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튜브에 뜨던 바로 그 스님, 30억 다 건네주고 세상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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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억 원 기부한 수행자, 삼보스님의 무소유 정신
월남전 참전 승려가 보여준 청빈한 삶의 의미
강원도 영월 법흥사 주지 삼보스님이 지난달 27일 원적에 들었다. 세수 76세, 법랍 61년이다. 평생 수행자의 길을 걸으며 청빈한 삶을 실천했던 스님은 생전에 전 재산 30억 원을 기부한 일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불교계에서는 수행과 나눔, 사회 참여를 실천해 온 원로 스님의 입적을 애도하는 추모가 이어지고 있다.
1일 불교계에 따르면 삼보스님은 1965년 강원도 평창에서 불교와 인연을 맺었다. 당시 오대산을 찾았다가 한국 불교계의 대표적 고승인 탄허의 가르침을 접했고, 이를 계기로 출가를 결심했다. 이후 월정사와 정암사 등에서 수행하며 승려의 길을 걸었다.
스님은 오랜 세월 수행에 전념하면서도 종단 발전을 위한 다양한 역할을 맡았다. 오대산 상원사와 월정사 주지를 역임했으며, 학교법인 동국대학교 이사와 조계종 재심호계위원 등을 지내며 종단 행정에도 참여했다. 수행뿐 아니라 교육과 종단 운영에도 힘을 보태며 후학 양성과 불교 발전을 위해 활동했다.

이 같은 공로를 인정받아 스님은 2024년 11월 대한불교조계종 원로회의에서 최고 법계인 대종사 품계를 받았다. 대종사는 조계종에서 오랜 수행과 덕망을 인정받은 스님에게 수여되는 최고 수준의 법계다. 불교계에서는 삼보스님이 평생 수행자로서 보여준 삶과 종단에 대한 기여가 높게 평가됐다는 의미로 받아들였다.
삼보스님의 삶은 일반적인 승려의 이력과는 다소 다른 면도 있었다. 스님은 1970년 해병대에 입대해 월남전에 참전했다. 당시 군 복무 중 공을 세워 화랑무공훈장을 받기도 했다. 승려이면서도 참전용사라는 이력은 삼보스님을 설명하는 독특한 특징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또한 한국 현대사의 아픈 장면도 직접 경험했다. 1980년 전두환 정권 시절 이른바 불교계 탄압에 저항하는 과정에서 삼청교육대에 강제 수용돼 고초를 겪었다. 삼청교육대는 당시 사회 정화 정책의 일환으로 운영됐지만, 이후 인권 침해 논란이 제기된 대표적인 국가 폭력 사례로 평가받고 있다. 삼보스님은 수행자이면서도 시대의 부조리에 침묵하지 않았던 인물로 기억되고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 것은 평생 실천한 청빈한 삶이었다. 스님은 평소 자신을 위해 재산을 축적하기보다 필요한 곳에 나누는 것이 수행자의 도리라고 강조해 왔다. 법흥사와 월정사 등에서 생활하는 동안에도 검소한 생활을 이어가며 무소유 정신을 몸소 실천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표적인 사례가 2015년 기부다. 당시 스님은 조계종 총본산 성역화 불사와 자비나눔 기금으로 3억3000만 원을 희사했다. 수행자가 수십 년 동안 모은 거액을 종단과 사회를 위해 내놓은 일은 불교계 안팎에서 큰 화제가 됐다.
그러나 삼보스님의 가장 큰 기부는 2020년에 이뤄졌다. 스님은 "경제적으로 어려워 공부하지 못하는 학생들을 위해 사용해 달라"며 평생 모은 재산 전부를 월정사에 전달했다. 기부금은 상이연금과 각종 자산 등을 포함해 약 30억 원에 달했다.
당시 불교계에서는 수행자가 평생 모은 전 재산을 사회에 환원한 사례로 큰 감동을 줬다는 평가가 나왔다. 특히 본인을 위한 노후 자금조차 남겨두지 않고 모두 기부했다는 점에서 많은 이들의 존경을 받았다. 스님은 생전 인터뷰에서 재산을 남기는 것보다 사람을 돕는 일이 훨씬 가치 있다고 생각한다는 뜻을 밝히기도 했다.
삼보스님은 방송을 통해 대중과도 친숙한 인연을 맺었다. 2020년 한국기행 '그 겨울의 산사' 편에 출연해 강원도 산사에서의 일상을 공개했다. 방송에서는 수행자의 소박한 삶과 함께 반려견 보리와의 일상도 소개됐다.

특히 보리가 인터뷰 도중 스님의 머리를 핥는 장면은 방송 이후 인터넷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화제가 됐다. 수행자의 엄숙한 이미지보다는 따뜻하고 인간적인 모습이 시청자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기 때문이다. 산사에서 반려견과 함께 살아가는 소탈한 일상은 많은 사람들에게 잔잔한 감동을 전했다.
보리는 이후에도 삼보스님의 곁을 지키며 많은 신도와 방문객들의 사랑을 받았다. 하지만 보리는 2024년 3월 10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것으로 전해졌다. 당시에도 불교계와 신도들 사이에서는 보리를 추억하는 목소리가 이어졌다.
불교계에서는 삼보스님을 수행과 나눔을 함께 실천한 대표적인 원로 스님 가운데 한 명으로 평가하고 있다. 단순히 수행에만 머무르지 않고 교육과 복지, 후학 양성에 관심을 기울였으며, 자신이 가진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는 삶을 선택했다는 점에서 많은 이들에게 귀감이 됐다는 것이다.
삼보스님의 영결식은 지난달 29일 월정사에서 산중장으로 봉행됐다. 산중장은 큰스님이 입적했을 때 사찰 공동체가 주관하는 전통 장례 의식이다. 이어 다비식은 월정사 다비장에서 엄수됐다.
평생 수행자의 길을 걸으며 청빈과 나눔을 실천했던 삼보스님은 마지막 순간까지 무소유의 정신을 남겼다. 전 재산을 사회와 미래 세대를 위해 내놓고 떠난 스님의 삶은 많은 이들에게 물질보다 나눔의 가치가 더 크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일깨워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