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공식 인정한 '인구 감소 지역'...아무도 예상 못한 일 벌어져 관광객 몰려들고 있다

2026-04-25 2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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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넘어 현실로 돌아온 단종, 1,600만 관객이 청령포에 몰려온 이유
500년 전 비운의 임금을 위해 외친 만세, 영월이 역사 치유의 현장이 되다

강원도의 한 작은 지역이 거대한 역사의 전시장이 됐다.

조선 6대 임금 단종을 다룬 영화 '왕과 사는 남자'의 흥행 효과로 특수를 누리고 있는 강원 영월군이 24~26일의 일정으로 영월 장릉과 동강 둔치, 청령포 일원에서 지역 대표 축제인 제59회 단종문화제를 준비한 가운데, 행사 첫날 장릉에서 부대행사인 백일장 프로그램이 진행되고 있다. / 뉴스1
조선 6대 임금 단종을 다룬 영화 '왕과 사는 남자'의 흥행 효과로 특수를 누리고 있는 강원 영월군이 24~26일의 일정으로 영월 장릉과 동강 둔치, 청령포 일원에서 지역 대표 축제인 제59회 단종문화제를 준비한 가운데, 행사 첫날 장릉에서 부대행사인 백일장 프로그램이 진행되고 있다. / 뉴스1

누적 관객 수 1,663만 명을 돌파하며 역대 한국 영화 흥행 기록을 새로 쓰고 있는 영화 <왕과 사는 남자>의 폭발적인 흥행세가 스크린을 넘어 실제 역사 현장으로 이어지고 있다. 영화의 배경이자 비운의 임금 단종의 마지막 숨결이 깃든 영월군 일원에서 열린 ‘제59회 단종문화제’는 그야말로 인산인해를 이루며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역사 문화 축제로서의 위상을 공고히 하고 있다. 영월은 '반값 여행 지역'으로 선정될 정도로 인구 감소 지역에 속하지만, 영화의 흥행 대성공으로 해당 지역에 대한 관심이 폭발하고 있다.

25일 단종의 유배지였던 청령포 일대는 이른 아침부터 강을 건너려는 관광객들로 마비 상태에 이르렀다. 연합뉴스 보도에 따르면, 청령포로 들어가는 배를 타기 위한 대기 줄은 매표소를 지나 영월관광센터 앞 회전교차로까지 수백 미터에 달했다. 4월 하순임에도 불구하고 26도가 넘는 초여름 날씨 속에서 관광객들은 2시간 가까운 대기 시간을 감내하며 차례를 기다렸다.

이러한 ‘청령포 열풍’의 중심에는 영화 <왕과 사는 남자>가 있다. 영화 속에서 단종이 세 면이 강으로 둘러싸이고 뒤편은 험준한 절벽인 청령포에 갇혀 소나무와 대화하며 외로움을 달래던 장면은 관객들의 심금을 울린 명장면으로 꼽힌다. 현장을 찾은 한 관광객은 “영화에서 단종이 느꼈을 고립감과 사무치는 그리움을 직접 느껴보고 싶어 이곳을 찾았다”며 “기다림은 힘들지만, 배를 타고 강을 건너는 순간 영화 속 장면이 겹쳐 보여 가슴이 뭉클했다”고 소회를 밝혔다.

주 행사장인 동강 둔치에서는 단종과 그의 비(妃) 정순왕후의 가례(국혼) 재현 행사가 성대하게 열렸다. 역사 속에서 두 사람은 단종의 유배와 서인(庶人) 강등으로 인해 생이별하며 죽어서도 만나지 못한 비극적 운명의 주인공들이다. 영화 <왕과 사는 남자>는 이들의 이루어지지 못한 사랑과 재회에 대한 열망을 현대적 감각으로 재해석해 1,600만 관객의 눈물샘을 자극했다.

8일 오후 강원 영월군 청령포에 여행객들이 몰려들고 있다. 조선 6대 임금 단종을 다룬 영화 '왕과 사는 남자'(왕사남)의 누적 관객 수가 1000만 명을 넘어선 가운데, 단종 유배지였던 청령포에 영화 관람객을 비롯한 관광객들이 배를 타며 여행을 즐기고 있다. / 뉴스1
8일 오후 강원 영월군 청령포에 여행객들이 몰려들고 있다. 조선 6대 임금 단종을 다룬 영화 '왕과 사는 남자'(왕사남)의 누적 관객 수가 1000만 명을 넘어선 가운데, 단종 유배지였던 청령포에 영화 관람객을 비롯한 관광객들이 배를 타며 여행을 즐기고 있다. / 뉴스1

축제 현장에서 진행된 국혼 재현은 영화의 여운을 간직한 이들에게 특별한 위로가 되었다. 행사 마지막, 단종이 신하들의 하례를 받는 장면이 연출되자 객석에 앉아 있던 수천 명의 관광객은 약속이라도 한 듯 일제히 “만세”를 외쳤다. 이는 단순한 축제의 환호성이 아니라, 500여 년 전 외롭게 떠나간 어린 임금과 홀로 남겨졌던 왕후의 넋을 기리고, 영화가 선사한 감동을 현실에서 승화시키는 일종의 ‘치유의 의식’과도 같았다.

영월군은 영화를 보고 찾아온 젊은 층과 가족 단위 관광객을 위해 다채로운 체험 프로그램을 마련했다. 영월의 특산물을 활용한 창작 궁중음식 경연 프로그램인 ‘단종의 미식제’는 단순한 시식을 넘어 영월의 식재료와 궁중 요리법의 결합을 선보이며 눈과 입을 즐겁게 했다.

또한 어린이들을 위한 ‘깨비노리터’, 역사 지식을 겨루는 퀴즈쇼, 명량 운동회 등은 자칫 무거워질 수 있는 역사 축제에 활기를 불어넣었다. 영월군 관광 공식 SNS 계정은 이례적으로 화창한 날씨에 대한 기쁨을 드러내기도 했다. SNS 담당자는 예년의 궂은 날씨를 회상하며 “항상 비 오고 바람 불고 난리였는데, 단종문화제에서 처음 있는 일이다. 날씨가 최고다”라며 축제의 성공적인 분위기를 전했다.

이날 저녁의 백미는 ‘단종 국장 야간 재현’ 행사였다. 관풍헌에서 발인하여 세계유산 영월 장릉까지 이어지는 이 행렬은 조선 27대 임금 중 유일하게 국장을 치르지 못한 단종의 한을 기리기 위해 영월군이 2007년부터 시작한 상징적 의식이다.

강원 영월군이 24~26일 영월 장릉과 동강 둔치, 청령포 일원에서 지역 대표 축제인 제59회 단종문화제를 준비한 가운데, 행사 첫날 단종 유배길 행사가 진행되고 있다. 영월군은 최근 조선 6대 임금 단종을 다룬 영화 '왕과 사는 남자'의 흥행 효과로 관광 특수를 누리고 있다. / 뉴스1
강원 영월군이 24~26일 영월 장릉과 동강 둔치, 청령포 일원에서 지역 대표 축제인 제59회 단종문화제를 준비한 가운데, 행사 첫날 단종 유배길 행사가 진행되고 있다. 영월군은 최근 조선 6대 임금 단종을 다룬 영화 '왕과 사는 남자'의 흥행 효과로 관광 특수를 누리고 있다. / 뉴스1

영화 <왕과 사는 남자> 후반부에서 단종의 시신을 수습하려 고군분투하는 충신들의 모습은 국장 재현 행사의 의미를 더욱 깊게 만들었다. 횃불과 등불이 어둠을 밝히는 가운데 엄숙하게 진행된 행렬은 영화 속 긴박했던 순간들과 교차하며 장엄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수많은 인파가 숨을 죽이고 지켜본 이 행렬은 단종에게 뒤늦게나마 왕의 예를 올리는 장엄한 서사시의 정점을 찍었다.

축제의 마지막 날인 26일에는 강원특별자치도 무형유산인 ‘영월 칡줄다리기’와 ‘칡줄행렬’이 펼쳐진다. 이 행사가 특히 기대를 모으는 이유는 영화 <왕과 사는 남자>에서 감초 같은 연기로 극의 몰입도를 높인 배우 박지환이 참석하기 때문이다.

박지환은 영화 속에서 영월 군수 역할을 맡아, 권력의 압박 속에서도 단종에 대한 연민과 충심 사이에서 갈등하는 입체적인 인물을 완벽하게 소화했다. 그의 등장은 영화 팬들에게는 현실에서의 ‘영월 군수’를 만나는 특별한 경험이 될 것으로 보인다. 칡줄다리기는 영월 군민들의 화합을 상징하는 전통 놀이로, 배우 박지환의 참여를 통해 세대를 아우르는 축제의 장이 될 전망이다.

조선 6대 임금 단종을 다룬 영화 '왕과 사는 남자'의 흥행 효과로 특수를 누리고 있는 강원 영월군이 지난 24일부터 오는 26일까지 영월 장릉과 동강 둔치, 청령포 일원에서 제59회 단종문화제를 열고 있는 가운데, 행사 둘째 날 문화제의 주요 행사인 단종제향 일정이 진행되고 있다. (영월군 제공. 재판매 및 DB금지) 2026.4.25/뉴스1
조선 6대 임금 단종을 다룬 영화 '왕과 사는 남자'의 흥행 효과로 특수를 누리고 있는 강원 영월군이 지난 24일부터 오는 26일까지 영월 장릉과 동강 둔치, 청령포 일원에서 제59회 단종문화제를 열고 있는 가운데, 행사 둘째 날 문화제의 주요 행사인 단종제향 일정이 진행되고 있다. (영월군 제공. 재판매 및 DB금지) 2026.4.25/뉴스1

영화 <왕과 사는 남자>는 단순한 상업적 성공을 넘어 잊혀가던 역사를 대중의 품으로 돌려보냈다. 단종이라는 비극적인 인물을 ‘왕’으로서만이 아니라 ‘사람’으로서 조명한 영화의 시선은, 영월군이 오랫동안 정성껏 준비해온 단종문화제의 진정성과 만나 거대한 시너지를 일으켰다.

단종문화제는 이제 영월만의 지역 축제가 아니다. 1,600만 명이 공유한 슬픔과 감동을 역사적 현장에서 확인하고 승화시키는 국가적인 문화 현상이 되었다. 청령포의 긴 줄과 동강 둔치의 만세 소리는 우리 역사가 단절된 과거가 아니라, 현재와 끊임없이 호흡하고 소통하는 살아있는 생명체임을 증명하고 있다. 제59회 단종문화제는 오는 26일까지 이어지며,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역사의 현장을 관광객들에게 선사할 예정이다.

home 김민정 기자 wikikmj@wikitre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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