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격적...한국인 80%는 '이 돈' 한꺼번에 타서 쓰고 있다

작성일

add remove print link

목돈 소비 습관, 노후 빈곤 위험으로 변신한다
연금 외면 문화, 초고령사회의 뇌관이 되다

초고령사회 진입 속도가 빨라지는 가운데 퇴직연금을 노후 생활비가 아닌 ‘목돈’ 개념으로 소비하는 경향이 여전히 강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퇴직연금을 수령한 사람 10명 가운데 8명 이상이 연금 대신 일시금을 선택한 것으로 조사되면서, 정부와 금융당국이 장수리스크 대응 방안 마련에 나섰다.

고용노동부와 금융감독원은 14일 퇴직연금 사업자들을 대상으로 ‘퇴직연금 장수리스크 대응 방안’ 세미나를 열고 제도 개선 방향을 논의했다. 핵심은 평균 수명이 길어지는 상황에서 퇴직연금이 단순 목돈이 아니라 안정적인 노후 소득원 역할을 해야 한다는 점이다.

당국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퇴직연금 수급을 시작한 인원은 총 60만1000명이었다. 이 가운데 50만2000명, 전체의 83%가 연금 형태가 아닌 일시금으로 퇴직금을 받아갔다. 연금 형태로 수령한 사람은 9만9000명으로 16% 수준에 그쳤다.

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한 AI 생성 이미지
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한 AI 생성 이미지

연금 수령을 선택한 경우에도 상당수가 단기 수령을 택했다. 연금 수급자의 약 82%는 10년 이하의 단기 연금을 선택한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20년을 초과해 장기적으로 연금을 받겠다고 선택한 비율은 2.3%에 불과했다. 사실상 퇴직연금을 ‘은퇴 후 평생 생활비’ 개념보다 일정 기간 사용하는 자금이나 목돈 성격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강하다는 의미다.

전문가들은 이런 구조가 장수리스크를 키울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장수리스크란 기대수명 증가로 인해 은퇴 이후 필요한 생활 기간이 길어지면서 노후 자금이 예상보다 빨리 고갈되는 위험을 말한다. 한국은 이미 초고령사회에 진입했으며 평균수명 역시 꾸준히 증가하고 있어, 은퇴 이후 20~30년 이상 생활해야 하는 사례가 점차 늘어나는 상황이다.

세미나 참석자들은 퇴직연금 적립금을 중도에 인출하는 관행을 줄이는 방안도 논의했다. 현재 일부 가입자들은 생활자금이나 부채 상환 등을 위해 퇴직연금을 조기 인출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장기 복리 효과를 떨어뜨리고 노후 자산 축적에도 부정적 영향을 준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에 따라 적립금을 깨는 대신 담보대출 같은 대체 금융수단을 활용하도록 유도해야 한다는 의견이 제시됐다. 김대환 동아대 교수는 세미나에서 “적립금 담보대출을 활성화해 가입자들이 퇴직연금 제도를 장기간 유지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밝혔다.

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한 사진 / 뉴스1
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한 사진 / 뉴스1

현재 국내 퇴직연금 시장에서는 신탁형 상품의 구조적 한계도 문제로 지적된다. 신탁형 계약의 경우 종신연금이 생존 기간에 따라 적립금 전액 반환이 보장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가입이 제한되는 사례가 있다. 일부 금융사는 연금 수령 기간 자체를 최대 20년으로 제한하고 있다.

이 때문에 사망 시 남은 적립금을 유족에게 반환하는 구조의 종신연금 상품 개발 필요성이 제기됐다. 참석자들은 장기적으로는 일반 종신연금 선택 폭을 확대해야 한다는 의견도 내놨다. 하나은행은 한국과 영국·호주 사례를 비교하며 장기 연금상품 확대 필요성을 발표했다.

또 연금 수령 기간 동안 안정적인 수익을 확보할 수 있는 상품 개발 필요성도 언급됐다. 전문가들은 장기간 자산을 운용해야 하는 만큼 단순 예금형 상품보다는 분산투자와 자산배분 전략을 활용한 연금 운용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원금 손실 가능성은 낮추면서 일정 수준 이상의 수익률을 기대할 수 있는 보증형 실적배당보험 같은 상품 활성화 방안도 논의 대상에 올랐다.

금융감독원 서재완 부원장보는 “장기간 연금 수령이 가능하도록 상품 구조를 정비할 필요가 있다”며 “퇴직 이후 장기간에 걸친 소득 흐름을 반영해 맞춤형 연금 인출 전략을 제시하는 등 퇴직연금 사업자가 노후 설계 파트너 역할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한 사진 / 뉴스1
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한 사진 / 뉴스1

고용노동부는 앞으로 도입될 기금형 제도에서도 연금상품 다양화와 맞춤형 인출 솔루션 확대 등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정부는 퇴직연금 사업자 및 관련 협회들과 함께 올해 하반기 중 퇴직연금 가이드북도 제작·배포할 예정이다. 해당 가이드북에는 적립부터 인출까지 실제 사례와 노후 자산 관리 방법 등이 담길 예정이다.

전문가들은 한국의 퇴직연금 제도가 빠르게 성장하고 있지만 여전히 “퇴직금 수령” 중심 인식이 강하다고 지적한다. 특히 부동산 구입, 자녀 교육비, 대출 상환 등에 목돈이 필요한 문화가 여전히 강해 연금 본래 기능이 약화되고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반면 미국·영국·호주 등 일부 국가에서는 퇴직연금을 장기간 인출하며 은퇴 후 소득을 유지하는 방식이 일반화돼 있다.

고령화 속도가 세계 최고 수준인 한국에서도 퇴직연금의 역할 변화가 불가피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은퇴 이후 생존 기간이 길어지는 만큼 단기간에 자금을 소진할 경우 노후 빈곤 위험이 커질 수 있어, 장기 연금 수령 문화 정착이 중요한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home 김민정 기자 wikikmj@wikitre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