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수·니트족 가고 '전업자녀' 왔다…집안일 하고 부모에게 월급 받는 청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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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업난·고물가가 만든 청년들의 새로운 생존전략

지난 20여 년 동안 청년세대를 일컫는 명칭은 시대적 상황과 경제적 여건에 따라 끊임없이 변화했다. 1990년대에는 기존 질서에 저항하는 X세대가 주를 이뤘고, 2000년대에 접어들면서 고용 불안정을 반영한 88만원 세대, 니트족(NEET), N포세대라는 어두운 키워드가 잇따라 등장했다. 최근에는 이들의 뒤를 이어 '전업자녀'라는 개념이 새로운 청년층의 삶의 형태로 자리 잡고 있다.

기사 이해를 돕기 위해 AI로 제작된 이미지.
기사 이해를 돕기 위해 AI로 제작된 이미지.

시사상식사전에 따르면 전업자녀는 중국의 '취안즈얼뉘(전직자녀)'에서 유래한 신조어로, 직장을 구하지 못한 성인 자녀가 가사 노동을 전담하는 조건으로 부모에게 일정한 급여를 받는 현상을 뜻한다. 이는 중국이 극심한 청년 실업률을 기록했을 당시 소셜미디어를 중심으로 급속히 퍼진 뒤 한국 사회로 유입됐다. 단순히 경제적으로 부모에게 의존하기만 했던 기존의 캥거루족이나 니트족과 달리, 집안일이라는 실질적인 노동을 분담하며 상호 계약 관계를 형성한다는 점에서 차별점을 보인다.

높아진 자립의 벽… 취업난과 고물가가 만든 "첫 취업까지 11.3개월"

이처럼 전업자녀가 확산하는 밑바탕에는 심각한 구조적 취업난과 주거난이 자리 잡고 있다. 국가데이터처가 발표한 '5월 고용동향'을 살펴보면 청년층(15~29세) 취업자 수는 지난해 같은 달보다 25만 5000명이나 줄어들었다.

청년층 고용률 역시 25개월 연속 하락세를 이어가며 43.8%까지 떨어졌다. 이는 60세 이상 고령층의 고용률인 47.2%보다도 낮은 수치다. 최종 학교를 졸업하고도 1년 넘게 일자리를 얻지 못하는 청년들의 비중도 점차 확대되는 추세다. 통계청의 '2025년 5월 경제활동인구조사 청년층 부가조사 결과'에 따르면 졸업 후 첫 직장을 구하기까지 걸리는 기간은 평균 11.3개월로 나타났다. 구직 기간이 1년 이상 소요된다고 답한 청년의 비율도 31.3%에 달했다.

극심한 구직난이 청년들의 경제적 자립을 가로막는 요인이라면, 고물가와 주거 비용 부담은 물리적인 공간 분리를 방해하고 있다. 국무조정실이 내놓은 '2024년 청년의 삶 실태조사' 결과, 만 19~34세 청년의 54.4%가 여전히 부모와 동거 중인 것으로 파악됐다. 실제로 청년들이 독립하는 시점이 점점 늦어지고 있다는 구체적인 연구도 존재한다. 서울연구원이 출생 세대별로 35세 시점에 부모와 함께 살고 있는 비율을 조사한 결과, 전국 기준으로 1971~1975년생은 18.6%에 불과했으나 1976~1980년생은 26.2%, 1981~1986년생은 32.1%로 세대가 어려질수록 동거 비율이 눈에 띄게 상승했다.

전업자녀의 상당수는 구직 활동을 하지 않고 특별한 이유 없이 노동시장에서 이탈한 '쉬었음' 인구에 편입되어 있을 가능성이 높다. 국가데이터처 조사 결과 지난 5월 기준 '쉬었음' 인구는 64만 8000명에 이르렀는데, 이는 10년 전인 2016년 5월과 비교해 23만 5000명이나 불어난 규모다. 연령별로는 20대의 '쉬었음' 비중이 6.6%로 전 연령대 중 가장 높았다. 다만 전업자녀라는 지표는 공식적인 국가 통계 체계에 잡히지 않는 신조어여서 정확한 실태 규모를 산출하기는 어렵다.

죄책감 덜어내는 '가사 분담'

최근 유튜브를 비롯한 각종 소셜미디어에는 전업자녀의 일상을 담은 브이로그 영상이 하나의 콘텐츠 장르로 소비되고 있다. 이러한 영상 속 청년들은 단순한 가사 보조를 넘어 요리, 설거지, 집안 청소, 장보기 등 가정 내 노동을 체계적으로 분담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스스로 '일과표'를 작성해 실천하는 행동 양식은 무직 상태에서 오는 심리적 죄책감을 상쇄하고, 부모로부터 받는 경제적 지원의 정당성을 확보하려는 심리적 기제와 맞물려 있다.

서울 마포구 서울서부고용복지플러스센터에서 구직자가 상담을 기다리고 있다. / 뉴스1
서울 마포구 서울서부고용복지플러스센터에서 구직자가 상담을 기다리고 있다. / 뉴스1

가사 노동과 외부 단기 아르바이트를 병행하는 다소 변형된 형태의 전업자녀도 늘어나는 추세다. 이는 고물가 기조 속에서 부모의 경제적 지원만으로는 온전한 생활이 어렵지만, 그렇다고 고정적인 정규직 취업 시장에 진입하기는 힘든 청년층의 타협점으로 풀이된다. 특히 비혼이나 저출산 기조가 고착화되면서 미래를 위한 자산 축적보다 현재의 최소한의 생계 유지에 만족하는 가치관 변화도 이러한 형태의 가족 내 안주를 심화시키는 요인이다. 과거 맞벌이 부모 밑에서 자라며 자연스럽게 집안일을 체계적으로 습득한 세대적 특성 역시 청년들이 가사 전담 역할로 전환하는 데 거부감을 줄여준 배경이 된다.

구조적으로 볼 때 전업자녀 현상은 노동 시장의 위축, 주거 안정성 저하, 그리고 한국 특유의 강력한 가족 중심주의 문화가 결합해 도출된 결과물이다. 복지 제도가 고용 위기를 전적으로 흡수하지 못하는 구조적 한계 속에서, 한국 사회는 국가나 시장 대신 가족이 경제적 부담을 함께 떠안는 전통적인 방식을 고수하고 있다. 과거 고성장기에 자산을 안정적으로 축적한 베이비붐 세대 부모가 성인 자녀를 부양하고, 자녀는 부모의 전폭적인 지원을 울타리 삼아 장기적인 취업 준비나 가사 노동을 이어가는 일종의 '가족 내 상생형 경제 생존 전략'인 셈이다.

그러나 이러한 형태의 장기 정착은 인구학적으로 심각한 부작용을 예고한다. 앞서 고령사회에 진입한 일본의 경우, 청년기의 구직 단념과 경제적 비활성 상태가 중장년층까지 지속되면서 '5080 현상'이라는 심각한 사회문제를 겪은 바 있다. 이는 고령화된 80대 노부모가 지급받는 노령연금에 의존해 50대 성인 자녀가 생계를 이어가는 왜곡된 구조를 뜻한다. 한국 역시 고령화 속도가 세계에서 가장 빠른 만큼, 자립 장벽에 막힌 청년층의 고립이 장기화될 경우 가족 중심의 사적 안전망마저 붕괴하며 사회적 비용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