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료라 더 놀랍다… 폐철길 따라 철쭉 피는 숨은 '전북 명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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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2년 준공된 목조 역사
소설 '혼불'의 배경지
전북 남원시 사매면에는 1930년대의 공기를 그대로 품은 철길이 있다. 이제는 기차가 서지 않는 폐역이지만, 단순한 교통 시설을 넘어 한국 근대 문학의 정수와 세월의 흔적을 동시에 만끽할 수 있는 특별한 공간으로 자리 잡았다.

서도역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완벽하게 목조 역사의 원형을 간직한 곳으로 알려졌다. 1932년 준공된 이래 전라선의 주요 거점으로 활약했으나, 2002년 전라선 복선 전철화 사업으로 인해 신역사가 들어서면서 폐역의 길을 걷게 됐다. 이후 근대 건축물로서 가치를 인정받아 철거의 위기를 넘기고 영상 촬영장 및 관광지로 재조성됐다.
가장 완벽하게 보존된 목조 역사, 서도역


이곳은 소설가 최명희의 소설 ‘혼불’의 배경지로 유명하다. '혼불'은 1930년대 전북 남원의 매안 마을을 배경으로, 몰락해가는 종가(宗家)를 지키려는 여성 3대의 삶을 그려낸 대하소설이다. 소설 속 주인공 효원이 대실 마을로 시집을 오기 위해 내렸던 역이 바로 서도역이다. 역사 내부로 들어서면 당시의 대합실 풍경과 검표구 등이 그대로 보존돼 있어, 방문객들은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돌아간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다.
서도역은 소설 속 무대인 노봉마을(혼불 문학마을) 끝자락에 위치한 덕분에 역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문학관처럼 느껴진다. 또 소설 속 구절들을 새긴 조형물들이 곳곳에 배치돼 있어 발걸음을 뗄 때마다 문장의 여운을 만끽할 수 있다.
이처럼 서도역은 단순히 낡은 건물이 아니라 일제 강점기 수탈의 아픔과 서민들의 애환이 서린 장소이기도 하다. 전라선은 호남 지방의 쌀을 일본으로 실어 나르기 위한 목적으로 건설됐던 역사가 있다. 서도역 또한 아픈 역사의 한 페이지를 담당했다. 역사적 맥락을 알고 역사를 바라보면 삐걱거리는 나무 바닥 소리와 바랜 페인트칠이 예사롭지 않게 다가온다.

철길은 이제 기차가 다니지 않지만, 그 위에 서 있는 것만으로도 묘한 느낌을 준다. 철길 옆으로는 작은 연못과 정자가 조성돼 있어 문학 기행을 즐기러 온 이들이 쉬어가기 좋다. 역무실 공간에는 당시 역무원들이 사용하던 소품들과 서도역의 역사를 담은 기록물들이 전시돼 있다.
여름의 서도역은 생명력이 넘치는 초록의 파도로 뒤덮인다. 가장 백미는 역사를 품고 있는 등나무 터널이다. 수십 년의 세월을 버텨온 등나무 줄기들이 철제 프레임을 타고 올라가 지붕처럼 입체적인 터널을 형성하고 있다. 특히 5월 말에서 여름으로 넘어가는 길목이면 보랏빛 등나무 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눈길을 사로잡는다. 잎이 무성해지며 짙은 초록색 터널로 변신하면 무더위를 피해 철길을 걷는 여행객들에게 천연 차양막 역할을 해주기도 한다.
남원 도심에서 서도역까지
서도역을 방문하기 위해서는 남원역이나 남원 공용 버스터미널을 기점으로 이동해야 한다. 남원 도심에서 서도역까지는 차량으로 약 15~20분 정도 소요된다. 대중교통을 이용할 경우 남원 시내버스 101번이나 102번 노선을 확인해야 하며, 배차 간격이 다소 긴 편이라 버스 시간표를 미리 숙지하는 것이 좋다.
자가용을 이용할 경우 내비게이션에 '구 서도역 영상촬영장'을 검색하면 쉽게 찾을 수 있다. 역사 앞에 넓은 주차 공간이 마련돼 있어 주차 걱정 없이 여유로운 관람이 가능하다.
서도역은 누구나 무료로 방문할 수 있으며, 상시 개방돼 있다. 보다 자세한 사항은 남원 공식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한국 정원의 정수 광한루원


서도역에서 차로 20분 거리에 있는 광한루원은 남원의 자부심이자 조선 시대 정원 문화의 결정체로 꼽힌다. 지정된 광한루를 중심으로 조성된 이 정원은 하늘의 은하수를 상징하는 호수와 오작교, 전설 속의 삼신산을 재현한 세 개의 섬으로 이뤄져 있다. 선조들이 꿈꿨던 이상향의 세계를 지상에 구현했다는 점이 핵심이다.
광한루원에는 신비로운 설화들이 곳곳에 숨어 있다. 광한루원 연못에는 사람 팔뚝보다 굵은 거대한 잉어 수천 마리가 살고 있다. 이곳 연못에는 사람의 얼굴을 닮은 '인면어(人面魚)'가 살고 있다는 소문이 전해진다. 실제 잉어들의 무늬를 살펴보면 사람의 눈, 코, 입을 닮은 형상이 있어 방문객들을 놀라게 하곤 한다.
또 이곳의 잉어 중 일부는 수명이 100년에 가깝다는 전설이 있다. 남원 사람들은 이 잉어들을 '광한루를 지키는 영물'로 여겨 함부로 잡지 않는다.
오작교 입구 근처에서는 화강암으로 깎아 만든 커다란 자라 모양의 돌을 발견할 수 있다. 이 돌에는 남원의 지리적 재난을 막기 위한 선조들의 지혜가 담겨 있다. 예부터 남원은 지리산 견두산의 호랑이 기운이나 동남풍의 영향으로 화재나 수해 같은 재난이 잦았다고 한다. 이에 불을 다스리고 물을 상징하는 영물로 여겨지던 자라의 형상을 만들어뒀다.
광한루원은 성춘향과 이몽룡의 사랑 이야기가 시작된 장소라는 상징성 덕분에 연인들의 필수 방문 코스로도 인기가 높다. 거대한 느티나무와 팽나무들이 드리운 호숫가 산책로는 여름철 무더위를 식히기 충분하다. 최근에는 야간 개장을 통해 화려한 조명이 더해지며 광한루의 반영이 빚어내는 신비로운 야경이 방문객들을 사로잡고 있다.
광한루원은 매일 오전 8시부터 오후 9시까지 운영되며, 오후 6시 이후에는 무료 개방된다. 입장료는 성인 4000원, 청소년 및 군인 2000원, 어린이 1500원이다.
쓰레기 매립장에서 생명의 터전으로
공원 내부는 연꽃단지, 수생식물원, 생태 관찰로 등 다양한 주제의 공간으로 구성돼 있다. 특히 습지를 가로지르는 목재 데크 길을 걷다 보면 발밑에서 헤엄치는 물고기와 갈대 사이로 숨어드는 물새들을 관찰할 수 있다.
도심 속에서 아이들에게는 살아있는 생태 교육의 장을, 어른들에게는 고요한 명상의 시간을 제공한다. 무료 개방 시설임에도 불구하고 국립공원 못지않은 관리 상태를 자랑한다. 공원은 상시 개방되며 애견놀이터는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운영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