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수환 아내' 70년대 인기 가수 故 옥희, 오늘(24일) 영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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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년대 아이콘에서 투병까지, 옥희의 뜨거웠던 음악 인생

가수 옥희(본명 김광숙)가 세상과 작별하고 영원히 잠들었다.

고인의 발인식은 24일 오전 서울 송파구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에서 엄수됐다. 발인에 앞서 오전 10시부터는 사단법인 대한가수협회(회장 박상철)가 주관하는 영결식이 거행됐다.

가수 옥희의 빈소가 지난 21일 오후 서울 송파구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 22호에 마련돼 있는 모습. / 뉴스1
가수 옥희의 빈소가 지난 21일 오후 서울 송파구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 22호에 마련돼 있는 모습. / 뉴스1

이날 영결식은 고인의 독실한 신앙생활을 기려 기독교 예배 형식으로 치러졌다. 박상철 대한가수협회 회장이 조사를 낭독했고 협회 이사가 추도사를 맡았다. 고인의 생전 활약상이 담긴 추모 영상 상영에 이어 참석자들의 헌화와 분향이 차례로 이어졌다. 마지막 길에는 배우자인 전 권투 세계 챔피언 홍수환을 비롯해 가요계 선후배들과 동료들이 참석해 슬픔을 나눴다.

장지는 경기도 화성에 있는 함백산 추모공원이다.

고인은 지난해 2월 신장암 진단을 받고 투병 생활을 이어왔다. 남편 홍수환의 지극한 간호 속에 치료를 지속했으나 지난 20일 오후 수원의 한 병원 호스피스 병동에서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숨을 거뒀다. 향년 73세.

'서울시스터즈' 리더로 데뷔, 70년대 가요계의 아이콘

가수 옥희 생전 모습. / 뉴스1
가수 옥희 생전 모습. / 뉴스1

대중음악계에 굵직한 족적을 남긴 고인의 삶은 출생부터 예술과 맞닿아 있었다. 옥희는 한국전쟁 중이던 1953년 피란지 부산에서 악극단 활동을 하던 부모 밑에서 태어났다. 전후 서울로 상경한 그는 배화여중 3학년 시절 명동 고모의 의상실에서 당대 최고의 가수 현미를 만난 일을 계기로 미8군쇼 오디션을 보며 연예계에 발을 들였다. 이후 작곡가 이봉조와 김희갑에게 발탁되며 가창력과 예술적 재능을 인정받았다.

1968년에는 5인조 여성 그룹 '서울시스터즈'의 리더로 발탁돼 본격적으로 가요계에 첫발을 내디뎠다. 당시 척박했던 환경 속에서도 캐나다, 홍콩, 미국 라스베이거스 등 해외 무대에서 활약하며 초기 K팝의 저력을 알렸다. 현지에서는 귀여운 고양이를 연상케 하는 영문명 '키티 김(Kitty Kim)'으로 불렸고 본명을 친근하게 표현한 '오키토키'라는 애칭으로도 사랑받았다.

귀국 후 솔로 가수로 전향한 옥희는 1974년 '나는 몰라요'를 발표하며 큰 인기를 얻었다. 이어 '이웃사촌', '눈으로만 말해요', '두 손을 잡아요', '어디에 있을 것 같아' 등 연이은 히트곡을 내놓으며 1970년대 가요계의 아이콘으로 급부상했다. 솔로 전향 첫해의 대중적 성공에 힘입어 1975년에는 MBC 10대 가수상도 받았다. 당당하면서도 폭발적인 보컬 실력은 기존 여성 가수의 전형적인 틀을 깼다는 평가를 받았다.

결혼 후 한동안 연예계를 떠나 가정과 개인 사업 등에 전념했지만 음악을 향한 의지는 놓지 않았다. 1981년 '아내의 일기' 등을 발표하며 재기의 불씨를 지폈고 2000년에는 남편 홍수환과 함께 부부 찬양 앨범을 내며 대중과 다시 소통했다.

이후 2003년 '소설 같은 사랑'으로 가요계에 복귀한 고인은 '돈 때문에'(2007년), '인생 열차'(2017년) 등 음반을 꾸준히 발매하며 무대를 향한 열정을 이어갔다. 투병 기간 중에도 신곡을 내놓을 만큼 음악에 대한 애정을 놓지 않았던 고인의 음악 세계는 대중의 마음속에 오래도록 남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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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수환과의 극적인 재결합과 가족 이야기

가수 옥희의 빈소에 배우자 홍수환 전 한국권투위원회 회장이 자리하고 있는 모습. / 뉴스1
가수 옥희의 빈소에 배우자 홍수환 전 한국권투위원회 회장이 자리하고 있는 모습. / 뉴스1

유족으로는 남편 홍수환과 슬하에 1남 1녀가 있다. 두 사람은 1977년 결혼했으나 이혼한 뒤, 16년 만인 1995년 재결합해 큰 화제를 모은 바 있다. 두 사람은 당대 최고의 스포츠 스타와 대중가수의 만남으로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1977년 라디오 방송국에서 처음 만난 이들은 첫눈에 호감을 느끼며 급격히 가까워졌다. 그러나 결혼 후 성격 차이와 가정사로 갈등을 겪으며 짧은 결혼 생활 끝에 이혼을 선택해 큰 충격을 안겼다.

오랜 세월 서로 다른 길을 걷던 중 고인은 딸에게 아버지를 만나게 해줘야겠다는 결심을 계기로 홍수환과 극적인 재회를 결심했다. 결국 1995년 재결합한 부부는 이후 30년 가까운 세월을 동반자로 함께하며 변함없는 신뢰를 보여줬다. 특히 고인의 오랜 투병 기간 내내 남편 홍수환이 병상을 지키며 지극정성으로 간호했던 일화는 주변의 가슴을 뭉클하게 만들었다.

대한가수협회 측은 대중음악의 발전에 공헌하며 대중에게 따뜻한 위로와 감동을 선사한 고인의 업적과 발자취를 깊이 기억하겠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