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땐 몰랐다”…결혼식·장례식 많이 다닌 사람이 결국 깨닫는 인생 진리 1가지
작성일
젊은 시절 만들었던 인맥은 삶의 자산일까?

젊은 시절 인맥이 곧 삶의 자산이라고 믿는 사람이 많다. 그래서 누군가 결혼한다는 소식을 들으면 바쁜 일정을 쪼개 식장에 가고 장례 소식을 들으면 먼 길도 마다하지 않고 빈소를 찾는다. 돌잔치, 회갑연, 개업식, 승진 축하 자리, 각종 모임과 행사에도 빠지지 않으려고 애쓴다.
축의금과 부의금을 챙기고 선물을 고르고 안부 전화를 하고 얼굴을 비추는 일을 인간관계의 기본 예의라고 생각한다.
젊은 시절 만들었던 인맥은 삶의 자산일까?
그때는 내가 이렇게 사람들을 챙기면 언젠가 나에게도 그 마음이 돌아올 것이라고 믿는다. 내가 베푼 정성과 시간, 돈과 마음이 사람들의 기억 속에 남아 있을 것이라고 기대한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고 나이가 들수록 많은 사람이 깨닫는 사실이 있다. 그것은 인간관계가 반드시 내가 준 만큼 되돌아오는 거래가 아니라는 점이다.
살아 보면 알게 된다. 내가 열 번 찾아갔다고 해서 상대가 내게 열 번 찾아오는 것은 아니다. 내가 어려운 일을 당했을 때 많은 사람이 찾아와 줄 것이라고 기대했지만 막상 현실은 다를 수 있다. 젊은 시절에는 남의 경조사를 빠짐없이 챙겼는데 정작 내 일이 생겼을 때는 연락조차 없는 사람도 있다.
내가 먼저 밥을 사고 선물을 하고 시간을 내고 마음을 썼지만, 상대는 그것을 고마움으로 오래 기억하지 않을 수 있다. 어떤 사람은 그때의 도움을 당연하게 여기고 어떤 사람은 자신의 사정이 바쁘다는 이유로 외면한다. 또 어떤 사람은 시간이 지나 관계가 멀어졌다는 이유만으로 예전의 정을 잊어버린다.
인간은 각자 자기 삶의 무게를 지고 살기 때문에 남이 해 준 일보다 자신이 겪는 일에 더 민감하다. 그래서 내가 베푼 만큼 상대도 똑같이 갚아 줄 것이라는 기대는 쉽게 깨질 수 있다.
특히 노년기인 60세가 넘은 뒤에는 이런 감정이 더 크게 다가올 수 있다. 젊을 때는 바쁘게 일하고 사람들을 만나며 정신없이 지내기 때문에 서운함을 깊이 생각할 여유가 없다. 그러나 나이가 들면 사회적 역할이 줄어들고 만나는 사람의 수도 줄어든다. 은퇴하거나 자녀들이 독립한 뒤에는 예전처럼 사람들 사이에서 중심에 서는 일이 많지 않다.
이때 과거의 인간관계를 돌아보게 되고 내가 얼마나 많은 시간과 정성을 썼는지 떠올리게 된다. 그런데 막상 자신이 외롭거나 힘들 때 곁에 남아 있는 사람이 생각보다 적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허탈감이 밀려온다.
'내가 그렇게 챙겼는데 왜 이 사람들은 나를 챙기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고 '차라리 그때 나 자신과 가족에게 더 잘할 걸'이라는 후회가 생긴다. 이런 감정은 단순한 섭섭함을 넘어 인생 전체에 대한 허무함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내가 그렇게 챙겼는데 왜 이 사람들은 나를 챙기지 않을까'
물론 모든 인간관계가 그렇다는 뜻은 아니다. 진심을 알아주고 오래 기억하는 사람도 분명히 있다. 어려울 때 조용히 손을 내밀어 주는 친구, 연락이 뜸해도 중요한 순간에 곁을 지켜 주는 지인, 계산 없이 마음을 나누는 사람들도 있다. 문제는 그런 사람보다 그렇지 않은 사람에게 더 큰 기대를 걸었을 때 상처가 깊어진다는 점이다.
사람은 자신이 많이 베풀었다고 생각할수록 상대에게도 그만큼의 보답을 바라게 된다. 그러나 상대는 내가 준 마음의 크기를 나와 똑같이 느끼지 못할 수 있다. 나는 큰마음으로 한 일이지만 상대에게는 지나가는 호의로 남을 수도 있다. 나는 평생 기억할 일이라고 생각했지만 상대는 며칠 지나 잊어버릴 수도 있다. 이 차이를 인정하지 못하면 나이가 들수록 마음속에 서운함과 분노가 쌓인다.
따라서 나이가 들어 상처받지 않으려면 인간관계에 대한 기대를 조금 낮출 필요가 있다. 사람을 챙기지 말라는 뜻이 아니다. 다만 누군가를 챙길 때 '나중에 반드시 돌아올 것'이라는 마음으로 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내가 할 수 있어서 하는 일, 내가 예의를 지키고 싶어서 하는 일, 내가 그 사람을 진심으로 생각해서 하는 일로 받아들여야 한다.
그래야 결과가 기대와 달라도 마음이 덜 다친다. 경조사를 챙기는 일도 마찬가지다. 진심으로 축하하고 위로하고 싶다면 가면 된다. 그러나 의무감과 체면 때문에, 혹은 훗날 받을 것을 계산하며 억지로 하는 일이라면 스스로를 지치게 만들 수 있다. 인간관계를 관리한다는 말 속에는 때때로 지나친 계산과 불안이 숨어 있다. 모든 사람에게 좋은 사람으로 남으려는 욕심은 결국 자신을 소모하게 만든다.

중요한 것은 관계의 양보다 질이다. 젊은 시절에는 많은 사람을 알고 지내는 것이 힘처럼 느껴질 수 있다. 전화번호부에 이름이 많고 모임이 많고 초대받는 자리가 많으면 자신이 넓은 인맥을 가진 사람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나이가 들수록 진짜 힘이 되는 것은 많은 사람이 아니라 깊은 관계다. 내 형편을 알고 나의 말을 들어 주고 내가 힘들 때 부담 없이 연락할 수 있는 몇 사람이 훨씬 소중하다. 얕은 관계 수십 개보다 진심이 통하는 관계 한두 개가 노년의 외로움을 덜어 준다.
그러므로 모든 경조사와 행사를 다 챙기려고 애쓰기보다, 정말 마음을 나누고 싶은 사람에게 정성을 쓰는 태도가 필요하다. 인간관계에도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 누구에게나 같은 깊이로 마음을 쓰려고 하면 결국 아무에게도 충분히 마음을 쓰지 못하고 자신만 지치게 된다.
진정 마음 나누고 싶은 사람에게 정성 쓰는 태도 필요…나 자신도 돌봐야
또 하나 필요한 태도는 나 자신을 먼저 돌보는 것이다. 많은 사람이 젊은 시절에는 남에게 좋은 사람으로 보이기 위해 자기 형편보다 무리해서 돈을 쓰고 시간을 낸다. 하지만 인생 후반에 남는 것은 남의 평가보다 자신의 삶이다. 내 건강, 내 가족, 내 노후, 내 마음의 평안이 먼저 안정돼야 다른 사람에게도 건강한 마음을 나눌 수 있다.
자신을 돌보지 않은 채 남에게만 베푸는 삶은 언젠가 억울함으로 돌아올 가능성이 크다. '나는 이렇게까지 했는데'라는 생각이 자주 든다면 이미 마음속에 보상 심리가 생긴 것이다. 그럴 때는 잠시 멈추고 내가 정말 원해서 하는 일인지, 아니면 인정받고 싶어서 하는 일인지 살펴봐야 한다. 자기 삶의 중심을 잃지 않는 사람은 인간관계에서도 덜 흔들린다.
나이가 들어 상처받지 않으려면 베풂의 기준도 바뀌어야 한다. 젊을 때처럼 모든 사람에게 넓게 베푸는 방식보다, 내 마음이 상하지 않을 만큼만 베푸는 지혜가 필요하다.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만큼, 돌려받지 않아도 후회하지 않을 만큼, 내 생활을 해치지 않는 범위 안에서 베풀어야 한다.
그래야 베풂이 원망으로 변하지 않는다. 상대가 고마워하면 좋은 일이고 고마워하지 않아도 내가 선택한 일이니 내려놓을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은 냉정해지라는 말이 아니라 성숙해지라는 말에 가깝다. 모든 관계를 거래로 보지 않되, 모든 관계에 무한히 희생하지도 않는 균형이 필요하다.
결국 '주는 만큼 못 받는다'라는 사실은 인생을 비관하라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인간관계를 더 현실적으로 바라보라는 깨달음에 가깝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 입장에서 살고 기억은 쉽게 흐려지며 고마움도 시간이 지나면 옅어진다. 그러니 남에게 준 것을 오래 붙들고 있으면 나만 괴롭다.
베풀 때는 기쁜 마음으로 베풀고 기대는 가볍게 가져야 한다. 돌아오지 않는 마음에 매달리기보다 지금 내 곁에 남아 있는 사람을 소중히 여기고 내 삶의 평안을 지키는 것이 더 중요하다. 노년의 행복은 많은 사람에게 인정받는 데서 오는 것이 아니라 적은 관계 속에서도 서운함 없이 편안하게 지내는 데서 온다. 내가 준 만큼 받지 못해도 내 삶이 실패한 것은 아니다. 다만 이제는 남에게만 쓰던 마음을 나 자신에게도 돌려주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