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악산 못지않다…백두대간 핵심 능선 '고원 트레킹' 명산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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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백과 정선 사이 '함백산'

백두대간 산줄기를 따라 강원도 고원지대에 이르면 태백과 정선의 경계에 걸친 '함백산'을 만난다. 높은 고도와 탁 트인 조망, 고산 식생, 오래된 불교 유산이 한 산자락에 어우러진 곳이다. 정상으로 향하는 길은 산의 규모뿐 아니라 이 지역이 간직해 온 역사까지 함께 보여준다.

함백산 풍경 / 한국관광공사(촬영 : 정상호)
함백산 풍경 / 한국관광공사(촬영 : 정상호)

백두대간 중심에 선 고산

함백산은 강원도 태백시 소도동과 정선군 고한읍에 걸쳐 있다. 높이는 해발 1572.9m다. 백두대간의 중심축에 자리한 고산으로, 한반도 산줄기의 흐름을 선명하게 드러낸다.

산 주변은 여러 능선이 겹치며 고원 지형을 이룬다. 동해안과 내륙을 잇는 길목에 놓여 있으며, 태백과 정선 지역을 대표하는 명산으로 불린다. 정상부에 서면 시야를 가리는 장애물이 없어 사방으로 뻗은 능선을 두루 바라볼 수 있다. 남쪽의 태백산을 비롯해 일월산, 백운산, 가리왕산까지 이어지는 산세가 한눈에 들어온다.

함백산 만항재에서 본 산 능선 / 연합뉴스
함백산 만항재에서 본 산 능선 / 연합뉴스

우리나라 산 중에서도 함백산은 손에 꼽히는 고산이다. 한라산과 지리산, 설악산, 덕유산, 계방산 다음으로 높은 산이며, 백두대간 안에서도 존재감이 뚜렷하다. 동쪽에는 매봉산이, 북쪽에는 금대봉과 대덕산이 둘러서 있다. 주변을 감싼 고산들은 함백산 일대의 울타리 역할을 하며, 높은 고도와 깊은 산세는 고산지대 특유의 기후와 생태를 유지하는 바탕이 된다.

함백산 산행의 매력은 정상에서만 느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오르는 길에서는 고원지대의 공기와 숲의 변화가 먼저 느껴지고, 능선에 가까워질수록 시야가 서서히 넓어진다. 주변 산들이 겹겹이 펼쳐지는 풍경은 백두대간 한가운데 서 있다는 실감을 더한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푸른 숲과 야생화, 단풍, 설경이 차례로 산길의 분위기를 바꾸며 같은 길에도 다른 인상을 남긴다.

함백산 산길   / ⓒ한국관광콘텐츠랩
함백산 산길 / ⓒ한국관광콘텐츠랩

보호받는 숲과 고산 식생

함백산의 가치는 높이와 규모에만 머물지 않는다. 산자락을 따라 펼쳐지는 생태 환경 역시 함백산의 큰 매력이다. 북쪽의 금대봉, 대덕산과 산자락을 맞대며 고산 생태 축을 이루는 함백산 일대는 현재 산림유전자원보호구역으로 지정되어 있다.

함백산 만항재 / 연합뉴스
함백산 만항재 / 연합뉴스

숲속에는 오래된 주목 수백 그루가 자생하고 있으며, 특히 정상 부근의 주목 군락은 함백산을 상징하는 고산 경관으로 꼽힌다. 여기에 계절마다 피어나는 야생화가 더해지며 산의 풍경은 한층 다채로워진다. 봄부터 가을까지 구릿대, 가는기린초, 동자꽃 등이 고산지대 사면을 따라 피어나며, 능선과 숲길 사이에 고원 특유의 계절감을 더한다.

함백산 자락의 만항재는 이런 고산 식생을 가까이서 마주할 수 있는 곳이다. 태백과 정선, 영월이 만나는 고갯마루에 자리하며 해발 1330m에 달한다. 곧게 뻗은 낙엽송 숲을 따라 산책로가 이어지고, 하늘숲정원과 산상의 화원, 바람길 정원 등이 조성되어 있다. 만항재 일대에서는 매년 여름 야생화 축제도 열린다. 함백산 산행이 정상의 탁 트인 조망을 즐기는 여정이라면, 만항재는 고원 숲과 꽃을 따라 천천히 걷는 길에 가깝다.

함백산 만항재 / 연합뉴스
함백산 만항재 / 연합뉴스

이처럼 함백산은 계절마다 다른 풍경을 품는다. 봄과 여름에는 고산 식물이 산길을 채우고, 가을에는 능선마다 단풍이 번진다. 겨울철에는 새해 첫 일출을 맞으려는 산행객들의 발길이 이어진다. 높은 고도와 탁 트인 조망, 잘 보존된 숲이 어우러져 함백산만의 특별한 매력을 자아낸다. 다만 고원의 날씨는 평지와 달라 변하기 쉬우므로, 산행 전 따뜻한 여벌 옷을 챙기고 등산로를 미리 확인하는 것이 좋다.

함백산에 남은 이름과 시간

함백산은 오래전부터 여러 문헌에 이름을 남겼다. 옛 문헌에는 ‘크고 밝은 뫼’라는 뜻의 대박산으로 기록되어 있으며, 고려시대 일연이 쓴 <삼국유사>에는 묘범산이라는 이름으로 등장한다. 이렇듯 시대에 따라 다양한 이름으로 불린 것은 함백산이 예로부터 역사적, 문화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지녀 왔음을 보여준다.

함백산 정상 돌탑 / ⓒ한국관광콘텐츠랩
함백산 정상 돌탑 / ⓒ한국관광콘텐츠랩

함백산은 수려한 자연경관뿐 아니라 지하자원으로도 가치가 높다. 지상에는 울창한 숲과 고산 식생이 자라고, 땅속에는 근대 산업화 시기 대한민국 경제 성장을 뒷받침한 석탄이 매장되어 있다. 이처럼 자연 생태와 산업사의 흔적이 한곳에 어우러진 함백산은 강원 고원의 다채로운 이야기를 품고 있다.

정선 고한읍과 사북읍 일대는 옛 탄광촌의 기억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곳이다. 고한 구공탄시장과 삼탄아트마인, 그리고 고원 트레킹 코스인 '운탄고도'는 함백산 여정에서 함께 둘러보기 좋다. 산행을 마친 뒤 주변 일정을 더하면, 탄광촌의 옛 생활 문화와 고원의 자연을 한 번에 경험할 수 있다. 구공탄시장에서는 정겨운 장터 풍경을 마주하고, 삼탄아트마인에서는 옛 폐광을 꾸민 문화 공간을 둘러보게 된다. 능선을 따라 걷는 운탄고도는 함백산 주변 산세와 시원하게 연결된다.

지장천 계곡과 정암사

함백산의 깊은 골짜기 중 지장천 계곡은 불교 문화유산이 깃든 곳이다. 계곡 유역에는 5대 적멸보궁 중 하나인 정암사가 자리한다. 사찰 뒤편에는 국보인 수마노탑이 서 있다. 맑고 차가운 물에는 열목어가 살고 있으며, 이 일대는 천연기념물 열목어 서식지로 지정되어 있다. 청정한 생태 환경과 사찰의 문화유산이 이곳에서 자연스럽게 어우러진다.

정암사의 창건 내력은 1300여 년 전 신라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자장율사가 문수보살의 계시에 따라 진신사리를 모실 갈반지를 찾아 전국을 다니다가 지장천 유역에서 커다란 구렁이를 발견하고, 그 자리에 정암사의 기틀을 세웠다는 이야기가 남아 있다. 그 터에 석가모니의 진신사리를 봉안하기 위해 적멸보궁을 짓고, 뒤편에 수마노탑을 조성했다는 전승도 함께 전해진다.

정선 정암사 / 한국관광공사(촬영 : 손명권)
정선 정암사 / 한국관광공사(촬영 : 손명권)

정암사 경내에는 적멸보궁 옆에 서 있는 주목 고목도 있다. 이 나무는 자장율사가 수행 중 꽂아두었던 지팡이가 뿌리를 내리고 살아났다는 이야기와 함께 전해진다. 지역 주민과 불교계에서는 이 나무를 선장단이라 부르며 보호하고 있다. 계곡과 사찰, 탑과 고목이 조화를 이루며 함백산 자락의 오랜 역사와 자연을 함께 보여준다.

정암사는 함백산 산행과는 또 다른 고즈넉함을 선사한다. 정상부의 조망이 산세의 크기를 보여준다면, 지장천 계곡은 물길과 사찰, 탑이 품은 깊이를 드러낸다. 함백산 여정에 정암사를 더하면 산이 지닌 생태적 가치와 문화유산의 흐름을 한눈에 살필 수 있다.

고원 식생이 이어지는 맛과 길

함백산의 독특한 자연환경은 고원지대 특유의 식생을 형성했고, 이는 지역 음식 문화로도 이어졌다. 특히 두문동재에서 만항재로 이어지는 완만한 고원 지역은 고산 식물이 풍부한 곳으로 꼽힌다. 서늘한 고원 기후와 비옥한 토양에서 참나물, 누리대, 취나물 등이 자란다. 이들 나물은 태백과 정선 등 인근 주민들의 밥상에 오래전부터 오르며 지역 식문화를 대표하는 식재료가 됐다.

산악 환경에서 자란 나물은 향과 식감이 뚜렷해 토속 음식의 주요 재료로 쓰였다. 고산지대의 산나물과 이를 활용한 음식은 함백산의 자연환경이 주민들의 삶에 어떻게 스며들었는지를 잘 보여준다. 정선에서는 곤드레밥처럼 산나물을 활용한 음식이 지역의 맛으로 깊이 자리 잡았다.

[삽화] 기사 이해를 돕기 위해 AI로 제작한 이미지.
[삽화] 기사 이해를 돕기 위해 AI로 제작한 이미지.

발걸음을 정선 쪽으로 옮기면 산나물 문화는 시장 풍경으로 이어진다. 정선아리랑시장(5일장)에서는 갖가지 산나물과 약재가 장터를 가득 채운다. 곤드레나물밥, 콧등치기국수, 수수부꾸미처럼 산간 지역의 식재료와 생활 방식이 담긴 음식도 함께 맛볼 수 있다. 함백산의 고산 식생을 보고 내려온 뒤 장터의 음식을 마주하면, 산에서 시작된 자연이 밥상으로 이어지는 여정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

태백 쪽 음식 문화는 탄광 도시의 생활사와도 맞닿는다. 대표 별미인 물닭갈비는 닭고기와 채소를 국물과 함께 끓여 먹는 전골식 요리다. 과거 탄광 노동자들이 광산 일을 마친 뒤 추위를 달래며 든든하게 먹던 한 끼에서 출발했으며, 일반적인 닭갈비와 달리 국물이 자작한 것이 특징이다. 태백 한우 역시 이 지역을 대표하는 또 다른 별미다. 산행 뒤의 식사는 별개의 일정이 아니라 함백산을 둘러싼 지역의 생활 문화를 이해하는 또 다른 즐거움이 된다.

함백산 여행은 정상만을 오르고 끝나는 여정이 아니다. 고산 식생을 따라 만항재로 이어지고, 지장천 계곡에서는 정암사와 국보인 수마노탑을 만난다. 고한과 사북 일대에서는 탄광 지역의 흔적과 시장 풍경이 펼쳐지며, 태백 쪽으로는 고원 도시의 음식 문화가 함께 녹아든다.

일정을 짤 때는 함백산 정상과 만항재, 정암사를 한 축으로 묶을 수 있다. 정상에서는 백두대간의 거대한 산세를 감상하고, 만항재에서는 고원 숲과 야생화를 따라 걷는다. 지장천 계곡의 정암사로 내려서면 발길이 불교 유산과 계곡 생태로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여기에 고한 구공탄시장이나 '운탄고도' 트레킹을 더하면 정선 고원 지역의 생활 풍경과 산길이 조화롭게 연결된다.

백두대간의 큰 산세와 아름다운 숲, 오래된 역사와 지역의 생활 문화는 함백산 자락에서 한 흐름으로 맞물린다. 강원 고원의 자연과 역사를 함께 만나고 싶다면, 함백산은 그 흐름을 따라 걷기 좋은 산이다.

함백산 / 구글 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