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루마니아인 한국생활] 친구 엄마는 안아주려 했는데 나는 고개를 숙였다… 한국 살다 생긴 역문화충격

2026-04-29 1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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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충격은 새로운 나라에 갔을 때만 생기는 줄 알았다. 그런데 한국 생활에 익숙해진 뒤 고향에 돌아가 보니, 오히려 내 나라에서 더 크게 당황하는 순간들이 생겼다.

따뜻한 가족 식사 자리에서 친구 어머니는 포옹하려 다가오고, 한 여성은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숙여 인사하면서 모두가 웃음 섞인 놀라움을 보이는 순간을 담은 이미지다. / AI가 생성한 자료사진
따뜻한 가족 식사 자리에서 친구 어머니는 포옹하려 다가오고, 한 여성은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숙여 인사하면서 모두가 웃음 섞인 놀라움을 보이는 순간을 담은 이미지다. / AI가 생성한 자료사진

식당에서 물을 시켰다가 내가 먼저 당황했다

가장 먼저 “아, 내가 정말 많이 바뀌었구나” 하고 느낀 건 아주 사소한 식당 장면에서였다. 휴가 때 가족과 함께 식당에 갔는데, 나는 너무 자연스럽게 직원에게 물을 달라고 했다. 한국에서는 식당에서 물을 부탁하는 일이 너무 당연하고, 대부분 별다른 생각 없이 물이 나온다. 그래서 나도 습관처럼 그렇게 말한 것이었다.

그런데 잠시 뒤 직원이 가져온 건 무료로 따라 마시는 물이 아니라 병에 담긴 생수였다. 그 순간 나는 잠깐 멍해졌다. 그러다 이내 깨달았다. “아, 맞다. 여긴 한국이 아니지.”

내가 당황한 이유는 물이 병으로 나와서가 아니라, 그 물이 돈을 내야 하는 대상이라는 걸 순간적으로 잊고 있었기 때문이다.

예전의 나라에서는 너무 당연했던 일인데, 한국식 시스템에 익숙해진 뒤에는 오히려 내 고향의 방식이 낯설게 느껴진 것이다. 그 순간은 웃기기도 했고, 동시에 조금 신기했다. 단순히 식당 물 하나의 문제가 아니라, 내가 언제부터 “물은 당연히 그냥 나오는 것”이라고 생각하게 됐는지를 보여주는 장면 같았기 때문이다.

웨이터는 보텔에서 나온 물을 식당의 유리에 붓는다. / 셔터스톡
웨이터는 보텔에서 나온 물을 식당의 유리에 붓는다. / 셔터스톡

음식이 늦게 나오는 게 갑자기 답답해졌다

또 하나 놀랐던 건, 내가 식당의 속도에 대해 전보다 훨씬 예민해졌다는 점이었다. 음식을 주문하고 기다리는데 시간이 조금 지나자 나도 모르게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왜 아직 안 나오지?”라는 생각이 들었고, 내가 생각하는 ‘정상적인 기다림’보다 훨씬 오래 걸리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런데 사실 고향에서는 그게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음식이 20분, 30분 정도 걸려 나오는 건 아주 흔하고, 사람들도 그 시간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대화를 하며 기다리고, 여유롭게 식사를 즐기는 리듬이 원래 거기에는 있었다. 문제는 그곳이 느려진 것이 아니라, 내가 한국의 빠른 서비스에 너무 익숙해져 있었다는 점이었다.

한국에서는 식당에서 주문하면 비교적 빠르게 음식이 나오고, 전반적인 서비스의 템포도 훨씬 빠른 편이다. 처음에는 그 속도가 신기했는데, 어느 순간부터는 그게 내 기준의 “기본값”이 되어버렸다. 그래서 고향 식당에서 평범하게 기다리는 시간이 나한테는 괜히 길고 느리게 느껴졌던 것이다. 그때 나는 처음으로, 한국의 편리함과 속도가 생각보다 깊게 내 일상의 기준을 바꿔놓았다는 걸 실감했다.

가장 민망했던 건 친구 어머니께 고개를 숙인 순간이었다

하지만 가장 강하게 남은 장면은 따로 있었다. 친구네 가족 저녁 식사 자리에 갔을 때였다.

그 자리에 도착해서 나는 친구 가족들에게 한 명씩 인사를 해야 했다. 루마니아에서는 이런 상황이 전혀 어렵지 않다. 친구 어머니를 보면 따뜻하게 인사하고, 자연스럽게 가까이 다가가 포옹이나 볼 인사를 나누는 것이 익숙한 방식이다. 원래라면 몸이 먼저 기억해야 하는 인사였다.

그런데 막상 그 순간이 오자, 나는 친구 어머니가 안아주려고 다가오는 순간 무의식적으로 고개부터 숙이고 있었다.

그 장면은 정말 순식간이었다. 나도 내가 뭘 하고 있는지 깨닫기 전에 이미 몸이 먼저 반응해버린 것이다. 그리고 바로 주변에서 웃음이 터졌다. 친구 어머니는 분명 포옹과 볼 인사를 기대하고 계셨는데, 나는 한국에서 하듯 반사적으로 인사 자세를 취하고 있었으니 모두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그 순간은 정말 부끄러웠다. 물론 나중에는 다 같이 웃으며 넘어갈 수 있는 에피소드가 됐지만, 나는 속으로 꽤 충격을 받았다. 단순히 인사 실수를 해서가 아니라, 내가 내 문화의 가장 익숙한 몸짓조차 잠깐 잊고 있었다는 사실이 놀라웠기 때문이다. 머리로는 루마니아식 인사를 알고 있는데, 몸은 이미 한국식 예절에 더 빠르게 반응하고 있었다. 그걸 깨달은 순간, 한국이 내 안에 얼마나 깊이 들어와 있는지 처음으로 선명하게 느껴졌다.

거실에서 한 외국인은 고개를 숙여 인사하고, 다른 외국인은 당황하며 안아주려 하고 있어요 / AI가 생성한 자료사진
거실에서 한 외국인은 고개를 숙여 인사하고, 다른 외국인은 당황하며 안아주려 하고 있어요 / AI가 생성한 자료사진

한국은 내 생각보다 더 많은 것을 바꿔놓고 있었다

이런 일을 몇 번 겪고 나서야 나는 알게 됐다. 한국에서의 삶은 단순히 내가 새로운 문화를 배우는 시간이 아니었다. 그 문화는 조용히 내 안으로 들어와서 내가 세상을 기대하는 방식 자체를 조금씩 바꾸고 있었다. 물은 당연히 무료일 거라고 생각하게 만들고, 음식은 빨리 나와야 한다고 느끼게 만들고, 낯선 어른에게는 몸이 먼저 고개를 숙이게 만들 정도로 말이다.

이건 의식적으로 한국 사람처럼 행동하려고 해서 생긴 변화가 아니었다. 오히려 반대였다. 어느 순간부터 한국의 방식이 내게 너무 자연스러워져서, 굳이 생각하지 않아도 그 리듬대로 움직이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바로 그렇기 때문에 고향에 돌아갔을 때 더 강한 낯섦을 느끼게 됐다. 내 나라는 그대로였는데, 내가 이미 조금 달라져 있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보통 외국 생활을 “적응의 과정”으로만 말한다. 낯선 나라에 가서 그곳의 규칙을 배우고, 서서히 익숙해지는 과정 말이다. 그런데 실제로는 적응이 그렇게 한 방향으로만 끝나지 않는다. 어떤 문화에 오래 머물다 보면, 그 문화는 내가 집으로 돌아간 뒤에도 계속 내 안에 남아 있다. 그리고 그때 생기는 낯섦은 처음 한국에 왔을 때 느낀 문화충격과는 또 다른 종류의 충격이다.

내게는 그게 오히려 더 신기했다. 한국에 처음 왔을 때의 놀라움은 “아, 여긴 이런 식이구나”라는 배움의 놀라움이었다면, 고향으로 돌아갔을 때의 낯섦은 “내가 이렇게까지 바뀌었구나”라는 자각의 놀라움에 가까웠다. 그 차이는 생각보다 컸다.

이제는 한국 문화가 내게도 꽤 자연스럽다

돌이켜보면, 이런 순간들이 쌓였다는 사실 자체가 한국이 이제 내게 낯선 나라가 아니라는 증거인지도 모르겠다. 처음에는 배워야 했던 것들이 지금은 자연스럽게 몸에 배어 있다. 고개를 숙이는 인사, 빠른 서비스에 대한 기대, 편리함을 기준으로 삼는 감각까지 모두 그렇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내가 내 나라의 문화를 잊은 것은 아니다. 다만 두 문화가 내 안에서 함께 살아가고 있고, 상황에 따라 어느 쪽이 먼저 튀어나오느냐가 달라졌을 뿐이다. 그리고 그 경계에서 생기는 작은 실수들이 때로는 민망하고, 때로는 우습고, 또 때로는 내가 얼마나 많이 변했는지를 보여주는 장면이 된다.

결국 내가 가장 크게 느낀 건 이것이었다. 문화에 적응한다는 건 단순히 그 나라를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어느 순간 그 나라의 일부를 내 몸과 습관 안에 받아들이는 일이라는 것. 그리고 그 변화는 내가 다시 집으로 돌아갔을 때 더 분명하게 보인다.

home 오아나 기자 oana11@wikitre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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