫혀있다가 1년에 딱 한 번만 열리는 '이 길'
2026-04-21 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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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 팔복동 '이팝나무 철길'
해마다 5월이 되면 전북 전주 팔복동 산업단지 일대가 백색의 터널로 뒤바뀐다. 회색빛 콘크리트 사이를 가로지르는 철길 위로 이팝나무 꽃이 마치 쌀밥처럼 소복이 쌓이는 이곳은 어디일까?

전주 팔복동 이팝나무 철길이다.
이곳은 단순한 관광지를 넘어 한국 현대사의 한 페이지를 품고 있는 공간이다. 공식 명칭은 '북전주선'으로, 1968년 전주 산업단지가 조성되면서 원자재와 생산 제품을 실어 나르기 위해 만들어진 인입 철도이다. 과거 노동자들의 땀방울이 서려 있던 투박한 산업 현장이 관광 명소로 재탄생했다.
녹슨 철길과 하얀 이팝나무의 조화


수십 년 동안 거친 화물열차가 오가며 전북 지역의 경제 동력을 책임졌던 이 길은 시간이 흐르며 쓰임새가 줄어들었다. 하지만 철로 주변에 심겨진 이팝나무들이 세월과 함께 자라나면서 수많은 이들의 발길을 붙잡는 감성적인 산책길로 탈바꿈했다. 녹슨 철길과 하얀 꽃터널이 대비를 이루는 기막힌 절경을 만들어낸다.
이팝나무는 꽃이 핀 모양이 사발에 담긴 흰 쌀밥(이밥) 같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멀리서 보면 나무 전체에 하얀 눈이 내려앉은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풍성한 개화가 특징이다. 팔복동의 이팝나무는 수십 년간 한자리를 지켜온 덕분에 크기와 밀도가 다른 지역의 가로수와는 차원이 다른 압도적인 풍경을 자랑한다.
특히 철길을 따라 약 600m가량 이어지는 구간은 양옆의 이팝나무 가지가 서로 맞닿아 자연스러운 터널을 형성한다. 바람이 불 때마다 꽃잎이 눈송이처럼 철길 위로 떨어지는 모습은 영화 속 한 장면을 방불케 한다. 인위적으로 조성된 공원에서는 느낄 수 없는 세월의 흔적과 자연의 조화가 이곳만의 독특한 아우라를 완성한다.
2026 전주이팝나무 축제

팔복동 이팝나무 철길은 평소 화물열차가 실제로 운행되는 노선이다. 평소에는 안전상의 이유로 일반인의 출입이 엄격히 통제되지만, 꽃이 만개하는 시기에 맞춰 전주시와 코레일이 협력해 한시적으로 개방 행사를 진행한다. 올해 개방 기간은 오는 25~26일과 다음 달 1~3일 등 총 5일이다. 아울러 팔복예술공장 일대 북전주선 철길에서 '2026 전주이팝나무 축제'를 개최한다. 개막식은 다음 달 1일 오전 10시에 열린다.
올해로 3회째를 맞은 이 축제는 한국철도공사 전북본부와 협약에 따라 평소 출입이 제한된 철길 구간을 개화 시기에 맞춰 개방하는 것이 핵심이다. 개방 구간은 기린대로∼신복로(630m)와 기린대로∼팔복로(670m) 구간이며, 운영 시간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다.
특히 팔복예술공장 주변 금학교∼신복로 약 400m 구간은 오후 9시까지 개방해 조명과 어우러진 이팝나무 야경을 선사한다. 축제장에는 지역 기업과 단체가 참여하는 음식·체험 부스 30여 개가 설치되며 버스킹도 진행된다. 또 축제 기간 팔복예술공장의 마르크 샤갈 특별전과 제27회 전주국제영화제가 동시에 열려 관광객들에게 풍성한 볼거리를 제공할 전망이다.
인근 산단 입주 기업들은 방문객 편의를 위해 공장 부지를 임시 주차장으로 제공하며 축제 성공에 힘을 보태기로 했다. 시는 안전사고 예방을 위해 지정된 개방 시간 외 무단출입하면 과태료를 부과하는 등 단속을 병행한다.
찾아오는 길
자차로 팔복동 이팝나무 철길을 방문할 때는 내비게이션에 '팔복예술공장'을 검색하면 편리하다. 과거 폐공장을 예술 공간으로 리모델링한 곳으로, 철길 바로 옆에 위치해 있어 주차와 관람의 거점이 된다. 다만 축제 기간에는 많은 인파가 몰려 주차 공간이 부족할 수 있으므로, 인근 산업단지 내 임시 주차장을 활용하거나 가급적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이 좋다.
전주역이나 전주 고속버스터미널에서 시내버스를 이용하면 약 20~30분 내외로 도착할 수 있다. 전주 시내를 관통하는 주요 노선들이 팔복동 인근을 경유해 접근성이 뛰어난 편이다. 특히 최근에는 자전거 거점 도시인 전주의 특성을 살려 자전거를 타고 천변 길을 따라 이곳까지 이동하는 여행객들도 늘어나는 추세다.
여행의 묘미를 더하는 팔복예술공장·덕진공원

철길 산책만으로 아쉬움이 남는다면 바로 옆에 위치한 '팔복예술공장'을 둘러봐도 좋다. 이곳은 1979년 설립돼 카세트테이프를 생산하다가 문을 닫은 쏘렉스 공장을 재생했다. 거친 질감의 콘크리트와 현대 미술이 만난 오묘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인근 카페에서 이팝나무 풍경을 내려다보며 차 한 잔의 여유를 즐기는 것도 놓칠 수 없는 즐거움이다.
예술공장 내 전시실에서는 상시로 현대 미술 작가들의 작품이 전시된다. 21일 기준 '전주문화재단 20주년 특별전'이 진행 중이다. 아이들을 위한 예술 놀이터 공간도 마련돼 있어 가족 단위 방문객들에게도 안성맞춤이다. 꽃 구경과 예술 관람을 한 번에 즐기고 싶다면 추천한다.
팔복예술공장 주차장은 '전북브레이카'와 '영창철강' 사이로 약 200m 정도 들어가면 나온다. 매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 30분까지 운영되며, 매주 월요일은 정기 휴무일이다.

이팝나무 철길에서 차로 5~10분 거리에 있는 덕진공원도 연계해 둘러보기 좋은 명소이다. 특히 6월 말부터 7월 중순까지 전주 팔경 중 하나인 '덕진채련(德津採蓮)'이 피어나 눈길을 사로잡는다. '덕진채련(德津採蓮)'은 넓은 호수를 가득 채운 연꽃 풍경을 뜻한다. 이팝나무 철길(5월)과는 시기가 조금 다르지만, 5월의 덕진공원은 연꽃 대신 싱그러운 초록빛 연잎들이 수면을 뒤덮어 청량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또 덕진공원의 랜드마크였던 연화교가 재건축되면서 그 중심에 전통 한옥 도서관이 세워졌다. 연화정도서관은 호수 한가운데 떠 있는 듯한 한옥 도서관이다. 신발을 벗고 들어가 편하게 책을 읽을 수 있으며 도서관 내부에서는 격자창(만월창) 너머로 액자같은 호수 뷰를 감상할 수 있다. 도서관은 매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7시까지 운영되며, 매주 월요일은 정기 휴무일이다.
밤이 되면 덕진공원의 화려한 야경을 만날 수 있다. 조명과 음악이 어우러진 분수쇼를 비롯해 은은한 조명이 들어오는 연화교를 걸으면서 고즈넉한 산책을 즐기기 좋다. 특히 '맘껏숲'과 '야호놀이터' 등 생태 놀이터가 잘 갖춰져 있어 아이 동반 가족 단위 여행객에게 안성맞춤이다. 자연 지형을 이용한 놀이 시설이라 만족도가 높은 편이다.
찰나의 순간을 기록하는 사진 명소
팔복동 철길에서 인생사진을 남기고 싶다면 오후 4시쯤 방문하는 것이 좋다. 나뭇잎 사이로 스며드는 부드러운 역광이 하얀 꽃잎을 더욱 투명하게 비춰준다. 철길 옆 낡은 담장은 사진 명소로 꼽힌다. 복동 특유의 때 묻은 시멘트 담장이나 붉은 벽돌과 대비되는 이팝나무 꽃이 빈티지한 감성을 극대화한다.
철길 바로 위를 지나는 금학교도 빼놓을 수 없는 사진 명당이다. 이곳에서 내려다보면 기찻길 양옆으로 터지는 이팝나무의 하얀 물결을 가장 웅장하게 담을 수 있다. 금학교는 팔복동 산업단지 내를 흐르는 전주천 지류 위를 지나는 도로 교량이다.
다만 운영 중인 노선임으로 개방 시간 외에 무단으로 철로에 진입하거나, 사진 촬영을 위해 안전 펜스를 넘는 행위는 절대 금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