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주·맥주 30% 급락… 젊은이들 술잔에 채워진 ‘투명한 액체’의 정체

2026-05-02 1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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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Z들이 요즘 가장 많이 마시는 의외의 주종

2026년 대한민국 주류 시장은 거대한 균열을 맞이했다. 수십 년간 서민의 애환을 달래던 소주와 맥주가 주류(主流)의 자리에서 밀려나고 있다. 기성세대의 음주 문화를 상징하던 이들 품목의 출고량은 2030 세대의 변심과 함께 가파른 내리막길을 걷는 중이다. 현시점 시장은 ‘얼마나 마시느냐’가 아닌 ‘무엇을 어떻게 마시느냐’를 묻는 젊은 소비자의 요구에 따라 재편됐다.

기사 이해를 돕기 위한 이미지 / mujijoa79-shutterstock.com
기사 이해를 돕기 위한 이미지 / mujijoa79-shutterstock.com

2026년 상반기 결제 데이터 확인 결과, 맥주와 스피리츠 매출은 전년 대비 각각 31.1%와 32.7% 급락하며 충격을 안겼다. 소주 역시 4.3% 매출 감소세를 보이며 체면을 구겼다. 반면 화이트와인과 프리미엄 전통주, RTD(Ready to Drink) 하이볼은 기록적인 성장세를 보이며 대조를 이뤘다.

화이트와인의 나홀로 역주행과 1450억 원의 승부수

“와인은 레드”라는 재래의 공식은 이제 유효하지 않다. 레드와인 점유율이 48%로 내려앉는 동안 화이트와인은 26%까지 치고 올라오며 1450억 원 규모의 독자적 시장을 형성했다. 2030 세대를 위주로 확산된 ‘소버 큐리어스(Sober Curious)’ 라이프스타일은 무겁고 떫은 맛 대신 산뜻하고 청량한 감각을 선택했다. 차갑게 식혀 마시는 화이트와인의 산미는 ‘가벼운 한 잔’을 선호하는 요즘 트렌드와 완벽히 맞아떨어졌다.

화이트 와인 이미지 / barmalini-shutterstock.com
화이트 와인 이미지 / barmalini-shutterstock.com

화이트와인 수입액이 전년 대비 16.3% 증가한 배경에는 업계의 영리한 전략도 숨어 있다. 와인 전문점이나 고급 레스토랑의 문턱을 넘지 못하던 이들을 위해 삼겹살, 떡볶이 등 일상적인 음식과의 페어링을 적극적으로 제안했다. 특히 배우 하정우가 선택한 것으로 알려진 특정 쇼비뇽 블랑 제품은 SNS를 통해 ‘인생 와인’으로 등극하며 품절 대란을 일으켰다. 이마트와 G7 와이너리가 협업해 내놓은 캔 형태의 화이트와인은 야외 활동을 즐기는 젊은 층 사이에서 ‘와인의 간결화’를 이끌어내며 매출 증대에 기여했다.

하이볼 2.0과 ‘K-리큐르’가 이끄는 경험의 가치

소주와 맥주의 빈자리를 가장 빠르게 꿰찬 것은 하이볼이다. 직접 위스키와 탄산수를 섞던 단계를 넘어, 이제는 편의점에서 캔만 따면 완성된 맛을 즐기는 ‘RTD 하이볼 2.0’ 시대가 열렸다. 유명 셰프의 비법을 담거나 감칠맛을 강조한 제품들은 퇴근길 직장인들의 장바구니를 점령했다. 편의점 주류 매대의 주인이 수제맥주에서 하이볼로 바뀌는 현상은 현시점 가장 뚜렷한 변화다.

전통주의 반전도 거세다. 명절 술이라는 낡은 이미지를 벗고 ‘K-리큐르’라는 새로운 옷을 입은 전통주는 2030 세대 매출이 130% 폭증하는 기염을 토했다. 감각적인 병 디자인과 세련된 이미지를 구축한 ‘티나(TINA)’ 같은 브랜드는 클럽이나 바에서도 어울리는 프리미엄 콘텐츠로 대접받는다. 백화점 팝업 스토어마다 ‘오픈런’ 사태를 빚는 전통주의 인기는 젊은 세대가 희소성과 스토리에 얼마나 민감하게 반응하는지를 보여주는 지표다. 이들은 이제 술을 마시는 것이 아니라 브랜드가 가진 서사를 소비한다.

지브라 스트라이핑과 소버 라이프의 정착

음주 방식 또한 혁명적으로 바뀌었다. 술자리에서 알코올 음료와 논알콜 음료를 번갈아 마시는 ‘지브라 스트라이핑(Zebra Striping)’은 더 이상 낯선 풍경이 아니다. 2024년 704억 원 수준이던 국내 무·논알코올 시장은 매년 두 자릿수 성장을 이어가며 주류 시장의 한 축으로 안착했다. 다음 날의 일상을 망치지 않으면서도 분위기를 즐기려는 스마트한 소비가 자리를 잡은 셈이다.

하이볼 이미지 / Yuzuru Gima-shutterstock.com
하이볼 이미지 / Yuzuru Gima-shutterstock.com

밤늦은 시간까지 이어지던 회식 문화는 이른 오후 가볍게 한 잔을 즐기는 ‘애프터눈 소사이어티(Afternoon Society)’로 대체됐다. 퇴근 후 러닝 크루와 함께 땀을 흘리고 무알코올 맥주로 갈증을 해소하거나, 늦은 오후 카페에서 칵테일 한 잔을 곁들이는 루틴이 일상이 됐다. 전국 1만 3000개 이상의 유통 점포들은 이러한 변화에 발맞춰 논알콜 매대를 확장하고 저도주 위주의 라인업을 강화하고 있다.

전통 주류의 매출 급감은 기업들에게 사활을 건 변화를 요구했다. 기존 제조 방식에 안주하던 업체들은 이제 종합 콘텐츠 기업으로 탈바꿈 중이다. 단순히 술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해당 주류가 소비되는 공간과 문화를 설계하는 데 집중한다. 증류식 소주의 프리미엄화나 해외 산지와의 직접 협업을 통한 단독 PB 와인 출시 등은 이러한 노력의 일환이다.


home 김지현 기자 jiihyun1217@wikitre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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