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땐 돈 없어 못 샀는데…요즘 젊은 세대가 주말마다 오픈런하는 '의외의 공간'

작성일

요즘 젊은 세대가 지갑 여는 새로운 기준

가상 세계에 존재하던 게임 속 고유한 문화가 현실 오프라인 공간의 지형도를 바꾸고 있다.

롯데월드 어드벤처, ‘메이플 아일랜드 존’ 오픈 / 연합뉴스
롯데월드 어드벤처, ‘메이플 아일랜드 존’ 오픈 / 연합뉴스

최근 서울 송파구 롯데월드몰에서 열린 메이플스토리 기획 매장(팝업스토어)은 단순히 물건을 사고파는 상업적 공간을 넘어, 이용자들이 가상 세계의 거래 문화를 자발적으로 재현하는 이색적인 소통의 장으로 변모했다. 매장을 방문한 소비자들은 무작위 뽑기(가챠)로 획득한 기획 상품(굿즈)을 들고 매장 밖 광장에 모여 서로 필요한 물건을 교환하는 풍경을 연출했다. 이용자들은 이를 두고 과거 게임 내에서 유저들이 모여 아이템을 거래하던 상징적인 가상 공간인 '자유시장'이 현실 세계에 그대로 구현된 현상이라 부른다.

이러한 현상의 배경에는 학창 시절 경제적 여유가 부족해 콘텐츠를 마음껏 소비하지 못했던 이른바 '게임 키즈'들이 핵심 구매력을 갖춘 2030 세대의 성인 소비층으로 성장한 사회적 변화가 자리 잡고 있다. 이들은 가상 공간에서 경험했던 교류와 유대감을 현실 공간에서 직접 몸으로 겪으며 재현하는 '경험 소비'를 추구한다. 업계에서는 이를 유명 지식재산권(IP)을 소비하는 방식이 단순한 물질적 소유에서 문화적 체험과 재현으로 진화한 대표적인 사례로 꼽는다. 기업이 일방적으로 주도하는 상업 공간에 소비자가 일방적으로 맞추는 것이 아니라, 소비자가 주도하는 하위문화 놀이를 유통업계가 유연하게 수용하면서 현장의 몰입감이 극대화되는 추세다.

현대 영 어덜트(Young Adult) 소비층의 뚜렷한 특징인 '경험 중심의 공유 성향' 역시 이러한 열풍을 가속화하는 요인이다. 최근 젊은 세대들은 누리소통망(SNS)에 자신이 산 비싼 물건을 인증하기보다, 특정 공간에서 어떤 독특한 문화적 체험을 했는지를 보여주는 콘텐츠를 주로 공유한다. 가상 세계의 이야기 구조와 세계관을 현실의 물리적 공간에 얼마나 정교하게 구현해 냈는지, 그리고 그 안에서 유저 간의 자발적인 상호작용이 얼마나 자유롭게 일어날 수 있는지가 현대 소비 시장에서 젊은 세대의 마음을 사로잡는 핵심 지표가 되었다. 오프라인 매장 직원들 또한 유저들의 이러한 자발적 거래 문화를 제지하지 않고 오히려 게임 속 줄임말을 사용하며 장려하는 등 유연한 대처로 독특한 생태계 형성을 도왔다.

팝업 방문객 4만 명 돌파와 품절 사태, 연장된 흥행 성공

이처럼 추억과 경험이 결합한 새로운 소비 형태는 실제 압도적인 흥행 성적으로 이어졌다. 롯데월드몰에 마련된 해당 매장은 문을 연 지 단 3일 만에 방문객 1만 명을 돌파하는 기록을 세웠다. 운영 종료를 앞둔 시점에는 이미 누적 방문객 수가 4만 명을 훌륭히 넘어섰으며, 매장을 운영하는 백화점 측은 최종 마감일까지 전체 방문객 수가 총 5만 명에 달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매장 내부의 상품 판매 역시 연일 품절 사태를 빚었다. 컴퓨터 마우스 장패드와 캐릭터 봉제 인형을 포함해 현장에 준비되었던 40여 가지가 넘는 기획 상품 뿜목들이 전량 매진됐다. 특히 온라인상에서 현장 교환의 핵심 인기 품목으로 입소문이 났던 게임 배경음악(BGM) 재생 키링 상품은 판매를 시작한 지 일주일 만에 준비된 물량이 완전히 바닥났다.

이러한 흥행은 소비자들이 단순히 필요한 물품을 구매하러 온 것이 아니라 공간이 주는 '경험 가치'에 집중했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상품의 희소성과 현장 유저들과의 교류라는 특별한 체험이 결합하면서 소비자들의 지갑을 열게 만든 것이다. 이 같은 열풍은 인근의 다른 시설로까지 번져나가 유통과 관광의 상생 효과를 가시화하고 있다. 메이플스토리 콘텐츠를 도입해 연계 행사를 진행한 인근 롯데월드 어트랙션의 경우, 관련 테마 구역인 '메이플아일랜드존'을 선보인 이후 한 달 동안 롯데월드의 전체 입장객 수가 직전 달과 비교해 30%나 급증했다. 문을 연 첫 주말 동안에는 외국인 관광객 입장률도 평소보다 약 14% 늘어나며 해외 유저들까지 불러 모으는 성과를 거두었다.

국경을 허문 체험형 공간과 테마파크의 상생

이들이 오프라인 공간에 모여 재현한 것은 비단 아이템 거래 문화만이 아니었다. 놀이공원이라는 상징적인 공간에서도 추억을 향한 소비 행위는 이어졌다. 롯데월드는 지난 4월 게임사 넥슨과 손을 잡고 놀이공원 내부에 상설 테마 공간인 '메이플 아일랜드'를 정식 개장했다. 단순히 캐릭터 모형을 세워두는 1차원적 전시를 넘어 놀이기구와 시설 곳곳을 게임 속 세계관과 마을 풍경으로 정교하게 시각화했다.

메이플 아일랜드 찾은 관람객들 / 연합뉴스
메이플 아일랜드 찾은 관람객들 / 연합뉴스

그 결과 성인이 된 이후 놀이공원 방문을 멈추었던 옛 유저들이나 성인 남성 중심의 소외 유저층이 어린 시절의 향수를 소비하기 위해 대거 놀이공원으로 발걸음을 돌리는 현상이 나타났다. 다 자란 성인 남성들이 취미와 세계관 공유라는 뚜렷한 목적을 가지고 놀이공원을 집단 방문하는 문화가 형성된 것이다.

더 나아가 이 공간은 국내 팬들뿐만 아니라 국경을 넘어 아시아권의 전 세계 게임 팬들이 자신의 기념일이나 휴가에 맞추어 성지순례 형태로 한국을 찾는 하나의 거대한 문화적 중심지로 거듭나고 있다. 10년 이상 장기 서비스를 이어온 게임 IP인 만큼 해외 유저층의 두터운 충성도가 오프라인 방한 수요로 직결되는 모양새다. 실제로 행사 개장일을 포함한 첫 주말 동안 해외 입장객 비율은 평소보다 약 14% 늘어나며 게임 IP가 글로벌 관광 자산으로서 가진 강력한 파급력을 증명했다.

전통 완구거리로 발걸음 옮기는 키덜트족… 상권 지도 바꾸는 복고 열풍

이러한 2030 세대의 추억 소비와 IP 열풍은 최신 복합쇼핑몰이나 대형 테마파크를 넘어 창신동 등지의 전통 문구완구거리로까지 도미노처럼 확산되는 양상이다. 어린 시절 동네 문방구 앞을 서성이던 기억을 가진 성인 소비자들이 이제는 고전 장난감과 희귀 수집품을 찾기 위해 골목 매장들을 정기적으로 방문하는 이른바 '완구거리 성지순례'가 새로운 소비 트렌드로 완전히 안착했다. 과거 어린이날이나 명절 직전에 부모 손을 잡고 찾던 도매시장이 이제는 경제력을 갖춘 성인 유저들이 희귀한 고전 IP 굿즈나 무작위 뽑기 제품을 수집하기 위해 찾는 거대한 취미 공간으로 재평가받고 있는 셈이다.

창신동 문구거리 / 뉴스1
창신동 문구거리 / 뉴스1

실제로 완구거리의 오래된 상점들은 유행에 민감한 2030 세대 키덜트족의 수요에 맞춰 매대 전면에 유명 게임 및 애니메이션 IP 상품과 복고풍(레트로) 감성의 피규어를 전면 배치하며 빠르게 체질을 개선하고 있다. 유통 업계 조사에 따르면, 최근 문구완구거리를 방문하는 전체 유동 인구 중 성인 1인 가구나 동호회 단위 방문객의 비중이 과거에 비해 눈에 띄게 증가했다.

온라인 커뮤니티나 해외 직구 플랫폼으로도 구하기 힘든 절판된 옛날 장난감이나 가상 세계의 향수를 자극하는 물건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손으로 만져보며 구매하려는 이들이 몰리면서 전통적인 도매 상권 역시 이례적인 활기를 띠고 있다. 대형 유통사가 기획한 단발성 기획 행사에서 시작된 경험 소비가 점차 개인의 지속적인 취미 활동과 전통 지역 상권 활성화로 연결되는 긴밀한 선순환 구조를 보여주는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