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뷰·값비싼 자재는 옛말...요새 초고가 아파트의 기준이라는 의외의 '이것’
2026-04-26 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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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식 혁명부터 미식 브랜드까지, 바뀌고 있는 주거 문화
한강이 내려다보이는 조망권이나 값비싼 자재로 마감한 거실은 이제 고급 주거 공간의 기본 요건에 불과하다.

입주민들 사이에서 요새 초고가 아파트를 가르는 진짜 기준은 ‘단지 안에서 끼니를 어떻게 해결하는가’로 옮겨갔다. 과거 학교나 회사 식당을 떠올리게 했던 단체급식이 이제는 집에서 돈을 내고 사 먹는 프리미엄 서비스로 탈바꿈했다. 아침마다 국을 끓이고 반찬을 준비하는 가사 노동 대신 호텔 셰프가 차려낸 식단을 즐기는 풍경은 더 이상 낯설지 않다.
관련 업계 설명을 들어보면 씨제이프레시웨이와 삼성웰스토리 그리고 고메드 갤러리아 등 주요 기업들이 아파트 식음 서비스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치열한 각축전을 벌이고 있다. 씨제이프레시웨이는 서초구 래미안원베일리를 비롯해 원펜타스, 리더스원 등 강남권 요충지를 장악했다. 삼성웰스토리는 개포자이프레지던스와 용산센트럴파크 등에서 입지를 넓히고 있으며 고메드 갤러리아는 성수동 트리마제와 개포디에이치자이 등에서 입주민의 식사를 책임진다.
성수동 트리마제에서 시작된 ‘조식 혁명’의 확산
고급 아파트 단지 내 식사 서비스는 2017년 서울 성수동 트리마제가 처음 도입하며 세상에 알려졌다. 초기에는 연예인이나 자산가들이 사는 일부 단지의 전유물로 여겨졌으나 강남과 서초를 거쳐 송파까지 빠르게 퍼졌다. 요즘에는 수도권을 넘어 부산이나 대구 같은 지방 광역시의 신축 단지들까지 이 서비스를 도입하며 아파트 분양 시장의 필수 옵션으로 자리를 잡았다.

2020년 이후 지어진 단지들은 설계 단계부터 아예 전용 식당과 주방 공간을 따로 만든다. 주민들이 모여 식사하는 공간뿐 아니라 디저트를 즐기는 카페까지 연계해 커뮤니티 시설의 질을 높이는 방식이다. 아파트가 단순히 잠을 자는 곳이 아니라 생활의 모든 편의를 누리는 플랫폼으로 진화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까다로운 입주민 투표 거쳐 선정되는 ‘미식 브랜드’
운영 업체를 뽑는 방식도 예전 급식 시장과는 차원이 다르다. 오피스 급식처럼 경쟁 설명회를 열고 시식 평가를 거치는 점은 비슷하지만 마지막 단계에 입주민들이 참여하는 직접 투표가 추가된다. 건설사가 일방적으로 정하는 것이 아니라 입주민들이 직접 맛보고 고르는 구조다.
입찰 기준 역시 가격보다는 메뉴의 완성도와 서비스 품질에 무게를 둔다. 얼마나 신뢰할 수 있는 브랜드인가와 과거에 어떤 단지를 운영했는지에 대한 이력이 당락을 결정한다. 특히 고급 단지일수록 밥값이 조금 비싸더라도 얼마나 높은 수준의 식단을 제공할 수 있는지가 업체의 경쟁력이 된다. 입주민들에게는 단지 내 식당이 아파트의 자부심을 상징하는 지표로 쓰이기 때문이다.
강남권 고급 단지의 평균 식사 가격은 10000원에서 20000원 선이다. 일반적인 직장인 식단이 6000원에서 8000원인 것과 비교하면 꽤 높은 수준이다. 하지만 식자재의 질과 셰프들의 인건비를 고려하면 입주민들은 외식보다 저렴한 가격에 고급 요리를 즐긴다고 느낀다.
호텔 출신 셰프 상주... 외식 브랜드와 손잡은 특식
아파트 식음 서비스는 기존의 대형 급식과는 결이 다르다. 호텔에서 경력을 쌓은 전문 셰프와 지배인급 매니저들이 현장에 상주하며 한식과 양식은 물론 중식과 일식까지 아우르는 메뉴를 선보인다. 씨제이프레시웨이는 래미안원베일리에서 업계 최초로 100퍼센트 직접 고용제를 도입해 인력 관리의 질을 높였다.
메뉴 구성도 화려하다. 직화 구이나 철판 요리 그리고 정성이 들어간 탕 요리 등 외식 매장과 견주어도 손색없는 음식들이 매일 바뀐다. 여기에 지역 맛집이나 유명 브랜드와 협업한 메뉴를 내놓으며 차별화를 꾀한다. 강릉의 유명 맛집인 ‘엄지네 꼬막 비빔밥’이나 오랜 전통의 소갈비 전문점 ‘삼원가든’의 대표 음식을 집 앞 식당에서 맛보는 식이다. 산지에서 직접 공수한 식자재를 써서 건강에 민감한 입주민들의 눈높이를 맞춘다.
맞벌이 부부와 시니어 층이 주도하는 소비 패턴
이 서비스를 가장 반기는 이들은 30대와 40대 맞벌이 부부다. 퇴근 후 아이들과 함께 저녁을 차려 먹는 수고를 덜어주기 때문이다. 장을 보고 요리를 하고 설거지를 하는 시간을 절약해 가족과 더 많은 대화를 나눌 수 있다는 점이 큰 이점으로 꼽힌다. 아이들을 위한 건강 메뉴나 성장에 도움이 되는 영양 식단이 따로 제공되는 점도 부모들의 호응을 얻는다.

또 다른 핵심 고객은 은퇴 후 여유로운 삶을 즐기는 시니어 층이다. 매 끼니를 직접 준비하기 힘든 고령자들에게 단지 내 식당은 일상의 식사를 책임지는 소중한 공간이다. 시니어 비중이 높은 단지는 이용률이 꾸준하게 유지되는 경향을 보인다. 반면 직장인이 많은 단지는 평일 낮에는 한산하다가 주말과 저녁에 이용자가 몰리는 특징이 있다. 가구당 평균 이용률은 20퍼센트에서 30퍼센트 수준으로 파악됐다.
브랜드 가치 높이는 ‘레퍼런스’ 경쟁
기업들이 앞다투어 이 시장에 뛰어들고 있지만 당장의 수익성은 높지 않다. 일반 오피스 급식에 비해 이용 인원이 한정적이고 수요가 불규칙해 운영 효율을 맞추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입주민들의 입맛이 워낙 높고 요구 사항이 구체적이라 운영 조건도 까다로운 편이다. 실제로 초기에 낮은 가격으로 입찰했다가 적자를 견디지 못하고 운영권을 포기하는 업체도 생겨났다.
그럼에도 기업들이 계속 도전하는 이유는 시장의 성장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현재 아파트 식음 서비스 시장 규모는 약 300억 원에서 400억 원 정도로 추산된다. 기존 기업 급식 시장이 포화 상태에 머물러 있는 사이 아파트 시장은 해마다 20퍼센트 이상의 성장세를 기록 중이다. 고급 아파트를 성공적으로 운영했다는 이력 자체가 향후 다른 사업을 따내는 데 강력한 무기가 된다는 점도 무시할 수 없는 요인이다.
컨설팅부터 체험까지... 진화하는 사업 모델
고메드 갤러리아 같은 업체는 아예 설계 초기 단계부터 참여하는 컨설팅 모델을 선보였다. 아파트가 지어지기 전부터 주방 배치와 동선 그리고 운영 방식까지 건설사와 함께 고민한다. 계약부터 실제 문을 열기까지 1년에서 3년이 걸리는 장기 사업으로 진행된다.
단순히 밥을 파는 데 그치지 않고 다양한 체험형 콘텐츠를 넣는 시도도 이뤄진다. 쿠킹 클래스를 열어 주민들이 직접 요리를 배우게 하거나 참치 해체 쇼 같은 볼거리를 제공해 단지 내 축제 분위기를 만든다. 프리미엄 델리 브랜드인 ‘타블레’를 론칭해 외식 메뉴를 아파트 안으로 더 깊숙이 들여오는 전략도 추진하고 있다. 아파트 식당이 입주민들 사이의 소통 창구이자 문화 공간으로 기능하게 하려는 의도다.
업계 관계자들은 아파트에 대한 인식이 거주 공간에서 소비와 생활이 이뤄지는 플랫폼으로 바뀌고 있다고 입을 모은다. 헬스장과 수영장 같은 운동 시설은 이미 기본이 됐고 이제는 먹거리 서비스가 아파트의 가치를 결정하는 척도가 됐다는 분석이다. 집에서 직접 요리하는 문화가 줄어들면서 아파트가 제공하는 식음 서비스의 비중은 더 커질 것으로 보인다.
이런 흐름은 주거 문화 전반에 큰 자국을 남겼다. 이제는 집을 고를 때 학군이나 교통만큼이나 단지 내 식당이 잘 되어 있는지를 따지는 시대가 됐다. 기업들의 치열한 경쟁 덕분에 입주민들은 더 높은 수준의 미식을 일상에서 누리게 됐다. 식탁 위의 풍경을 바꾼 아파트 급식의 진화는 주거 공간이 줄 수 있는 편의의 끝이 어디인지를 다시금 생각하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