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임호 배재고 총동창회장 “진심 어린 사과만이 화해의 시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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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민주묘역에서 밝힌 역사교육의 중요성…“용서는 행동으로 증명할 때 완성된다”
"진정성 있는 사과는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완성됩니다."

[위키트리 전남광주특별시 취재본부 노해섭 기자]

6일 5·18민주묘역에서 만난 배재고등학교 총동창회 임호 회장의 첫마디에는 무거운 책임감이 묻어 있었다. 최근 전국고교야구대회 과정에서 발생한 일부 배재고 학생들의 부적절한 응원 논란으로 광주 시민들에게 큰 상처를 안긴 상황에서, 그는 학교를 대표하는 선배로서 누구보다 먼저 광주를 찾았다.

배재고등학교 총동창회 임호 회장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노해섭 기자
배재고등학교 총동창회 임호 회장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노해섭 기자
배우로서는 수많은 작품에서 왕과 장군을 연기하며 묵직한 존재감을 보여줬지만, 이날만큼은 화려한 배우가 아닌 후배들을 대신해 사과하는 '배재고의 맏형'이었다. 그는 갈등을 봉합하는 데 그치지 않고, 역사 앞에서 배우고 실천하는 교육이야말로 이번 사태를 해결하는 유일한 길이라고 강조했다.

◆ "사과는 선택이 아닌 당연한 책임이었습니다"

임호 회장은 사건이 알려진 직후부터 총동창회의 입장은 분명했다고 말했다.

"학교장과 긴밀하게 연락하며 가장 먼저 이야기한 것이 무조건적인 사과였습니다. 어떤 변명도 있을 수 없었고, 무엇보다 광주 시민들께 진심을 전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실제 광주 방문이 성사되기까지 과정은 결코 쉽지 않았다.

그는 "광주제일고 교장선생님께 직접 연락드려 학생들과 함께 사과드릴 기회를 요청했고, 총동창회 내부에서도 여러 논의를 거쳤다"며 "처음에는 여러 가지 우려도 있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우리의 진심을 이해해 주셨고, 결국 방문을 허락해 주셨다"고 회상했다.

이어 "이번 일은 누가 이기고 지는 문제가 아니라 잘못을 인정하고 용서를 구하는 과정이었다"며 "진심 어린 사과가 화해의 첫 단추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고 말했다.

◆ "이번 일을 통해 역사교육의 빈틈을 절실히 느꼈습니다"

임 회장은 이번 사태를 계기로 우리 사회가 5·18민주화운동의 역사와 의미를 미래세대에게 제대로 전달하고 있는지 깊이 돌아보게 됐다고 했다.

"우리 세대는 학교에서 5·18의 역사와 민주주의의 가치를 배우며 자랐습니다. 그런데 이번 일을 겪으며 젊은 학생들이 그 의미를 충분히 알지 못한다는 사실을 확인했고, 솔직히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는 단순히 학생 개인의 잘못으로만 볼 문제가 아니라 사회 전체의 교육 시스템을 되돌아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5·18은 특정 지역만의 역사가 아니라 대한민국 민주주의를 지켜낸 역사입니다. 그 의미만큼은 모든 학생들이 제대로 배우고 이해해야 합니다."

특히 이번 일을 계기로 학교 차원의 지속적인 역사교육 시스템을 마련하겠다는 의지도 밝혔다.

"이효준 교장선생님과도 꾸준히 이야기했습니다. 일회성 교육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항구적이고 체계적인 역사교육 프로그램을 만들어야 합니다. 저 역시 총동창회 차원에서 그 약속이 반드시 실천되는지 끝까지 함께하겠습니다."

◆ "광주의 상처를 생각하면 더욱 죄송했습니다"

인터뷰 내내 임 회장은 광주 시민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여러 차례 표현했다.

"광주는 아직도 5·18의 아픔을 기억하며 살아가는 도시입니다. 그런 곳에서 또다시 상처를 드렸다는 사실이 너무 죄송했습니다."

그는 진정한 사과는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이어져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미 벌어진 일은 되돌릴 수 없습니다. 하지만 앞으로 어떻게 행동하느냐는 우리의 몫입니다. 교육적 대책을 마련하고 약속을 끝까지 실천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책임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어 "계속해서 광주를 찾고, 역사교육과 교류를 이어가며 신뢰를 회복하는 노력을 멈추지 않겠습니다"라고 말했다.

◆ "용서해주신 광주의 큰 마음에 감사드립니다"

임 회장은 이번 화해의 자리가 만들어질 수 있었던 것은 광주 교육계와 동문들의 큰 결단 덕분이라고 말했다.

그는 특히 광주제일고 이규연 교장과 광주제일고 총동창회 홍경표 회장에게 깊은 감사의 뜻을 전했다.

"결코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학생들이 배우고 성장할 기회를 만들어 주셨습니다."

이어 "그분들의 너그러운 마음이 있었기에 우리 학생들이 직접 광주를 찾아 사과하고 민주묘역을 참배하며 역사 앞에서 배울 수 있었습니다."

또 "이번 방문은 단순한 사과 행사가 아니라 학생들이 평생 기억할 교육의 시간이 됐다고 생각합니다"라고 덧붙였다.

◆ "갈등을 넘어 연대로…이번 일이 새로운 출발이 되길"

임 회장은 이번 사태가 배재고뿐 아니라 우리 사회 모두에게 의미 있는 교훈을 남겼다고 평가했다.

"누구나 실수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잘못을 인정하고 책임지는 자세가 더 중요합니다. 이번 일을 계기로 학생들이 더 성숙해지고, 배재고 역시 더 좋은 학교로 성장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는 앞으로 서울과 광주 학생들이 역사와 스포츠를 통해 지속적으로 교류하는 프로그램도 적극 지원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서로를 이해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직접 만나고 함께 배우는 것입니다. 역사와 문화, 스포츠를 통해 서로를 이해한다면 이번과 같은 갈등은 다시는 반복되지 않을 것입니다."

◆ 배우보다 '선배'로 남은 하루

이날 5·18민주묘역에서 만난 임호 회장은 TV 사극에서 왕과 장군을 연기하며 보여줬던 카리스마와 신뢰감을 현실에서도 그대로 보여줬다.

그러나 그날의 그는 배우가 아니었다. 후배들의 잘못 앞에서 책임을 외면하지 않고 광주를 찾아 사과의 손을 내민 선배였고, 갈등과 상처를 잇는 가교가 되기 위해 누구보다 분주하게 현장을 뛰어다닌 교육 공동체의 일원이었다.

자칫 깊은 지역 갈등으로 번질 수 있었던 사안을 화해와 성찰의 계기로 바꾸기 위해 그는 학교와 동문, 광주 교육계 사이를 쉼 없이 오갔다. 그의 행보는 "진정한 사과는 말보다 행동"이라는 메시지를 몸소 보여준 시간이었다.

이번 만남이 일회성 사과로 끝나지 않고, 역사교육과 청소년 교류, 상호 존중의 문화로 이어질 때 비로소 이번 사건은 우리 사회에 값진 교육적 유산으로 남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출발점에는 "진심은 반드시 통한다"고 믿었던 한 선배의 묵묵한 실천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