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가린 원숭이'에게 주식을 맡긴다면?… 월가 전문가 긴장시킨 '뜻밖의 대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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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트판이 보여준 주식 예측의 한계

기업 실적과 금리, 산업 전망을 밤새 분석한 월가 전문가와 아무 생각 없이 다트를 던진 원숭이가 주식 대결을 벌인다면 누가 이길까. 답은 너무 뻔해 보인다. 하지만 월가에는 전문가도 무작위로 고른 종목을 늘 이기지는 못한다는 유명한 이야기가 오래전부터 전해진다.

기사 이해를 돕기 위해 AI로 제작한 자료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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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바 '눈 가린 원숭이' 비유다. 눈을 가린 원숭이가 신문 주식면에 다트를 던져 종목을 골라도 전문가가 공들여 만든 포트폴리오에 뒤지지 않을 수 있다는 내용이다. 실제로 미국 월스트리트저널은 전문가 추천 종목과 다트로 무작위 선택한 종목의 수익률을 비교하는 대결을 오랫동안 진행했다.

결과는 한쪽의 압승이 아니었다. 전문가가 전체적으로 더 자주 앞섰지만, 다트로 고른 종목도 일부 대결에서 전문가를 이겼다. 아무렇게나 고른 주식이 치밀한 분석을 꺾은 셈이다. 이 이야기가 지금까지 회자되는 이유는 원숭이의 투자 감각 때문이 아니라, 수많은 정보를 들여다봐도 시장을 꾸준히 맞히는 일이 그만큼 어렵기 때문이다.

다트 한 번으로 월가에 도전하다

이 이야기를 널리 퍼뜨린 인물은 프린스턴대 경제학자 버턴 말킬이다. 말킬은 저서 『랜덤워크 투자수업』에서 눈 가린 원숭이가 신문의 금융면에 다트를 던져 고른 종목도 전문가가 정성껏 구성한 포트폴리오에 뒤지지 않을 수 있다는 취지의 비유를 들었다.

기사 이해를 돕기 위해 AI로 제작한 자료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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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킬이 원숭이의 투자 능력을 높이 평가한 것은 아니다. 시장에서 누구나 확인할 수 있는 정보는 수많은 투자자의 판단을 거쳐 빠르게 가격에 반영된다. 좋은 기업이라는 평가가 널리 퍼졌다면 그 기대도 주가에 어느 정도 담겼을 수 있다. 전문가가 기업과 산업을 꼼꼼히 살펴도 앞으로 벌어질 모든 변화를 예상할 수는 없다.

예상보다 좋은 실적이 나와도 이미 기대감이 높았다면 주가가 떨어질 수 있다. 반대로 좋지 않은 소식이 발표됐는데도 시장의 우려보다 상황이 낫다는 이유로 주가가 오르기도 한다. 투자자는 기업의 현재 상태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무엇을 예상하고 있는지까지 판단해야 한다.

강렬한 원숭이 비유는 월가의 오래된 농담처럼 남았다. 이후 월스트리트저널은 전문가 추천 종목과 다트로 무작위 선택한 종목의 성과를 실제 대결로 옮겼다. 다만 진짜 원숭이가 참여한 것은 아니다. 신문사 직원들이 주식 목록을 향해 다트를 던져 종목을 정했다.

[삽화] 기사 이해를 돕기 위해 AI로 제작한 이미지.
[삽화] 기사 이해를 돕기 위해 AI로 제작한 이미지.

전문가는 앞섰지만 다트도 살아남았다

대결에서는 전문가가 신중하게 선택한 종목과 아무런 분석 없이 고른 종목을 같은 기간 두고 살폈다. 전체적으로는 전문가 쪽이 더 좋은 결과를 낸 경우가 많았다. 그렇다고 다트가 일방적으로 밀린 것도 아니었다. 무작위로 선택된 종목이 전문가의 추천을 앞선 경우도 반복해서 나왔다.

전문가가 다트를 압도할 것이라는 예상과는 다른 모습이었다. 투자 경험과 자료 분석 능력은 분명 도움이 됐지만, 그것만으로 모든 결과를 설명할 수는 없었다. 특정 종목이 뜻밖의 호재로 급등하거나 예상하지 못한 악재로 무너지면 포트폴리오의 성적은 크게 달라졌다.

기사 이해를 돕기 위해 AI로 제작한 자료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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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 높은 수익을 낸 선택이 장기적인 실력을 뜻하는 것도 아니다. 투자 결과에는 판단뿐 아니라 종목을 산 시점과 시장 분위기, 예기치 못한 사건이 함께 작용한다. 우연히 상승 직전의 종목을 골랐다면 뛰어난 분석처럼 보일 수 있고, 판단의 방향이 맞았어도 시장 전체가 흔들리면 손실을 볼 수 있다.

다트 대결은 전문가의 분석이 쓸모없다는 사실을 말해주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정보와 경험이 있어도 우연의 영향을 완전히 없애기는 어렵다는 점을 드러냈다. 시장에서 좋은 결과를 얻었다는 사실만으로 판단 과정까지 모두 옳았다고 단정하기 어려운 이유다.

많이 알수록 확신도 커진다

투자자는 정보가 늘어날수록 자신의 판단이 더 정확해졌다고 느끼기 쉽다. 기업 보고서와 차트를 오래 살피고 여러 전망을 비교하면 종목을 충분히 이해했다는 자신감이 생긴다. 문제는 자신감이 커지는 속도와 실제 예측 능력이 높아지는 속도가 항상 같지는 않다는 데 있다.

한번 특정 기업을 좋게 보기 시작하면 그 판단을 뒷받침하는 정보가 더 눈에 들어올 수 있다. 긍정적인 전망은 중요하게 받아들이면서 불리한 내용은 일시적인 문제로 넘기기도 한다. 주가가 오르면 자신의 분석이 맞았다고 여기고, 떨어지면 시장이 기업의 가치를 알아보지 못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최근 크게 오른 종목이 앞으로도 계속 오를 것이라는 기대도 판단을 흔든다. 사람은 가까운 시기에 일어난 일을 더 중요하게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 며칠 동안 상승세가 이어졌다는 이유만으로 흐름이 계속될 것처럼 느끼거나, 주변의 성공 사례를 보고 뒤늦게 매수에 나서기도 한다.

손실이 발생했을 때는 다른 심리가 작동한다. 투자자는 손해를 확정하는 불편함을 피하려 하락한 종목을 계속 보유할 수 있다. 처음 세운 전망이 달라졌는데도 언젠가는 원래 가격으로 돌아올 것이라는 기대를 놓지 못한다. 종목을 팔면 자신의 판단이 틀렸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는 부담도 생긴다.

다트에는 이런 기대나 후회가 없다. 특정 종목에 애착을 느끼지 않고 자신의 전망을 지키려 고집하지도 않는다. 그렇다고 무작위 선택이 사람보다 우월하다는 뜻은 아니다. 아무 종목이나 고르면 위험한 기업이나 급락 가능성이 큰 종목이 포함될 수 있다. 다트는 투자 전략이 아니라 인간의 확신을 돌아보게 하는 장치에 가깝다.

위키트리 캐릭터를 활용한 AI 일러스트 이미지.
위키트리 캐릭터를 활용한 AI 일러스트 이미지.

원숭이가 아니라 시장이 어려웠다

눈 가린 원숭이 이야기가 던지는 핵심은 분석을 포기하라는 말이 아니다. 기업의 재무 상태와 사업 구조를 살피는 일은 위험을 판단하는 데 필요하다. 다만 아무리 많은 자료를 모아도 아직 벌어지지 않은 사건까지 모두 예측할 수는 없다.

좋은 결과가 나왔을 때도 자신의 판단과 시장의 도움을 구분해서 볼 필요가 있다. 상승장에서 여러 종목이 함께 올랐다면 수익이 전적으로 종목을 고른 능력에서 나온 것은 아닐 수 있다. 반대로 시장 전체가 하락한 상황에서 손실을 봤다고 해서 모든 판단이 잘못됐다고 단정할 수도 없다.

특정 종목에 대한 확신이 지나치게 커지면 투자금이 한곳에 몰릴 수 있다. 예상이 빗나갔을 때 받을 충격도 그만큼 커진다. 여러 종목과 자산에 자금을 나누는 방식이 활용되는 이유는 미래를 정확히 맞힐 수 없다는 현실을 받아들이기 위해서다. 분산한다고 손실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지만 하나의 판단이 전체 결과를 좌우할 위험은 줄일 수 있다.

[인포그래픽] 기사 이해를 돕기 위해 AI로 제작한 이미지.
[인포그래픽] 기사 이해를 돕기 위해 AI로 제작한 이미지.

결국 월가 전문가와 원숭이의 대결은 원숭이가 더 똑똑하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전문가가 더 나은 결과를 낸 경우가 많았지만, 무작위 선택도 때때로 치밀한 분석을 앞섰다. 주식시장은 밤새 공부하면 늘 정답을 찾을 수 있는 시험지가 아니었다. 눈 가린 원숭이 비유가 오랫동안 살아남은 이유도 시장 앞에서 자신의 판단을 지나치게 확신하지 말라는 메시지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