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영훈, 베이징서 北인사 직접 만나… 1억6000만원 물품 北에 보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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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측 비선 인사 리호남 개입 확인
북한이 '적대적 두 국가'를 선언한 이후 사실상 전면 차단됐던 남북 교류가 제주특별자치도를 통해 재개된 것으로 8일 확인됐다. 이번 교류에 북한 측 비선 인사인 리호남이 개입한 것으로 알려져 배경에 관심이 쏠린다.

김양보 제주도 관광교류국장은 이날 도청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지난달 4일 남북협력사업의 일환으로 1억6000만원 상당의 대북 협력 물품이 중국 다롄항을 경유해 북한 남포항에 도착했다"고 밝혔다. 전달된 물품은 신장투석기와 소모품, 한라봉 묘목 50그루, 비닐하우스 시설, 소나무 재선충 방제 약재 등이다. 지원 물품은 4월 1일 인천항에서 출발해 중국 다롄항을 경유한 뒤 지난달 4일 남포항에 최종 도착했다. 재원은 제주도 남북교류협력기금으로 충당했다. 지난해 말 기준 잔액은 80억원이다.
통일부는 이날 정례브리핑에서 "남북 교류협력 사업 추진을 위해 제주도 측이 신청한 북한 주민 접촉 신고 및 물품 반출 신청에 대해 관련 법적 요건에 따라 승인했다"고 확인했다. 다만 구체적인 내용과 진행 상황에 대해서는 지자체의 입장을 고려해 통일부 차원에서 확인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이번 사업은 오영훈 제주지사가 지난해 11월 5일 정동영 통일부 장관과의 면담에서 북한 감귤 보내기 사업 재개를 요청하면서 본격화됐다. 이후 제주도는 다이빙 주한중국대사와의 면담에서 남북 협력을 위한 중국 정부의 지원도 요청했다. 지난 2월 27일에는 오 지사가 직접 중국 베이징 젠궈호텔에서 북측 인사 2명을 만나 협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자리에서 오 지사와 리호남의 만남이 이뤄진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제주도는 "누구를 만났는지 구체적인 이름까지 말씀드리는 것은 맞지 않다"며 확인을 피했다. 제주도는 이후 3월 9일 통일부에 대북 반출 신청을 했고, 통일부의 승인을 거쳐 물품이 발송됐다.
북측 협력 주체로는 조선장애자후원회사가 거론된다. 제주도는 "현재 지원된 물품은 북한 측 협력단체인 조선장애자후원회사에서 목적에 맞게 후속 조치가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다만 북한으로부터 물품 도착에 대한 공식적인 회신은 없었다고 설명했다.
이번 사업에서 북측 접촉 창구로 거론되는 리호남은 1990년대부터 남북관계에 깊숙이 개입해온 인물이다. 1998년 세상에 알려진 '흑금성 사건'에서 국가안전기획부가 파견한 남측 공작원 박채서씨와 소통한 북측 인사가 리호남으로 알려졌다. 주로 중국과 동남아시아에서 활동하며 박씨의 평양 방문과 김정일 국방위원장 면담을 성사시킨 인물로, 북측 최고위층의 신뢰를 받은 것으로 파악됐다. 2006년에는 노무현 대통령의 최측근인 안희정 전 충남지사를 만나 남북 정상회담을 논의했고, 최근에는 쌍방울 대북 송금 사건에도 관여한 것으로 확인되는 등 대남 관련 사업에 전방위적으로 개입해온 인물이다. 그러나 당국 간 공식 회담에는 한 번도 모습을 드러낸 적 없는 철저한 비선 인사로 분류된다.
리호남의 이름이 이번 교류에 다시 등장한 것을 두고 다양한 해석이 나온다. 복수의 민간단체에서는 리호남이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에도 여러 국내 관계자들과 접촉을 시도했다는 이야기가 돌고 있다. 일각에선 북한이 남북 관계가 좋지 않을 때에도 리호남 측에서만 교류가 가능하다는 연락이 온 경우가 있었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리호남이 북한 당국의 승인 없이 단독으로 움직였을 가능성과, 이재명 정부의 진의 확인을 위해 북한이 리호남 채널을 가동했을 가능성이 함께 거론된다.
오경섭 통일연구원 연구위원은 뉴스1에 "이 정도 사안을 리호남이 당국에 보고하지 않은 채 단독으로 진행하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라며 리호남의 배후에 북한 당국의 개입이 있을 가능성을 시사했다. 다만 오 연구위원은 "이번 사례로 북한의 적대적 두 국가 기조가 바뀌었다고 보기는 무리"라며 "북한이 공식적으로는 대남 단절 정책을 유지하면서도 물밑에서는 필요한 물자 등을 선택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번 보도가 나간 이후 북한의 대응 방식 등을 지켜볼 필요가 있다"며 "당분간은 북한이 남측에 대한 접촉을 자제할 가능성이 있다"고 예상했다.
제주도와 북한 측은 이번 협의에서 감귤·의료복지·산림방제 분야를 우선 협력하고, 이후 양돈과 관광산업으로 단계적으로 확대해 나가기로 했다. 제주도는 1999년부터 2010년 천안함 사태로 남북 교류가 중단되기까지 12년간 감귤과 당근 등 총 6만6000톤을 북한에 보냈으며, 이에 대한 보답으로 북한은 제주도민 방문단을 네 차례에 걸쳐 초청해 750여 명이 방북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