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열리면 '바다'가 바로 보인다…국내에서 해변과 가장 가까운 '기차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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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차에서 내리면 바다가 열리는 곳, 정동진역
기차가 멈추고 승강장에 발을 내딛는 순간, 동해의 수평선이 눈앞으로 들어온다. 철길과 바다가 가까이 놓인 풍경은 정동진역을 강릉 여행의 출발점으로 만든다.

바다와 가장 가까운 기차역에서 시작하는 여행
강원특별자치도 강릉시에 있는 정동진역은 국내에서 바다와 가장 가까운 기차역으로 꼽히는 곳이다. 승강장에 서면 플랫폼 너머로 동해가 바로 보이고, 열차가 들어오는 소리 사이로 파도 소리가 함께 들린다. 바다를 보기 위해 다시 이동할 필요 없이, 기차에서 내리는 순간 이미 바다 앞에 도착한다는 점이 정동진역의 가장 큰 매력이다.

정동진이라는 지명은 한양에서 정동쪽에 있는 나루터라는 뜻을 지닌다. 조선시대부터 지리적 상징성을 품은 이 마을에 기차역이 들어선 시기는 1962년이다. 현재는 대표적인 기차 여행지로 자리 잡았지만, 처음부터 관광지의 성격이 강한 역은 아니었다. 당시 영동선의 주요 물류 거점이었던 정동진역은 인근 탄광에서 나온 석탄을 운송하며 지역 산업과 생활을 잇는 중요한 교통로 역할을 했다.
1970년대와 1980년대 초반 탄광업이 활발하던 시기에는 정동진 일대에 사람과 물자가 꾸준히 오갔다. 광부들의 출퇴근과 석탄 운송이 이어지며 작은 어촌 마을에도 산업 현장의 활기가 더해졌다. 이후 1980년대 후반 석탄 산업이 쇠퇴하면서 지역 분위기도 달라졌다. 인근 광산이 하나둘 문을 닫고 주민들이 마을을 떠나자, 정동진역도 한동안 이용객이 드문 조용한 바닷가 역으로 남았다.

정동진이 다시 많은 사람의 발길을 모은 계기는 1990년대 중반 대중문화의 흐름과 맞물린다. 특히 1995년 방영돼 ‘귀가 시계’라 불릴 만큼 전국적인 신드롬을 일으킨 드라마 ‘모래시계’의 주요 촬영지로 정동진역과 주변 바다가 등장하면서, 이 작은 역의 풍경은 전국적으로 각인됐다. 극 중 여주인공이 기차를 기다리던 승강장의 소나무는 이후 ‘모래시계 소나무’ 또는 ‘고현정 소나무’라는 별칭을 얻으며 정동진역을 상징하는 명물이 됐다.
정동진역의 매력은 화려한 시설보다 위치 자체에서 나온다. 승강장과 해안의 거리가 가까워 바다를 바라보는 시야가 넓고, 철길 옆으로 해송과 방파제, 파란 표지판이 어우러진다. 맑은 날에는 하늘과 바다가 선명하게 맞닿고, 열차가 지나간 뒤에는 파도 소리만 남는다. 국내에서 손꼽히는 일출 명소답게 이른 아침 바다 풍경을 보려는 발길도 꾸준하다. 기차를 타지 않더라도 역 주변을 중심으로 산책하기 좋다.
승강장 앞 해변과 모래시계공원
정동진역을 나서면 가장 먼저 만나는 곳은 정동진해변이다. 이 해변은 역 앞 구간, 모래시계공원 앞 구간, 정동진 방파제 주변으로 나눠 볼 수 있다. 역 앞 해변은 기차에서 내린 직후 바다를 마주할 수 있다는 점이 두드러진다. 모래시계공원 앞 해변은 산책로와 공원 시설을 함께 이용하기 좋고, 방파제 쪽은 어촌 마을의 차분한 분위기가 남아 있다. 같은 정동진해변이라도 서 있는 위치에 따라 풍경의 결이 조금씩 달라진다.

정동진해변은 바닷바람을 맞으며 걷기 좋은 산책지다. 초여름으로 접어드는 시기에는 햇빛이 강해지지만 한여름 성수기 전의 여유가 남아 있어 해변을 천천히 둘러보기 알맞다. 동해의 수평선이 넓게 열리는 곳이라 이른 아침 풍경도 인기가 높다.
역에서 해안로를 따라 걸으면 모래시계공원으로 이어진다. 이 공원은 새천년을 기념해 조성한 공간으로, 중앙에 대형 모래시계가 놓여 있다. 정동진 모래시계는 지름 8.06m, 폭 3.20m, 무게 40톤 규모이며, 내부 모래 무게는 8톤이다. 모래가 모두 아래로 떨어지는 데 걸리는 시간은 1년이다. 매년 연말과 새해에는 시간을 상징하는 이 구조물을 중심으로 행사가 열린다.

모래시계공원은 정동진이 가진 ‘시간’의 이미지를 잘 보여주는 공간이다. 기차역이 떠남과 도착을 떠올리게 한다면, 모래시계는 한 해의 흐름을 눈앞에 세워 둔다. 공원에는 산책로와 조형물, 바다를 향한 휴식 공간이 있어 역을 둘러본 뒤 천천히 걸음을 옮기기 좋다. 역과 해변, 공원이 가까워 짧은 일정에도 정동진의 대표적인 장면을 차례로 만날 수 있다.
정동진역 인근에서는 레일바이크도 이용할 수 있다. 정동진 레일바이크는 역 주변 철길과 해안 풍경을 함께 즐길 수 있는 체험 시설이다. 바다와 철길이 가까운 지역 특성이 잘 드러나는 활동이라 가족 단위 방문객이나 가볍게 체험형 일정을 넣고 싶은 이들이 찾는다. 운영 시간과 요금은 계절, 정비 일정, 현장 사정에 따라 달라질 수 있으므로 이용 전 공식 안내를 확인해야 한다.
정동진에서 이어지는 해안 길
정동진역을 중심으로 조금 더 넓게 움직이면 정동심곡 바다부채길을 일정에 넣을 수 있다. 이 길은 정동진과 심곡항 사이 해안을 따라 조성된 탐방로다. 동해의 해안단구 지형을 가까이에서 볼 수 있는 곳으로, 바위 절벽과 파도, 수평선이 이어지는 풍경이 정동진역 앞 해변과는 다른 인상을 남긴다. 바다를 가까이 두고 걷는 길인 만큼 강풍이나 높은 파도, 기상 악화 시에는 출입이 제한될 수 있다.

바다부채길은 절벽과 바위가 이어지는 해안을 따라 걷는 코스다. 데크길 위에서는 파도가 바위에 부딪치는 장면을 가까이에서 볼 수 있고, 구간에 따라 바다를 내려다보는 시야도 열린다. 길 자체가 여행의 중심이 되는 곳인 만큼 편한 신발을 준비하는 것이 좋다.
차량을 이용한다면 헌화로도 함께 둘러보기 좋다. 헌화로는 정동진과 금진 일대를 잇는 해안도로로, 동해와 가까이 맞닿은 구간이 많다. 길 이름에는 수로부인 설화와 관련한 이야기가 담겨 있다. 정동진역과 바다부채길, 심곡항, 금진해변을 차례로 잇는 동선으로도 알맞다.

높은 곳에서 바라보는 바다
정동진 주변에는 바다를 높은 곳에서 조망할 수 있는 장소도 있다. 썬크루즈 테마공원은 배 모양의 건축물과 조형 공간으로 잘 알려진 곳이다. 정동진역이 바다를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마주하는 장소라면, 이곳에서는 해안선과 수평선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다. 역과 해변을 먼저 둘러본 뒤 이동하면 정동진 바다를 또 다른 시선으로 볼 수 있다.
하슬라아트월드도 정동진권 여행에서 함께 들르기 좋은 문화 공간이다. 강릉 남쪽 해안 지형을 활용한 미술관과 야외 조각 공간이 있어 바다 전망과 전시 관람을 함께 즐길 수 있다. 정동진역에서 걸어서 바로 이어지는 코스는 아니지만, 차량을 이용한다면 모래시계공원, 바다부채길, 헌화로와 함께 하루 일정으로 구성하기 좋다.

정동진은 어디에서 바라보느냐에 따라 바다의 인상이 달라진다. 정동진역에서는 철길과 바다가 맞닿은 듯한 장면을 가까이에서 볼 수 있고, 바다부채길과 헌화로에서는 해안선을 따라 이어지는 동해를 더 넓게 마주할 수 있다.
강릉 여행에 더하는 지역의 맛
정동진 여행에서는 강릉 지역 음식도 함께 즐길 수 있다. 대표적인 음식은 초당두부다. 강릉 초당두부는 바닷물을 간수로 활용해 만드는 두부로, 부드러운 식감과 담백한 맛이 특징이다. 초당동 일대에는 순두부와 두부 요리를 내는 식당이 모여 있어 정동진에서 강릉 시내나 경포권으로 이동할 때 들르기 좋다.
정동진항과 주변 해안가에서는 회, 물회, 생선구이, 해산물 비빔밥 등을 맛볼 수 있다. 바다를 가까이 둔 지역인 만큼 해산물 메뉴를 곁들이면 여행의 흐름도 한층 풍성해진다.
강릉 중앙시장도 일정에 넣기 좋다. 정동진에서 강릉 시내로 이동하면 중앙시장과 성남시장 일대가 이어지고, 이곳에서는 수산물과 건어물, 지역 간식, 특산품을 폭넓게 만날 수 있다. 정동진역에서 바다를 본 뒤 강릉역 방향으로 이동해 시장을 둘러보면 해안 풍경과 도심 상권을 함께 경험할 수 있다.
카페에서 잠시 쉬어 가는 시간도 여행의 재미를 더한다. 안목해변 커피거리는 정동진과 거리가 있지만, 강릉 시내와 해변을 함께 둘러보는 일정이라면 코스에 넣기 좋다.
철도 접근성이 넓힌 정동진 여행
정동진은 기차역 자체가 여행의 중심이 되는 곳인 만큼 철도 접근성의 변화도 의미가 크다. 현재 동해선 KTX-이음은 강릉과 부전을 오가며 동해안 남북 이동을 한층 편하게 잇고 있다. 강릉에서 출발한 열차는 정동진, 묵호, 동해, 삼척, 울진, 영덕, 포항 등을 거쳐 부전까지 운행한다. 하루 운행 횟수는 상·하행 각 3회씩 총 6회이며, 부전~강릉 구간 평균 소요 시간은 3시간 50분대다.
이 노선의 운행으로 정동진은 강릉권 여행지에 머물지 않고 동해안 철도 여행의 중간 거점으로도 활용도가 높아졌다. 부산·울산권과 경북 동해안, 강원 동해안이 한 노선으로 이어지면서 정동진을 포함한 해안 여행의 선택지도 넓어졌다. 수도권에서는 강릉선 KTX와 일반 열차, 지역 교통을 함께 활용해 정동진으로 접근할 수 있다.

정동진 여행은 당일 일정으로도 가능하다. 다만 이른 아침 바다 풍경을 보려면 첫차와 지역 교통 시간을 함께 살펴야 한다. 주말과 연휴에는 열차표와 숙소 예약이 빠르게 마감될 수 있어 일정이 정해지면 미리 예매하는 게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