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라칼럼] 4호선 폭행범, 친모의 고발: '강약약강'은 왜 비겁한가

작성일

약자만 골라 때리는 사회, 비겁함의 민낯을 드러내다
지하철 폭행범을 잡은 것은 CCTV가 아닌 어머니의 양심

이해를 돕기 위해 AI를 활용하여 제작된 이미지
이해를 돕기 위해 AI를 활용하여 제작된 이미지

서울 지하철 4호선에서 벌어진 상습 폭행 사건은 단순한 범죄를 넘어 우리 사회의 민낯을 보여줬다. 열차 안에서 왜소한 여성들의 뒤통수를 때리고 달아나던 가해자가 결국 구속됐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에게 가장 충격적이었던 장면은 따로 있었다. 온라인에 공개된 인상착의를 본 친모가 직접 경찰에 자식을 신고했다는 사실이다.

약자를 향한 반복적인 폭력. 그리고 이를 멈추기 위해 자식을 고발해야 했던 어머니의 결단. 이 사건은 단순히 한 개인의 일탈이나 정신 상태만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오히려 우리 사회 곳곳에 스며든 가장 비겁한 본능을 보여주는 상징에 가깝다. 언론은 이런 사건을 흔히 '묻지마 범죄'라고 부른다. 하지만 이번 사건은 엄밀히 말해 묻지마 범죄가 아니었다. 가해자는 아무나 공격하지 않았다. 자신보다 신체적으로 약해 보이는 사람만 골라 공격했다. 건장한 성인 남성에게는 향하지 않던 손이 유독 왜소한 여성들 앞에서만 올라갔다. 누군가는 이를 우발적 범행이라고 말하겠지만, 반복적으로 대상을 골라 범행했다는 사실은 다른 이야기를 한다. 결국 그는 아무나 때린 사람이 아니라 가장 만만해 보이는 사람을 때린 사람이었다. 어쩌면 이 사건이 불쾌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우리는 이미 이런 모습을 너무 자주 봐왔기 때문이다.

이해를 돕기 위해 AI로 제작된 이미지
이해를 돕기 위해 AI로 제작된 이미지

강한 사람 앞에서는 작아지고, 약한 사람 앞에서만 커지는 사람들. 직장에서도, 학교에서도, 온라인 댓글창에서도 어렵지 않게 발견된다. 반박하기 어려운 상대에게는 침묵하면서 약한 상대에게만 공격적인 태도를 보이는 모습 말이다. 4호선 폭행범은 그 비열한 본능을 가장 극단적인 방식으로 드러냈을 뿐이다. 사건 해결 과정도 씁쓸하다. 수많은 시민이 이용하는 공공장소에서 범행은 반복됐지만 시스템은 가해자를 막지 못했다. 결국 사건을 세상 밖으로 끌어낸 것은 피해자들의 SNS 제보였고, 결정적인 단서는 자식을 신고해야 했던 한 어머니의 전화였다.

시민들의 관심과 가족의 양심은 분명 존중받아야 한다. 하지만 범죄 예방과 검거가 시민들의 제보와 가족의 희생에 의존해야 하는 구조까지 정상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오늘도 누군가는 지하철에서 음악을 듣고 졸지만, 누군가는 이어폰 볼륨을 낮춘 채 등 뒤 발소리부터 확인한다. 같은 객차를 타고도 전혀 다른 현실을 살고 있는 셈이다.

이해를 돕기 위해 AI로 제작된 이미지
이해를 돕기 위해 AI로 제작된 이미지

나는 이번 사건을 보며 '분노'보다 '비겁함'이라는 단어가 먼저 떠올랐다. 사람은 누구나 화가 날 수 있다. 하지만 그 화를 자신보다 강한 대상이 아니라 가장 약한 상대에게 푸는 순간, 그것은 분노가 아니라 비겁함이 된다.

범인은 구속됐지만, '약한 사람에게만 강해지는 문화'는 아직도 멀쩡히 살아 있다. 누구도 자신의 체구와 성별 때문에 범죄의 표적이 되지 않는 사회, 내 안전을 CCTV와 운에만 맡기지 않아도 되는 사회. 어쩌면 우리가 요구하는 것은 거창한 이상이 아니라 가장 기본적인 상식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