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만에 재산 두 배 늘었다”…아시아 갑부 3위 찍은 '한국 가문' 정체
2026-04-29 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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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붐 타고 1년 만에 67조 상승, 삼성가의 반전 드라마
상속세 위기 극복한 이재용, 아시아 3위 부호 가문의 리더십
한국을 대표하는 재벌 가문이 1년 만에 재산을 두 배 이상 불리며 아시아 최상위 부호 반열에 올라섰다. 세계가 주목한 그 주인공은 바로 삼성가(家)다.

1년 만에 67조 원…10위에서 3위로 '수직 상승'
블룸버그 통신은 자사 '블룸버그 억만장자 지수(BBI)'를 기준으로 올해 3월 삼성가의 재산이 455억 달러(약 67조 원)로 집계됐다고 29일 보도했다. 이는 1년 전 201억 달러(약 29조 6000억 원)에서 배 이상 늘어난 수치로, 아시아 부호 순위에서 지난해 10위에서 올해 3위로 단번에 뛰어올랐다.
아시아 1위는 인도 최대 재벌 릴라이언스 그룹을 이끄는 암바니 가문으로 자산이 897억 달러(약 132조 7000억 원)에 달했다. 2위는 홍콩 부동산 재벌 순훙카이(SHKP)의 궈씨 가문으로 502억 달러(약 74조 3000억 원)를 기록했다. 국내 또 다른 재벌인 현대가는 자산 217억 달러(약 32조 1000억 원)로 16위에 이름을 올렸다.
블룸버그는 아시아 20대 갑부 가문의 총 자산이 올해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고 전했다. AI 투자 열풍에 힘입어 이들 가문의 자산 총계는 6470억 달러(약 956조 9000억 원)로 전년 대비 16% 늘었으며, 이는 BBI가 2019년 집계를 시작한 이래 가장 높은 수준이었다.

위기에서 반전으로…상속세·수감 이중고 극복한 이재용 회장
삼성가의 이번 도약은 불과 5년 전만 해도 상상하기 어려운 결과였다. 2020년 이건희 선대회장이 별세한 뒤 삼성가는 막대한 상속세 부담과 이재용 회장의 수감이라는 이중고를 겪었다. 당시 일부 관측통들은 삼성가의 입지가 위협받을 수 있다고 추측하기도 했다.
이 선대회장이 남긴 유산은 약 26조 원 규모였는데, 여기에 부과된 상속세만 약 12조 원에 달했다.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과 이서현 삼성물산 전략기획담당 사장, 모친 홍라희 전 리움 관장은 상속세를 납부하기 위해 삼성 계열사 지분을 꾸준히 매각해왔다. 2026년 4월까지 분할 납부하는 방식이었으며, 차입금 이자 부담까지 겹친 상황이었다.
주목할 점은 삼성가가 막대한 현금 자산을 상속세 재원으로 쓰는 대신 이 선대회장이 평생 수집한 미술품·문화재 2만 3000여 점을 미술관과 박물관에 기증하는 방식을 선택했다는 것이다. 재산을 지키는 동시에 '사회 환원'이라는 명분도 챙기며 여론의 비판을 최소화한 결정이었다.

AI 붐이 불러온 반도체 슈퍼 사이클
위기를 기회로 뒤집은 핵심 동력은 인공지능(AI)이었다. 블룸버그는 AI 붐에 힘입은 반도체 가치 상승 덕분에 삼성가의 지배력이 오히려 공고해졌다고 평가했다. 삼성전자 등 주요 계열사 7곳의 합산 매출은 지난해 기준 한국 국내총생산(GDP)의 19.3%를 차지하며 10년 전 15.1%에서 비중이 더 커졌다. 코스피 시가총액의 약 4분의 1을 차지하는 삼성전자 주가는 지난해 126% 급등해 20여 년 만에 최고 성과를 냈다.
이재용 회장의 주식 재산도 덩달아 불어났다. 2026년 2월 말 기준 이 회장의 주식 가치는 40조 원을 돌파했으며, 연간 배당금만으로도 수천억 원을 수령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회장은 2017년부터 무보수 경영을 이어가고 있어 배당금이 주된 소득원인 것으로 전해진다.

'은둔'에서 '전면'으로…이재용 회장의 달라진 행보
소송으로 대중의 시선을 피했던 이재용 회장도 최근 들어 공개 행보를 크게 늘렸다. 지난해 10월에는 엔비디아의 젠슨 황 최고경영자(CEO)와 치킨과 맥주를 함께 즐기는 이른바 '치맥 회동'이 화제를 모았고, 최근에는 이재명 대통령의 인도 국빈 방문에 경제 사절단으로 동행해 모디 인도 총리와 셀카를 찍는 모습이 공개되기도 했다.
블룸버그는 이재용 회장이 삼성의 AI 및 로봇 분야 추진에 적극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이 회장은 직원들에게 "자만할 때가 아니라 경쟁력을 회복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로 생각하자"는 메시지를 내기도 했다.
삼성가 3세, 각자의 자리에서 '독보적 존재감'
이재용 회장 외에도 삼성가 3세들은 각자 영역에서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장녀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은 삼성그룹의 비핵심 사업을 안정적으로 이끌며 재계 내에서도 독보적인 존재감을 유지하고 있다. 차녀 이서현 삼성물산 전략기획담당 사장은 2018년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다가 5년 만에 복귀해 삼성물산의 브랜드 경쟁력 강화에 집중하고 있다.
삼성가 3세들의 경영 승계 과정은 국내 다른 재벌가에 비해 더 오래, 더 엄격하게 진행된 것으로 평가된다. 이재용 회장은 입사 후 사장단 승진까지 19년이 걸렸고, 이부진 사장은 16년, 이서현 사장은 11년이 소요됐다. 다른 대기업 오너 2·3세의 사장 승진 소요 기간 평균인 12.9년과 비교해도 눈에 띄는 수치다.

"뒤처져 있다"…여전히 남은 과제는?
화려한 자산 증가에도 불구하고 시장의 시선이 마냥 곱지만은 않다. 블룸버그는 삼성가의 재산 반등이 한국 증시 랠리와의 괴리를 보여주는 사례라고 지적했다. 모건스탠리는 지난달 보고서에서 밸류업 측면에서 삼성은 다른 국내 대그룹들에 비해 "뒤처져 있다"고 평가했다.
이재명 대통령이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와 재벌 투명성 강화를 주요 공약으로 내세우며 소액주주 권리 보호 정책을 추진하고 있는 가운데, 비평가들은 글로벌 경쟁자들과의 격차를 좁히려면 지배구조 개선과 주주환원 정책에서 더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삼성가가 위기를 딛고 아시아 3위 부호 가문으로 올라선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이 자리를 지키고, 나아가 1·2위를 넘보려면 화려한 수치 이면에 쌓인 숙제들을 얼마나 빠르게 풀어내느냐에 달려 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