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터프루프 선크림, 환경 기준도 넓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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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프세이프 넘어 사용감 보조 성분까지…EU, 순환 실록산 제한 확대
바닷가로 떠나는 사람들에게 선크림은 이제 여권만큼이나 필수품이 됐다. SPF 수치가 높은지, 물에 잘 지워지지 않는지, 얼굴이 하얗게 뜨지는 않는지 꼼꼼히 따져 고른다. 그런데 최근 선크림 진열대 앞에서는 한 가지 질문이 더 등장하고 있다. "이 제품은 바다에는 어떤 영향을 남길까."

한때 선크림 선택 기준은 단순했다. 자외선을 얼마나 잘 막는지가 가장 중요했고, 여기에 발림성이나 백탁 현상, 끈적임 여부가 추가됐다. 하지만 최근 해외를 중심으로 환경 문제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선케어 시장도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 피부에 바르는 순간만이 아니라 사용 후 씻겨 내려간 성분이 어디로 가는지까지 살펴보는 소비자가 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여름철 인기 제품인 워터프루프 선크림은 이런 논의의 중심에 있다. 서핑과 수영, 러닝, 등산 등 야외 활동을 즐기는 사람들에게 워터프루프 기능은 사실상 필수다. 땀을 흘리거나 물에 들어가도 자외선 차단 효과가 오래 유지되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렇게 피부에 오래 남도록 설계된 성분 일부가 사용 과정에서 바다와 하천, 하수처리 시설로 흘러들 수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해외 선케어 시장에서는 이미 이런 문제의식이 하나의 소비 트렌드로 자리 잡았다. 리프세이프(reef-safe), 오션세이프(ocean-safe)라는 표현이 대표적이다. 직역하면 각각 '산호초 친화적', '해양 친화적' 정도의 의미다.
미국의 쿨라(COOLA), 선범(Sun Bum), 블루리자드(Blue Lizard) 같은 브랜드들은 오래전부터 특정 성분을 제외하거나 미네랄 기반 자외선 차단제를 강조하는 방식으로 시장을 공략해 왔다. 특히 하와이주가 산호초 보호를 이유로 일부 자외선 차단 성분 사용을 제한하면서 관련 논의는 전 세계 선케어 업계로 빠르게 확산됐다.

흥미로운 점은 환경 논의가 이제 자외선 차단 성분 자체를 넘어 화장품의 '조연급 성분'으로까지 확대되고 있다는 것이다.
최근 주목받는 성분 중 하나가 순환 실록산 계열 물질인 사이클로헥사실록세인(D6)이다. 일반 소비자에게는 다소 낯선 이름이지만 화장품 업계에서는 매우 익숙한 성분이다. 선크림을 부드럽게 펴 발리게 하고 끈적임을 줄여주는 역할을 한다. 사용감 개선에 효과적이어서 선크림뿐 아니라 메이크업 제품과 헤어 제품에도 널리 활용돼 왔다.
다만 유럽연합(EU)이 문제 삼은 것은 피부 자극이 아니라 환경 잔류성이다. 유럽화학물질청(ECHA)은 D4·D5·D6가 자연환경에서 쉽게 분해되지 않고 생물체에 축적될 가능성이 있다고 평가했다. 특히 화장품이 주요 배출원 가운데 하나가 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이에 따라 EU는 관련 규제를 단계적으로 강화하고 있다. 2024년 개정 규정을 통해 바른 뒤 씻어내지 않는 리브온(leave-on) 화장품에서도 D6 사용을 제한하기로 했다. 선크림 역시 여기에 포함된다.
업계에서는 이를 두고 선크림을 바라보는 시선 자체가 달라지고 있다고 분석한다. 예전에는 ‘얼마나 강하게 자외선을 막느냐’가 핵심 경쟁력이었다면 이제는 ‘어떤 성분으로 만들었느냐’와 "사용 후 환경에 무엇을 남기느냐"까지 평가 대상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국내에서는 아직 사이클로헥사실록세인이 사용 가능한 화장품 성분이다. 실제로 전성분 표시를 살펴보면 다양한 제품에서 관련 성분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하지만 제조사 입장에서는 고민도 적지 않다. 순환 실록산을 빼면 발림성이 떨어질 수 있고, 사용감을 개선하려고 하면 다시 규제 대상 성분에 의존하게 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선크림 사용자들이 원하는 것은 "환경을 생각하는 제품"이면서도 동시에 "바르기 편한 제품"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최근 업계에서는 대체 실리콘과 고분자 소재를 활용한 새로운 제형 개발이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사용감을 유지하면서도 환경 규제 흐름에 대응하려는 시도다.

국내에서도 이런 변화가 조금씩 나타나고 있다. 스포츠 선케어 브랜드 썸머홀릭은 최근 땀과 물에 강한 워터프루프 기능을 유지하면서도 환형 실록산인 D5와 D6를 배제한 제품을 선보였다. 기존 성분을 사용하지 않으면서도 발림성과 지속력을 확보하려 했다는 점에서 업계의 새로운 접근 사례로 거론된다.
물론 현재 시장 전체가 이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여전히 많은 제품이 기존 처방을 유지하고 있으며 관련 규제 역시 국가마다 차이가 있다. 다만 선크림 개발 경쟁의 무대가 점차 넓어지고 있다는 점만은 분명해 보인다.
국내에서도 관련 논의가 이미 시작됐다. 한국소비자원이 2023년 전성분에 사이클로실록세인이 표시된 메이크업·헤어케어 제품 30개를 시험한 결과 D5가 전 제품에서, D6가 19개 제품에서 검출됐다. 전성분 확인이 가능한 관련 화장품 약 3000여 개를 조사했을 때도 40% 이상이 사이클로실록세인을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당시 소비자원은 식품의약품안전처에 기준 마련을 요청했고, 식약처는 인체 위해성 평가를 진행하며 관리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조사 대상은 선크림이 아니었지만, 화장품 업계 전반에 적지 않은 파장을 남겼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소비자들은 선크림을 고를 때 SPF 숫자와 PA 등급 정도만 확인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지금은 성분표를 확대해 들여다보는 사람이 늘고 있다. 한때는 "얼마나 안 지워지는가"가 최고의 장점이었다면 이제는 "무엇이 남는가"도 중요한 평가 기준이 되고 있다.
선크림 한 통을 둘러싼 경쟁 역시 점점 복잡해지고 있다. 강한 자외선을 막아야 하고, 땀과 물에도 버텨야 하며, 사용감도 좋아야 한다. 여기에 환경에 대한 부담까지 줄여야 한다는 요구가 더해졌다. 올해 여름 선크림 시장의 변화는 단순한 유행이라기보다 소비자의 질문이 한 단계 늘어난 결과에 가깝다. 피부를 지키는 제품을 넘어 바다까지 생각하는 제품이 새로운 경쟁력으로 떠오르고 있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