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도검열은 민주주의 파괴의 출발점”…광주전남언론인회, 5·18 앞두고 특별 시민강좌 개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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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언 전 한국기자협회장 초청 강연…“보도검열관실 복원은 역사·민주주의 교육의 상징”
전직 언론인·시민 100여 명 참석…“언론 통제의 어두운 역사 반드시 기록해야”
[위키트리 광주전남취재본부 노해섭 기자] 광주전남언론인회(회장 김성)가 제46주년 5·18민주화운동 기념일을 앞두고 언론 검열의 실상과 민주주의의 의미를 되새기는 특별 시민강좌를 열었다.
광주전남언론인회는 14일 오후 5·18민주화운동기록관 강당에서 김주언 전 한국기자협회장을 초청해 ‘광주 5·18 민중항쟁과 보도검열’아리는 주제로 공개 강연을 진행했다.
이날 행사에는 전직 언론인과 시민 등 100여 명이 참석했으며, 국민의례를 시작으로 김성 회장의 내빈 소개와 강사 소개가 이어졌다. 행사장에는 5·18 당시 언론 통제와 검열의 진실을 기억해야 한다는 공감대 속에 무거운 긴장감과 진지한 분위기가 이어졌다.
김성 회장은 인사말에서 “광주전남언론인회가 사단법인으로 새롭게 출범한 이후 처음 마련한 시민 공개강좌”라며 “5·18 민주화운동 당시 언론 검열의 참상을 시민들과 함께 공유하고 기억하기 위해 자리를 마련했다”고 밝혔다.이어 “광주전남언론인회는 옛 전남도청 복원 사업 과정에서 3년 넘게 보도검열관실 복원을 요구해 왔지만 아직 반영되지 않고 있다”며 “5·18 당시 언론 자유가 어떻게 짓밟혔는지를 후세에 알리기 위해서라도 보도검열관실은 반드시 복원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오는 18일 전남도청 복원 개관을 앞두고 있지만 정작 언론 탄압의 상징적 공간인 보도검열관실은 제외돼 안타깝다”며 “강연 이후에도 도청 앞에서 릴레이 1인 시위를 이어가며 지속적으로 복원을 촉구하겠다”고 말했다.
강연에 나선 김주언 전 회장은 자신이 1980년 4월 언론사에 입사해 견습기자 시절 직접 보도검열 현장을 경험했다고 소개하며 당시의 참담했던 언론 현실을 증언했다.
그는 “광주민주화운동 직전 언론사에 입사해 서울의 검열 현장을 직접 드나들며 신문 기사들이 어떻게 삭제되고 왜곡되는지를 지켜봤다”며 “광주 현장에서 올라온 취재 메모를 전화로 받아 적으며 시민들이 겪는 참혹한 상황을 알았지만 정작 신문에는 단 한 줄도 제대로 실리지 못했다”고 회고했다.
김 전 회장은 “보도검열은 단순한 언론 통제가 아니라 권력을 장악하려는 내란 세력의 핵심 수단이었다”며 “언론을 통제하지 않고서는 여론을 조작할 수 없고, 여론을 조작하지 않고서는 권력을 탈취할 수 없다는 인식이 독재 정권 내부에 자리 잡고 있었다”고 주장했다.
이어 “1980년 전두환 신군부는 물론 박근혜 정부 시절 기무사 계엄 문건, 최근 윤석열 정부 시기 비상계엄 논란에서도 언론 통제와 인터넷 차단 시도가 등장했다”며 “언론 검열은 시대를 달리하며 반복된 민주주의 파괴 방식”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특히 “비상계엄은 단순한 군사 통제가 아니라 헌법상 보장된 표현의 자유와 언론 자유를 사전에 봉쇄하는 위헌적 행위였다”며 “계엄과 보도검열은 민주주의 사회에서 절대 반복돼서는 안 될 역사”라고 강조했다.
또한 당시 보도검열단의 구조와 운영 실태도 상세히 설명했다. 김 전 회장은 “보도검열단은 단순히 군인들만 참여한 조직이 아니라 문화공보부 공무원과 민간 인력까지 함께 운영됐다”며 “신문·방송·통신·잡지뿐 아니라 대학신문과 기업 사보, 각종 인쇄물까지 검열 대상이 됐다”고 설명했다.
이어 “서울시청 내 보도검열단 사무실에서는 매일 검열 지침이 내려왔고, 언론사들은 그 지침에 따라 기사를 미리 걸러낸 뒤에도 다시 검열관의 삭제와 수정 지시를 받아야 했다”고 말했다.
김 전 회장은 “당시 검열은 단순한 기사 삭제를 넘어 진실을 숨기고 왜곡된 정보를 생산하는 체계였다”며 “광주 시민들의 질서 유지와 공동체적 모습은 철저히 삭제됐고, 대신 폭동과 혼란 이미지가 강조됐다”고 비판했다.
그는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실제 현장은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질서를 유지하며 공동체를 지켜낸 공간이었지만 검열된 언론은 이를 철저히 배제했다”며 “결국 광주를 폭동으로 몰아간 왜곡 보도의 출발점 역시 보도검열이었다”고 말했다.
또 “당시 계엄사 발표 외에는 모든 개별 취재가 금지됐고, 시위 참가자들의 주장이나 피해 상황, 시민들의 평온한 일상은 보도 자체가 차단됐다”며 “반대로 시위대의 방화·약탈·폭력 이미지는 적극 보도하도록 지침이 내려왔다”고 설명했다.
그는 “검열단은 유언비어를 막는다는 명분을 내세웠지만 실제로는 진실을 말하는 시민과 기자들을 처벌하는 역할을 했다”며 “광주의 진실을 전한 시민들이 유언비어 유포 혐의로 구속됐고 수십 년이 지나 무죄 판결을 받은 사례도 있다”고 밝혔다.
특히 김 전 회장은 “보도검열은 결국 국가 권력이 생산한 거대한 가짜뉴스 시스템이었다”고 규정했다.
그는 “당시 왜곡된 보도와 허위 발표들이 지금까지도 일부 극우 세력과 혐오 정치 속에서 반복적으로 재생산되고 있다”며 “그래서 더욱 보도검열관실 복원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어 “보도검열관실은 단순한 과거 공간 복원이 아니라 민주주의 교육 현장이 돼야 한다”며 “폴란드의 아우슈비츠나 서울 남영동 대공분실처럼 국가폭력과 민주주의 파괴의 역사를 기억하는 공간으로 조성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전 회장은 “남영동 대공분실은 고문과 국가폭력의 실상을 그대로 보존해 민주주의 교육 공간으로 활용하고 있다”며 “보도검열관실 역시 언론 자유가 어떻게 짓밟혔는지를 보여주는 살아있는 역사 공간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언론 통제와 검열의 역사를 제대로 기록하지 않으면 같은 비극은 반복될 수밖에 없다”며 “보도검열관실 복원을 통해 언론 자유의 중요성과 민주주의의 가치를 시민들에게 지속적으로 교육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날 강연에서는 실제 보도검열 문건과 삭제 기사, 검열 지침 사례, 백지 광고 사례 등 당시 언론 탄압 자료들도 소개됐다.
김 전 회장은 “1980년 계엄 기간 동안 신문·방송·통신·잡지 등에 대한 검열 건수는 108만 건이 넘었고, 이 가운데 약 3만 건이 삭제되거나 통제됐다”며 “광주민주화운동 기간에는 삭제율이 14%를 넘을 정도로 극심한 검열이 이뤄졌다”고 설명했다.
특히 광주 관련 기사들은 대부분 삭제되거나 제목이 축소됐으며, 시민 피해 상황 대신 ‘광주 폭도’, ‘소요 사태’ 등 왜곡된 표현이 사용됐다고 지적했다.
그는 “당시 기자들 역시 검열에 저항했고 기자협회 차원의 검열 거부 운동도 추진됐지만 5·17 비상계엄 확대와 함께 관련 기자들이 연행·구속됐다”며 “언론 자유를 지키려 했던 언론인들 역시 국가폭력의 피해자였다”고 말했다.
강연 이후 이어진 질의응답에서는 보도검열이 서울뿐 아니라 전국적으로 어떤 방식으로 이뤄졌는지에 대한 질문과 함께, 관련 기록을 전국 단위로 조사·보존해야 한다는 의견도 제기됐다.
김 전 회장은 “당시 검열에 참여했거나 경험한 언론인들의 증언을 체계적으로 기록하고 자료를 수집하는 전국적 운동이 필요하다”며 “보도검열 관련 자료 역시 5·18 기록유산의 일부로 남겨야 한다”고 제안했다.
한편, 5·18 보도지침 폭로의 상징적 인물인 김주언 전 한국기자협회장은 강연 직후 옛 전남도청 앞에서 보도검열관실 복원을 촉구하는 1인 시위에 나섰다.
김 전 회장은 “언론 탄압의 현장이었던 보도검열관실을 제외한 채 전남도청 개관을 강행하는 것은 역사 의식의 부재이자 오월 영령에 대한 모독”이라며 문화체육관광부의 소극적 태도를 강하게 비판했다.
이날 1인 시위에는 김성 광주전남언론인회 이사장과 나의갑 등 지역 언론계 원로들도 함께 참여해 “보도검열관실의 완전한 복원과 언론 탄압 진상 규명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시대적 과제”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광주전남언론인회는 앞으로도 보도검열관실 복원 운동과 함께 시민 강좌, 기록 수집, 민주주의 교육 활동 등을 지속적으로 이어갈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