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도도 폭력도 없는데 이혼 위기… 중년 부부의 '조용한 균열'

2026-04-27 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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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이혼하자” 25년 혼인관계 흔든 남편의 카톡

글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AI 툴로 만든 사진.
글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AI 툴로 만든 사진.

"우리 이혼해. 답장 줘."

카카오톡 메시지 한 줄이었다. 결혼 25년차이자 고등학생과 대학생 딸을 둔 50대 주부 A씨가 남편에게서 받은 연락이었다. 기념일엔 외식을 했고, 때가 되면 해외여행도 다녔다. 시댁 명절도 빠지지 않았다. 그런데 남편은 이혼하자고 한다. A씨는 "아이들 때문에 당장은 힘들다"고 답했다. 남편은 "아이들 핑계가 구차하다"고 했다.

A씨는 27일 온라인 커뮤니티 82쿡에 이 사연을 올렸다. "돈도 없고 힘도 없는 게 아닌데, 하고 싶은 마음 반, 안 하고 싶은 마음 반"이라고 털어놓은 그의 글에는 수십 개의 댓글이 달렸다.

평범해 보였지만, 안에서는 달랐다

A씨의 글을 읽으면 겉으로 드러나는 파국의 징후는 없다. 외도도, 폭력도, 도박도 없다. 남편은 대기업에 다니며 가족을 경제적으로 부양했고, A씨는 딸 둘을 사실상 혼자 키우다시피 하면서 집안을 꾸렸다. 학군지의 30평대 자가, 약간의 현금. 바깥에서 보면 안정된 중산층 가정의 그림이다.

그러나 안에서는 오랫동안 다른 시간이 흐른 듯하다. A씨는 "정서적인 교류나 성격이 맞지 않는다고 계속 생각하며 살았다"고 했다. 대화를 해봐야 재미가 없고, 공감을 받지 못하는 일이 쌓이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 남편 앞에서 입을 닫게 됐다는 것이다. "나이가 들어가고 세월이 흐를수록 남편한테는 무뚝뚝하게 필요한 말만 하는 편이 됐다"고 썼다.

글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AI 툴로 만든 사진.
글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AI 툴로 만든 사진.

남편의 상황도 서술됐다. 50대 중반이 돼가면서 갱년기와 명예퇴직 걱정이 겹치고, 집 안에서 여자 셋이 사이좋게 지내는 동안 외톨이 같은 처지가 됐다. 젊어서는 사회생활에 바빴고, 집안일과 자식 문제는 아내가 도맡았기문에 딸들과도 친하지 않다. A씨는 "저 없이는 뭘 같이 해본 적도 없는, 뭘 할 엄두를 못 내는" 남편이라고 표현했다.

가장 결정적인 균열은 부부 관계에 있었다. A씨는 "정서적 교류가 없는 상태에서 부부 관계조차 싫었다"고 했고, "남편 입장에선 구걸하다시피 해서 겨우 억지로 응해주는 게 자존심도 상하고 비참했을 것"이라고 스스로 분석했다.

댓글 반응은 갈렸다. "남편이 가엾다", "글쓴이가 이기적이다"는 시각과 "정서적 교류가 안 되는 남편과 잠자리를 좋아할 여자는 없다", "저런 남자들은 대접만 바란다"는 시각이 팽팽히 맞섰다. A씨 본인도 댓글을 통해 "제가 이기적으로 살았던 것도 맞고, 남편이 불쌍한 것도 맞는다"고 인정했다.

통계가 말하는 중년 이혼의 실상

이 사연이 많은 공감을 얻는 것은 이것이 결코 드문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통계청이 발표한 2024년 혼인·이혼 통계에 따르면 전체 이혼 건수는 9만 1000건으로 전년 대비 1.3% 감소했다. 그러나 장기 혼인 후 이혼은 다른 흐름을 보인다. 혼인지속기간별 이혼 구성비에서 30년 이상이 차지하는 비중은 16.6%로, 5~9년(18.0%), 4년 이하(16.7%)에 이어 세 번째로 높았다. 전체 이혼 건수가 줄어드는 상황에서도 장기 혼인 부부의 이혼 비중은 여전히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이혼이 집중되는 연령대도 주목할 만하다. 2024년 기준 연령별 이혼율은 남성 40대 후반(7.2건), 여성 40대 초반(8.0건)에서 가장 높았다. 평균 이혼 연령은 남성 50.4세, 여성 47.1세로 전년 대비 각각 0.5세씩 올랐다. 이혼이 발생하는 연령대 자체가 높아지고 있다는 의미다.

이혼 상담 통계도 같은 방향을 가리킨다. 한국가정법률상담소가 지난 2월 공개한 2025년 상담 통계에 따르면 전체 이혼 상담 중 60대 이상이 차지하는 비중이 남성 49.1%, 여성 22.1%에 달했다. 1995년 남성 2.8%, 여성 1.2%에 불과했던 것과 비교하면 30년 사이 각각 17배, 18배 이상 증가한 수치다. 남성의 경우 이혼 상담자의 절반 가까이가 60대 이상인 셈이다.

"지금은 하기 싫고, 나중에 하겠다는 건 잔인"

A씨 글에 달린 댓글 중 그가 직접 "가장 와닿는다"고 꼽은 것은 이런 내용이었다. "지금은 하기 싫고 남편 나이 더 들고 이혼하겠다는 생각은 이기적이고 잔인하다는 지적에 동의한다. 장년 지나 이혼한 사교성 떨어지는 남자는 관계 단절에 이어 우울증, 치매, 자살 위험도 높다."

A씨는 이 댓글을 읽은 뒤 입장을 바꿨다. "일단 우리 부부에게 힘든 대화를 먼저 시도해봐야겠다. 그럼 남편이 확고한지, 제 노력으로 유지가 될지 판단이 서겠다"고 썼다.

home 채석원 기자 jdtimes@wikitre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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