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봉투 논란' 서영교 출판기념회가 남긴 씁쓸한 결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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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돈 봉투' 영상 터졌는데…20년 전 판례로 면죄부 준 경찰

지난 2월 3일 서영교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출판기념회가 열린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 전경.  / 유튜브 채널 '매일신문'
지난 2월 3일 서영교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출판기념회가 열린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 전경. / 유튜브 채널 '매일신문'

경찰이 서영교 더불어민주당 의원(현 국회 법사위원장)의 출판기념회에서 책값을 훌쩍 웃도는 돈봉투가 오간 정황을 확인하고도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선거를 앞둔 정치인들의 '꼼수 모금 수단'으로 악용돼 온 출판기념회 관행에 또다시 면죄부를 줬다는 비판이 나온다.

8일 경찰에 따르면 서울 영등포경찰서는 서 의원에 대한 청탁금지법 및 정치자금법 위반, 뇌물수수 혐의 고발 사건을 불송치(혐의 없음)했다.

경찰이 내세운 무혐의 논리는 크게 세 갈래다. 먼저 출판기념회는 정치 활동으로 볼 수 없고, 책값으로 받은 돈도 정치자금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근거로 제시한 것은 2005년 대법원 판례다. 출판기념회는 저자의 노고를 기리고 출판을 축하하는 의례적 성격이 강해 시중 정가보다 많은 금액을 책값으로 지급할 수 있다는 취지의 판결이었다. 20년 전 판례를 기계적으로 끌어와 탈법 시비가 끊이지 않는 오늘날의 정치 관행을 묵인한 셈이다.

경찰은 또 출판기념회 주최 측이 서 의원이 아닌 출판사라는 점을 들어, 받은 돈이 도서 매매 대금 성격이라 '기부금'으로 보기 어렵다고 했다. 판매 대금이 서 의원에게 직접 귀속됐다고 단정할 수 없다는 논리다. 청탁금지법 위반 혐의와 뇌물 혐의도 같은 근거로 함께 무혐의 처리됐다.

결국 정치자금법 혐의는 '의례적 성격'이라는 판례로, 청탁금지법·뇌물 혐의는 '귀속 불분명'이라는 법리로 각각 빠져나간 셈이다.

그러나 현장 영상은 경찰의 '의례적 축하금' 해석에 의문을 제기할 만한 장면들을 담고 있다.

지난 2월 대구·경북 지역지 매일신문이 공개한 1분 30초 분량의 영상에는 서울 영등포구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서 의원의 출판기념회 현장이 고스란히 담겼다. 참석자들이 5만원권 여러 장을 흰 봉투에 넣어 판매대의 현금수거함에 집어넣는 장면이었다. 참석자 대부분은 봉투 겉면에 자신의 이름을 적어 냈고, 책값을 훨씬 넘는 현금을 낸 뒤 책은 달랑 1권만 받아 갔다. 봉투마다 이름과 금액이 남는 이 방식이 정말 '의례적 축하금' 수준이었는지는 따져볼 문제다.

문제는 이번 사건에 국한되지 않는다. 선거를 앞두고 출마 예정자들이 펴내는 책 대부분은 자서전이나 에세이다. '시간이 돈'인 정치인이 A4용지 100장 분량(약 300쪽)의 원고를 직접 쓰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에 가깝다. 그러다 보니 과거 페이스북 게시물을 짜깁기하거나 출판사·보좌진이 대필한, 오직 출판기념회만을 위해 급조된 책이 매 선거철 속출한다.

책 내용의 부실함은 차치하더라도, 논란의 핵심은 결국 '돈'이다. 현행법은 당비·후원금·기탁금·보조금 등만 정치자금으로 규정할 뿐, 출판기념회 수익은 별도 규정이 없다.

서영교 국회 법제사법위원장(민주당 의원). / 뉴스1
서영교 국회 법제사법위원장(민주당 의원). / 뉴스1

출판기념회는 정치자금법의 직접 규제 대상이 아니어서, 수익을 선관위에 신고·공개할 의무도, 모금액 상한도 없다. 책 한 권을 건네고 수백만 원을 받아도 법적으로 제재할 방법이 마땅치 않다. '선거일 90일 전까지만 개최할 수 있다'는 시기 제한을 빼면 사실상 규제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셈이다. 이 때문에 정치인들에게 출판기념회는 선거 자금을 손쉽게, 그것도 합법의 외피를 쓰고 마련할 수 있는 통로로 자리 잡았다.


여론이 거듭 문제를 제기해 왔지만, 국회는 사실상 손을 놓고 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 관계자는 "문제의식을 가지고 그동안 법 개정 의견을 여러 차례 냈지만 변한 건 없다"고 말했다. 국민권익위원회 역시 "공직자가 출판기념회에서 '정가'를 받으면 청탁금지법에 저촉되지 않지만 '의례적 범위'를 넘는 '웃돈'을 받으면 위반"이라는 원칙만 밝혔을 뿐, 정작 적극적인 유권해석이나 구체적 가이드라인은 내놓지 않고 있다.

이런 가운데 주진우 국민의힘 의원이 지난해 발의한 이른바 '검은봉투법'도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출판물 판매 수입을 정치자금에 포함하고, 출판기념회 개최 시 중앙선관위 신고를 의무화하는 내용의 정치자금법 개정안이다.

여야를 막론하고 손쉬운 모금 창구를 스스로 포기할 유인이 없는 한, 이번 서 의원 사건처럼 무혐의로 끝나는 사례는 앞으로도 반복될 가능성이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