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화물연대 사망사고 운전자에 ‘살인 혐의’ 적용…구속영장 신청
2026-04-22 08:37
add remove print link
미필적 고의 판단 영장 청구
화물연대 조합원이 숨진 진주 CU 물류센터 사고와 관련해 경찰이 사고 화물차 운전자를 상대로 살인 혐의를 적용해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22일 연합뉴스 등에 따르면 경찰은 진주 CU 물류센터 앞에서 발생한 사고와 관련해 화물차 운전자 A씨에 대해 살인 혐의를 적용해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경찰은 경남경찰청 광역범죄수사대장을 반장으로 한 전담수사반을 꾸려 수사를 벌여왔으며, 사고 당시 운전 경위와 CCTV 영상, 목격자 진술 등을 종합해 운전자 A 씨에게 살인 혐의를 적용했다. 경찰은 A 씨가 화물차 앞을 막고 있던 피해자들을 들이받은 뒤에도 곧바로 멈추지 않고 계속 주행한 점 등을 근거로 살인의 미필적 고의가 있다고 판단했다.
사고 직후 특수상해 혐의로 긴급체포됐던 A 씨는 경찰 조사에서 조합원을 친 사실 자체는 인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차량이 조합원들을 향해 진행한 경위와 충돌 이후 멈추기까지의 움직임 등을 포함해 전반적인 사고 상황을 들여다본 뒤 혐의를 무겁게 바꿔 신병 확보에 나섰다.
사고는 지난 20일 오전 10시 30분쯤 경남 진주시 정촌면 CU 진주물류센터 앞에서 발생했다. 당시 현장에는 화물연대 조합원 수십 명이 모여 물류센터 출차를 막고 있었고 경찰은 출입구 주변에서 차량이 나갈 수 있도록 통로를 확보하고 바리케이드를 설치해 상황을 통제하고 있었다.
이 과정에서 물류센터 내부에서 대체 투입된 2.5톤 화물차가 정문을 통과해 도로로 진입했고 이를 막아선 조합원들과 충돌이 발생했다. 이 사고로 전남본부 소속 화물연대 조합원 1명이 심정지 상태로 병원에 옮겨졌지만 숨졌고 다른 조합원 2명도 크고 작은 부상을 입었다.
CCTV 공개 뒤 커진 파장
화물연대가 공개한 CCTV 영상에는 당시 상황이 그대로 담겼다. 영상에는 물류센터 앞에 모여 있던 조합원 수십 명이 차량 출차를 막고 있고 경찰이 차량이 나갈 수 있도록 길을 터주며 주변에 바리케이드를 친 장면이 나온다. 그 직후 물류센터 안에 있던 화물차가 정문을 빠져나와 도로 쪽으로 서서히 진입했고 일부 조합원들은 창문을 두드리거나 차량 앞을 막아서며 출차를 멈추려 했지만 차량은 그대로 전진했다. 결국 앞을 막아선 조합원 1명이 차량에 치였고 다른 조합원 3∼4명도 차량 앞을 막아섰다가 옆으로 피하면서 큰 사고를 면했다.

영상에는 차량이 조합원과 충돌한 뒤 크게 출렁였음에도 곧바로 멈추지 않고 약 2∼3m를 더 전진한 뒤에야 멈추는 장면도 담겼다. 숨진 조합원은 화물차 정면을 발로 밀어내며 저항했지만 중심을 잃고 뒤로 넘어지면서 사고를 피하지 못한 것으로 파악됐다.
화물연대에서는 이 장면을 두고 단순 사고가 아니라 사실상 사람이 서 있는 상황에서 차량이 그대로 밀고 나간 것 아니냐는 반응이 이어졌고 경찰의 살인 혐의 적용 역시 이런 사고 당시 정황과 무관하지 않아보인다,
1700명 집결…장관 현장 방문까지
사고 이후 현장 긴장은 빠르게 높아졌다. 화물연대는 물류센터 앞에 분향소를 설치하고 숨진 조합원을 추모하는 한편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 원청 교섭 보장 등을 요구하고 있다.
지난 21일 오후에는 물류센터 앞에서 대규모 결의대회가 열렸고 화물연대 추산 약 1700명의 조합원이 전국에서 집결했다. 조합원들은 물류센터 정문을 막은 채 경찰과 원청인 BGF리테일을 규탄했다. 경찰은 만일의 충돌 상황에 대비해 26개 기동대와 1500여 명의 경찰력을 투입했다.

조합원들은 앞서 경남경찰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연 뒤 경남경찰청장 면담을 요구하며 청사 진입을 시도했고 이 과정에서 경찰과 한 시간가량 대치하며 몸싸움을 벌이기도 했다. 화물연대는 경찰이 좁은 공간에서 무리하게 차량 통행을 허용해 사고를 키웠다고 주장하고 있다. 차량이 지나가기 어려운 상황에서 길을 터주면서 운전자가 그대로 밀고 나가도 된다고 오판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반면 경찰은 불법 도로 점거를 해소하기 위한 적법한 조치였으며 이후 차량 주행은 운전자 판단이라는 입장이다.
“노란봉투법 별개” 선 긋자…노동계 “원청 책임 회피”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이 집회 현장을 직접 찾아 화물연대 지도부와 대책을 논의한 점도 주목된다. 정부는 사고 수습과 별개로 노사 간 대화를 유도하겠다는 입장이지만, 이번 사안을 둘러싼 갈등은 단순 사고 대응을 넘어 교섭 구조 문제로 확산되는 흐름이다.
화물연대는 원청인 BGF리테일을 상대로 공동교섭을 요구하며 지난 16일부터 집회를 이어왔고, 이번 사망 사고까지 겹치면서 갈등은 노사 문제를 넘어 정부 대응 문제로까지 번지고 있다. 특히 물류를 자회사와 협력업체를 거쳐 다시 위탁하는 다단계 구조 속에서 원청의 책임 범위를 둘러싼 논쟁이 전면에 드러났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는 이번 사안을 ‘노란봉투법’ 적용 문제와는 별개라고 선을 긋고 있다. 화물연대 조합원들이 법적으로는 개인사업자 성격이 강해 직접적인 사용자·근로자 관계로 보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반면 노동계는 이를 두고 원청의 교섭 책임을 사실상 회피하는 해석이라고 반발하고 있다.
노동계는 화물기사들이 형식상 개인사업자이지만 실제로는 원청의 물량 배정과 운임 구조에 종속돼 있는 만큼 교섭권을 보장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다단계 하청 구조 속에서 ‘일할 때는 노동자, 교섭할 때는 자영업자’로 취급되는 이중적 지위가 문제라는 것이다.
이처럼 법 적용을 둘러싼 해석이 엇갈리면서, 이번 사고를 계기로 원청 책임과 교섭 구조를 둘러싼 노·정 갈등은 당분간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 나온다.
미필적 고의란?
형법에서 ‘고의’는 크게 확정적 고의와 미필적 고의로 나뉜다. 확정적 고의는 특정 결과가 발생한다는 점을 분명히 인식하고 그 결과를 의도한 경우를 말한다. 예를 들어 사람을 죽이겠다는 명확한 의도를 가지고 행동한 경우가 이에 해당한다.
반면 미필적 고의는 결과가 발생할 가능성을 인식하면서도 이를 용인하고 행위를 하는 경우다. 결과가 일어날 수도 있다는 점을 알면서도 이를 막지 않고 그대로 행동했다면 미필적 고의가 인정될 수 있다.
법원은 행위자가 위험성을 얼마나 인식했는지, 결과를 피할 수 있었는지, 그럼에도 행위를 계속했는지 등을 종합적으로 따져 고의 여부를 판단한다. 단순 과실은 결과를 예견하지 못했거나 주의를 다하지 못한 경우지만, 미필적 고의는 결과 발생 가능성을 알고도 감수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이 때문에 미필적 고의가 인정되면 과실치사보다 무거운 형사 책임이 적용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