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루마니아인 한국생활] 소주에 이걸 넣으면 감기 막는 데 도움 된다? 한국에서 해본 루마니아 겨울 술 레시피
2026-04-21 1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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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주에 후추를 넣는다고 하면 이상하게 들릴 수 있다. 그런데 루마니아에서 겨울마다 마시던 방식으로 소주를 데워보니, 생각보다 훨씬 맛있었고 추운 날 몸을 녹이는 데도 잘 어울렸다.

루마니아에서는 겨울 술도 따뜻하게 마신다
겨울이 되면 나는 가끔 루마니아 집에서 보던 술 마시는 방식이 떠오른다. 루마니아에서는 추운 계절이 되면 전통 증류주를 그냥 차갑게 마시기보다, 후추나 꿀, 때로는 호두를 넣어 따뜻하게 데워 마시는 집들도 있다. 몸을 녹이기 위한 겨울 습관 같은 것이고, 어떤 사람들에게는 오래된 민간요법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한국에 와서 겨울을 보내다 보니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걸 소주로 해보면 어떨까?”
소주로 바꿔보니 의외로 더 친숙했다
처음에는 반신반의했다. 루마니아 술은 보통 도수가 훨씬 높고 맛도 진한 편이라, 소주로 같은 느낌이 날지 확신이 없었다. 그런데 막상 해보니 생각보다 훨씬 괜찮았다. 루마니아 술만의 강한 맛과는 다르지만, 따뜻하게 데웠을 때 느껴지는 향과 부드러운 온기가 의외로 잘 어울렸다. 오히려 소주라서 더 부담 없이 마실 수 있다는 장점도 있었다.
내가 했던 방식은 아주 단순했다. 소주 한 병을 냄비에 붓고, 통후추 4~5알 정도와 꿀 두 스푼을 넣은 뒤 아주 약한 불에서 천천히 데우는 것이다. 중요한 건 오래 끓이지 않는 것이다. 소주는 루마니아 전통 증류주보다 도수가 낮기 때문에 너무 세게, 오래 끓이면 알코올이 금방 날아가버린다. 그래서 팔팔 끓인다기보다 은근하게 향을 끌어올린다는 느낌으로 데우는 쪽이 훨씬 잘 맞았다. 개인적으로는 도수가 조금 더 높은 25도 안팎의 소주가 이런 방식에 더 잘 어울린다고 느꼈다.

후추와 꿀이 더해지면 맛도 훨씬 부드러워진다
맛은 의외로 익숙했다. 후추의 알싸한 향과 꿀의 부드러운 단맛이 올라오면서, 따뜻한 술 특유의 온기가 천천히 퍼졌다. 루마니아에서 겨울에 마시던 술과 완전히 똑같지는 않았지만, 비슷한 종류의 위안이 있었다. 차가운 날 집에 돌아와 이걸 한 잔 천천히 마시면, 뱅쇼 (mulled wine) 처럼 겨울용 음료를 마시는 기분도 났다. 소주는 보통 한 번에 넘기는 술처럼 느껴질 때가 많은데, 이렇게 데워 마시니 훨씬 느리고 부드러운 방식으로 바뀌는 것도 재미있었다.
감기약처럼 받아들이기보다는 ‘겨울용 응용’에 가깝다
루마니아에서는 이런 술을 감기 기운이 있을 때 마시기도 하고, 몸을 덥히는 겨울 습관처럼 받아들이는 경우가 있다. 나 역시 어릴 때 그런 문화를 보고 자라서인지, 추운 날에는 따뜻한 술이 단순히 술 이상으로 느껴질 때가 있다. 다만 이걸 정말 치료제처럼 받아들이는 건 조심해야 한다. 후추와 꿀을 넣어 따뜻하게 데운 소주가 몸을 따뜻하게 느끼게 해줄 수는 있어도, 감기를 고치거나 면역력을 확실히 높여주는 의학적 방법이라고 말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내게 이건 어디까지나 겨울에 몸을 녹이는 루마니아식 감각을 한국의 소주로 옮겨본 작은 응용에 더 가깝다.

소주가 전혀 다른 겨울 술로 바뀌는 순간
그래도 분명한 건, 생각보다 맛이 좋았다는 점이다. 처음엔 “이게 정말 괜찮을까?” 싶었는데, 한 번 해보고 나니 왜 루마니아에서 비슷한 방식이 오래 남아 있는지 조금은 이해가 됐다. 강한 술을 차갑게 마시는 것과는 전혀 다른 결의 맛이 있고, 특히 겨울밤에는 그 따뜻함이 꽤 매력적이다.
결국 내게 이 소주 레시피는 감기약이라기보다, 추운 계절을 버티는 작은 겨울 의식 같은 것이 됐다. 루마니아에서 가져온 습관을 한국의 소주로 바꿔본 것뿐인데도, 의외로 두 문화가 자연스럽게 만나는 맛이 났다. 그리고 아마 그게 가장 흥미로운 점인지도 모른다. 아주 평범한 소주 한 병도, 어떤 기억과 방식이 더해지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겨울의 맛이 될 수 있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