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닭 울음소리'까지 들린다?…뱃길로 4시간, 한반도 최서남단 '이 섬'

2026-05-08 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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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포에서 뱃길로 4시간, 국토의 끝에서 만나는 '가거도'

지도를 넓혀 한반도 서남쪽 끝자락을 바라보면 망망대해 위에 홀로 떠 있는 섬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이곳이 바로 대한민국 최서남단 ‘가거도’다.

가거도 / sang woon-Shutterstock.com
가거도 / sang woon-Shutterstock.com

전라남도 신안군에 속한 가거도는 거친 바다와 긴 항로를 지나야 닿을 수 있는 국토의 끝자락이다. 멀리 떨어진 위치만큼 상징성도 뚜렷하다. 우리나라 서남해의 경계를 지키는 섬으로 오래 기억되는 곳이다.

가거도는 목포항에서 직선거리로 145km 떨어져 있으며, 중국 상하이와의 거리는 약 435km다. 이는 서울에서 가거도까지의 거리와 비슷하다. 이러한 지리적 조건 때문에 가거도에는 예부터 “바람이 잔잔한 날이면 중국 땅의 새벽닭 울음소리가 들려온다”라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가히 사람이 살 만한 섬'

가거도라는 이름에는 여러 의미가 담겨 있다. 먼저 ‘가히 사람이 살 만한 섬’이라는 뜻의 가거(可居)에서 유래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험준한 산세와 거친 파도에 둘러싸여 있지만, 풍요로운 바다 자원과 맑은 물을 갖추고 있어 삶을 이어가기에 부족함이 없다는 뜻이다.

가거도 / ⓒ한국관광콘텐츠랩
가거도 / ⓒ한국관광콘텐츠랩

또 다른 설도 전해진다. ‘가도 가도 끝이 보이지 않는 섬’이라 하여 가거도라 불리게 됐다는 이야기다. 실제로 목포항에서 쾌속선으로 약 3시간 30분에서 4시간 30분가량을 이동해야 닿을 수 있는 곳이다. 육지에서 바라보는 가거도는 물리적으로도, 심리적으로도 먼 섬이었다. 과거에는 소흑산도로 불리기도 했으나, 이후 가거도라는 본래 이름을 되찾아 오늘에 이르고 있다.

섬의 중심에 우뚝 선 '독실산'

가거도의 중심에는 해발 639m의 독실산이 솟아 있다. 신안군의 여러 섬 가운데 가장 높은 봉우리로, 가거도의 지형과 풍경을 이루는 핵심이다. 섬 전체 면적의 상당 부분이 급경사지로 이루어져 있어 어디를 바라보아도 산세와 기암괴석이 시야에 들어온다.

가거도 풍경 / ⓒ한국관광콘텐츠랩
가거도 풍경 / ⓒ한국관광콘텐츠랩

안개가 자욱하게 깔린 날 독실산 정상에 오르면 발 아래로 운해가 흘러가고, 그 사이로 절벽과 능선이 모습을 드러낸다. 바다 위에 솟은 산이라는 가거도만의 지형이 만들어내는 장면이다. 울창한 상록수림과 후박나무 군락도 섬의 생태적 가치를 더한다. 숲길을 따라 걷다 보면 육지에서는 쉽게 보기 어려운 식생이 어우러져 가거도의 자연을 가까이 느낄 수 있다.

섬등반도에서 만나는 가거도의 절경

가거도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경관은 섬 서쪽에 자리한 섬등반도다. 국가 명승으로 지정된 이곳은 가거도의 자연미를 대표하는 장소다. 섬 동쪽에서 서쪽으로 뻗어 내린 반도형 지형으로, 깎아지른 해안 절벽과 해식애가 병풍처럼 이어진다. 주민들이 이곳을 ‘섬등병풍 바위’라고 부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오랜 세월 파도와 바람이 깎아낸 주상절리와 기암괴석은 가거도의 자연을 그대로 보여준다. 특히 섬등반도에서 바라보는 낙조는 관광객들이 오래 기억하는 장면 가운데 하나다. 저물어가는 태양이 바다와 절벽 사이로 붉은빛을 드리우면, 기암괴석의 능선은 짙은 실루엣이 되어 수평선 위에 선명하게 떠오른다.

가거도 섬등반도 / 뉴스1
가거도 섬등반도 / 뉴스1

고대 해상 교역의 길목이었던 섬

가거도는 오래전부터 바다의 길목 역할을 해왔다. 통일신라시대에는 당나라와 교역하던 배들이 거친 바다를 피해 잠시 머물며 식수를 보충하고, 순풍을 기다리던 중간 기항지로 이용됐다. 섬 곳곳에서 발견된 패총 유적은 선사시대부터 사람들이 이곳에 살며 바다와 함께 살아왔음을 보여준다.

이 같은 지리적 가치는 오늘날에도 이어진다. 가거도는 서해안 어업의 전진기지이자, 한중일 어선들이 오가는 황금어장 인근에 자리한다. 영해 기점으로서 안보와 해양 영토 수호 측면에서도 의미가 크다. 단순히 멀리 있는 섬이 아니라 우리 바다의 경계를 지키는 중요한 거점이다.

바닷새가 쉬어 가는 구굴도

가거도 주변 바다에는 생태적으로 중요한 공간도 있다. 가거도 등대 앞바다에 있는 무인도 구굴도, 또는 국흘도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바닷새들의 번식지다. 이곳에서는 전 세계적으로 희귀한 여름 철새인 슴새와 뿔쇠오리, 바다제비 등이 번식한다.

매년 봄과 가을이면 철새들이 이동 중에 가거도 일대를 찾는다. 사람의 발길이 쉽게 닿지 않는 무인도와 거친 파도는 오히려 생명을 지키는 울타리가 된다. 이 같은 생태적 중요성 때문에 가거도 주변 해역은 해양보호구역으로 지정돼 관리되고 있다.

구굴도(국흘도) / sang woon-Shutterstock.com
구굴도(국흘도) / sang woon-Shutterstock.com

사계절 풍성한 가거도의 바다

가거도의 매력은 풍경에만 머물지 않는다. 섬을 둘러싼 바다는 사계절 풍성한 식재료를 내어준다. 멸치, 조기, 갈치, 다랑어를 비롯해 감성돔과 돌돔 같은 어종도 풍부하다. 낚시를 즐기는 이들에게 가거도는 한 번쯤 찾아가 보고 싶은 섬으로 꼽힌다.

겨울철에는 육질이 단단한 감성돔이 주로 잡히고, 여름철에는 농어와 돌돔이 낚시꾼을 반긴다. 거친 조류 속에서 자란 어종은 활동량이 많아 식감이 탄탄한 편이다. 가거도의 음식이 담백하면서도 깊은 맛을 내는 이유도 이처럼 신선한 바다 재료에 있다.

해산물 가운데 가거도 사람들이 으뜸으로 치는 것은 자연산 전복과 뿔소라다. 해녀들이 깊은 바다에 들어가 채취한 전복은 크기와 풍미가 남다르다. 뿔소라는 오독오독 씹히는 식감이 좋아 회로 먹거나 살짝 데쳐 먹기 좋다. 바위틈에 서식하는 배말, 즉 삿갓조개와 거북손도 가거도에서 맛볼 수 있는 별미다. 주민들은 이를 국물 요리나 죽으로 끓여 먹으며 바다의 깊은 감칠맛을 살린다.

가거도 / ⓒ한국관광콘텐츠랩
가거도 / ⓒ한국관광콘텐츠랩

멸치잡이 노래에 담긴 섬사람들의 삶

전라남도 무형유산으로 지정된 ‘가거도 멸치잡이 노래’는 이 섬의 수산 자원이 얼마나 풍부했는지를 보여주는 문화적 자산이다. 거친 파도와 싸우며 멸치를 잡던 어부들이 노동의 고단함을 덜고 만선을 기원하며 부르던 노래다. 그 안에는 가거도 사람들의 강인한 삶과 바다를 향한 의지가 담겨 있다.

멸치는 지금도 가거도의 주요 특산물 가운데 하나다. 맑은 바다에서 잡은 멸치를 소금에 절여 삭힌 멸치젓은 깊은 감칠맛으로 알려져 있다. 겨울철 주민들이 직접 채취하는 돌김과 미역도 빼놓을 수 없다. 거센 물살을 견디며 자란 미역은 끓일수록 국물이 뽀얗게 우러나고, 식감도 부드러우면서 쫄깃하다.

대리·항리·대풍리, 세 마을을 잇는 여행

가거도에는 대리, 항리, 대풍리 세 마을이 자리한다. 여객선이 닿는 대리 마을은 섬의 관문이자 행정과 생활의 중심지다. 마을 뒤로는 산줄기가 병풍처럼 둘러서 있고, 앞으로는 바다가 펼쳐져 아늑한 분위기를 만든다.

대리에서 산길을 따라 이동하면 항리 마을을 만날 수 있다. 항리는 섬등반도의 절경을 가까이서 감상할 수 있는 곳이다. 소박한 민박집들이 모여 있어 조용히 머물며 자연을 바라보고 싶은 여행객에게 어울린다. 대풍리 마을은 접근이 다소 까다롭지만, 그만큼 인위적인 손길이 덜 닿은 어촌 풍경을 간직하고 있다.

세 마을을 잇는 길은 걷기를 좋아하는 관광객에게 좋은 코스가 된다. 해안선을 따라 걷다 보면 발밑으로 부서지는 파도 소리와 절벽의 위용을 동시에 느낄 수 있다. 독실산 트레킹 코스는 섬의 지형을 온몸으로 체감하게 한다. 정상에 올라 내려다보는 가거도의 풍경은 긴 이동의 수고를 잊게 할 만큼 시원하다.

가거도 등대 / ⓒ한국관광콘텐츠랩
가거도 등대 / ⓒ한국관광콘텐츠랩

가거도 등대도 빼놓을 수 없는 장소다. 1907년 처음 불을 밝힌 이래 1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서남해안을 항해하는 선박들의 길잡이가 되어왔다. 바다와 섬, 등대가 함께 놓인 풍경은 가거도 여행에서 만나는 또 하나의 인상적인 장면이다.

날씨와 배편을 꼭 확인해야 하는 곳

가거도 여행을 계획할 때 가장 유의해야 할 점은 날씨다. 국토의 최서남단에 위치한 만큼 외해의 거친 풍랑에 직접 노출돼 선박 결항이 잦은 편이다. 기상 상황에 따라 일정이 바뀔 수 있으므로 방문 전 일기예보와 선사 공지사항을 확인해야 한다.

목포 연안여객선터미널에서 출발하는 여객선은 여러 섬을 거쳐 가거도에 닿는다. 긴 항해 시간은 불편함으로 느껴질 수도 있지만, 동시에 가거도가 얼마나 깊고 먼 바다 위에 자리한 섬인지를 실감하게 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먼 길을 지나 도착했을 때 마주하는 풍경은 그래서 더 선명하게 남는다.

국토 끝에서 만나는 느린 시간

가거도에 도착하면 가장 먼저 느껴지는 것은 자연의 압도적인 존재감이다. 웅장한 독실산과 기암괴석이 이어진 해안선은 도시의 번잡함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를 전한다. 파도가 빚어낸 해식동굴, 수평선 너머로 저무는 일몰, 바람에 흔들리는 숲길은 관광객의 발걸음을 천천히 붙든다.

이곳에서의 시간은 육지보다 느리게 흐르는 듯하다. 주민들의 소박한 삶과 척박한 자연환경을 이겨내며 일군 터전은 가거도를 더 깊이 바라보게 한다. 섬이라는 제한된 환경 속에서 자연이 허락한 만큼만 취하며 살아가는 방식은 여행객에게도 조용한 울림을 남긴다.

식재료의 신선함은 여정의 즐거움을 더한다. 갓 잡은 생선을 회로 맛보거나, 주민들의 손맛이 담긴 해산물 요리를 즐기는 일은 가거도 여행의 큰 기쁨이다. 조미료에 기대기보다 재료 본연의 맛을 살린 음식은 담백하면서도 깊다. 미역국 한 그릇, 전복 한 점, 뿔소라 한 접시에는 거친 바다가 길러낸 맛과 섬사람들의 생활이 함께 담겨 있다.

사계절 다른 얼굴로 맞이하는 섬

가거도는 계절마다 다른 풍경을 보여준다. 봄에는 산나물과 신록이 섬을 밝히고, 여름에는 시원한 바닷바람이 더위를 식혀준다. 가을에는 섬등반도 능선의 억새가 바람에 일렁이며, 겨울에는 거친 파도가 몰아치는 바다의 웅장함을 만날 수 있다. 계절에 따라 달라지는 어종과 제철 해산물은 여행의 즐거움도 더한다.

국토의 끝이라는 상징성, 거친 자연이 빚은 절경, 풍요로운 바다와 그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시간은 가거도를 쉽게 잊히지 않는 섬으로 만든다. 멀고 긴 여정 끝에 닿는 곳이지만, 그만큼 선명한 풍경과 깊은 여운을 남기는 여행지다.

가거도 여정을 마치고 돌아오는 배 위에서 멀어지는 섬의 실루엣을 바라보면, ‘가히 사람이 살 만한 섬’이라는 이름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된다.

home 양주영 기자 zoo123@wikitre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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