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개미들이 국장을 떠나는 이유... 주식은 원수에게나 알려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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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상증자·CB·상장폐지… 개미만 피눈물 흘리는 시장
- 레버리지 광풍과 투기판으로 변한 국장
- 투자자는 애국심이 아니라 신뢰를 선택한다

[전국=위키트리 최학봉 선임기자] 한국 증시의 가장 큰 문제는 주가가 빠지는 것이 아니다. 믿을 수 없다는 데 있다.

위키트리 부산경남취재본부장 최학봉 선임기자. / 사진=위키트리DB
위키트리 부산경남취재본부장 최학봉 선임기자. / 사진=위키트리DB

개인투자자들은 손실을 모르는 사람들이 아니다. 주식시장에 들어온 이상 등락과 손실은 감수한다. 그러나 문제는 공정성이다. 기업의 미래를 믿고 투자했는데 돌아오는 것이 유상증자라면, 어렵게 오른 주가 위에 전환사채(CB)와 신주인수권부사채(BW) 물량이 쏟아진다면, 대주주의 지분 매각 논란이 반복된다면 누가 이 시장을 장기투자처로 믿겠는가.

한국 증시에서 개미들은 너무 자주 당해왔다. 상장 당시에는 미래 성장성을 말하고, 자금이 필요할 때는 주주를 찾고, 위기가 오면 책임은 개인투자자에게 떠넘겨졌다. 회사는 살아남기 위해 자금을 조달했지만 기존 주주의 지분가치는 희석됐다. 이런 경험이 반복되니 국장에서는 장기투자보다 단기매매가 살아남는 것이다.

상장폐지는 더 잔인하다. 장밋빛 전망으로 시장에 들어온 기업들이 부실 경영과 횡령, 배임, 회계 문제 등으로 퇴출되는 일이 반복됐다. 그때마다 피해는 힘없는 개인투자자의 몫이었다. 주식은 휴지조각이 되고, 노후자금과 전 재산을 투자한 개미들은 피눈물을 흘렸다. 한때 세계적인 해운기업으로 평가받던 한진해운마저 역사 속으로 사라진 곳이 한국 증시다. 이런 시장에서 개인투자자에게 장기투자를 말하는 것은 무책임하게 들릴 수밖에 없다.

개인투자자들에게 한국 증시는 더 이상 자산을 불리는 시장이 아니라 자산을 잃는 시장이라는 자조가 나온다. 1억 원을 투자했다가 반 토막이 나는 것은 이제 낯선 일이 아니다. 70~80% 손실을 본 뒤 결국 상장폐지로 투자금 대부분을 잃는 사례도 반복돼 왔다. 필자 주변에도 평생 모은 노후자금 10억 원을 주식시장에 투자했다가 2억 원만 남았다는 투자자들이 있다. 그들에게 주식은 단순한 투자 실패가 아니라 무너진 노후와 잃어버린 삶의 계획이었다.

투자 실패는 때로 한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한 가정 전체의 비극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2023년 인천에서 발생한 일가족 5명 사망 사건 당시에도 경찰 조사 과정에서 이웃 주민들은 가장이 주식 투자 실패로 약 5억 원의 채무를 지는 등 극심한 경제적 어려움을 겪었다고 진술했다. 사건의 원인을 단정할 수는 없지만, 과도한 투자 실패와 경제적 압박이 개인과 가족에게 얼마나 큰 고통을 안길 수 있는지를 사회에 다시 한번 일깨운 사례로 남아 있다.

상장폐지를 앞둔 일부 종목에서 이상 거래가 나타날 때마다 개인투자자들은 "누군가는 먼저 알고 있었던 것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한다. 금융당국은 미공개 중요정보 이용과 불공정거래를 적발해 처벌하고 있지만, 이러한 사건이 반복될수록 시장에 대한 신뢰는 흔들릴 수밖에 없다.

최근 문제가 된 단일종목 레버리지 ETF는 한국 자본시장의 또 다른 민낯을 보여준다. 주식시장은 기업의 가치와 미래를 보고 투자하는 공간이어야 한다. 그런데 현실은 하루 등락에 베팅하는 초고위험 상품이 시장을 뒤흔드는 구조가 됐다. 레버리지는 상승장에서는 탐욕을 키우고, 하락장에서는 변동성을 확대할 수 있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거래대금이 늘었다고 건강한 시장은 아니다. 투기적 거래가 시장의 중심이 되는 순간 증시는 투자의 공간이 아니라 투기의 공간으로 변질될 위험이 있다.

불법 리딩방과 시세조종, 미공개 중요정보 이용, 공매도를 둘러싼 공정성 논란도 끊이지 않았다. 투자자들은 실적과 기업가치보다 정보와 자금력이 더 큰 힘을 발휘하는 것 아니냐는 냉소를 보내고 있다. 시장이 공정하다는 믿음이 흔들리는 순간 장기투자는 설 자리를 잃는다.

금융당국도 무거운 책임을 피하기 어렵다. 투자자들이 원하는 것은 사후 적발이 아니라 사전 예방이다. 시장이 망가진 뒤 처벌하는 것만으로는 신뢰를 회복할 수 없다. 반복되는 투자자 피해를 막고 시장 질서를 바로 세우는 것이 감독당국의 가장 중요한 책무다.

한국 증시는 정치에도 지나치게 흔들린다. 정책 한마디와 규제 변화, 세제 논란, 공매도 이슈에 시장 전체가 출렁인다. 기업의 경쟁력보다 정책 방향을 먼저 살펴야 하는 시장에서 장기투자가 뿌리내리기는 쉽지 않다.

국내 자본시장에 대한 신뢰가 흔들리면서 해외시장으로 눈을 돌리는 개인투자자도 늘고 있다. 환율은 다양한 요인의 영향을 받지만, 국장을 떠나 해외시장으로 향하는 자금 흐름은 한국 자본시장이 보내는 경고음이기도 하다.

필자 역시 국장을 떠나 미국장으로 향하려 한다. 미국 시장이 완벽해서가 아니다. 적어도 주주를 대하는 문화와 장기투자에 대한 신뢰를 조금 더 기대할 수 있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투자자는 애국심으로 투자하지 않는다. 신뢰에 투자한다.

증권가에는 오래전부터 씁쓸한 말이 전해진다.

"주식은 원수에게나 알려주라."

정상적인 자본시장이라면 결코 나와서는 안 될 말이다. 그러나 지금의 한국 증시는 이 자조를 쉽게 부정하기 어렵다.

이제는 금융당국도, 상장사도, 대주주도 달라져야 한다. 개인투자자를 보호하지 못하는 시장은 결국 투자자에게 외면받을 수밖에 없다. 신뢰를 잃은 시장에는 자금도, 미래도 머물지 않는다.

한국 증시가 개인투자자를 다시 불러들이고 싶다면 "왜 국장을 떠나느냐"고 묻기 전에 스스로를 돌아봐야 한다. 개미들이 떠나는 것이 문제가 아니다. 개미들이 떠날 수밖에 없게 만든 시장이 문제다. 상장사와 대주주, 그리고 감독당국이 무너진 신뢰를 회복하지 못하는 한 국장을 떠나는 투자자의 발걸음은 쉽게 멈추지 않을 것이다.

결국 대통령까지 직접 나서 주가조작과 불공정거래에 대해 "패가망신할 정도의 강력한 처벌이 필요하다"는 취지의 메시지를 거듭 내놓은 것도, 한국 자본시장의 신뢰가 그만큼 심각하게 훼손됐다는 현실을 보여준다. 국가 최고 지도자가 시장 질서를 바로 세우기 위해 직접 경고에 나설 정도라면, 이는 단순한 시장 문제가 아니라 국가 경제의 신뢰 문제다.

더 이상 개인투자자들이 불공정거래와 주주가치 훼손을 걱정하며 투자해야 하는 시장이 되어서는 안 된다. 정부와 금융당국은 말이 아닌 엄정한 법 집행으로 시장의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 그것이 무너진 한국 증시를 정상적인 투자시장으로 되돌리는 첫걸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