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 아프면 약보다 먼저 찾는다”…이란 가정에 꼭 있다는 황금빛 비상식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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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정형 설탕 나바트, 이란의 복통 민간요법
수정처럼 아름다운 황금색 설탕의 정체
배가 살살 아프거나 속이 불편할 때 한국에서는 매실차나 따뜻한 보리차를 찾는 사람이 많다. 이란에서는 이럴 때 자주 등장하는 특별한 음식이 있다. 페르시아어로 ‘나바트(Nabat·نبات)’라고 부르는 결정형 설탕이다.
겉모습은 투명한 수정이나 얼음 조각을 닮았다. 특히 샤프란을 넣은 나바트는 밝은 황금빛을 띠어 장식품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이란 사람들에게 나바트는 단순히 예쁜 사탕이 아니다. 차를 마실 때 곁들이는 전통 감미료이자, 갑자기 배가 불편할 때 어머니와 할머니가 가장 먼저 꺼내는 대표적인 가정식 처방이다.

이란인이 배 아플 때 찾는 ‘차이 나바트’
이란에서는 복통이나 메스꺼움, 소화 불편을 느끼면 따뜻한 홍차에 나바트를 녹여 마시는 경우가 많다. 이를 ‘차이 나바트(Chai Nabat)’, 즉 나바트 차라고 부른다.
만드는 방법은 간단하다. 따뜻하게 우린 홍차에 나바트 한 조각이나 스틱을 넣고 천천히 저어 녹이면 된다. 차가 부담스럽다면 뜨거운 물에 나바트만 녹여 마시기도 한다. 이 음료는 ‘나바트 다그(Nabat Dagh)’라고 불리는데, 직역하면 ‘뜨거운 나바트’라는 뜻이다.
이란 가정에서는 배가 차갑거나 살살 아플 때, 기름진 음식을 먹고 속이 불편할 때 차이 나바트를 찾곤 한다. 메스꺼움이나 설사 때문에 기운이 떨어졌을 때 마시기도 하며, 일부 여성은 생리 중 복부가 불편할 때 따뜻한 나바트 차를 찾는다. 특별한 증상이 없어도 몸을 따뜻하게 하고 달콤한 음료로 마음을 진정시키고 싶을 때 마시는 경우가 있다.
페르시아 문화를 소개하는 매체에서도 차이 나바트는 이란 가정에서 복통이나 생리통이 있을 때 흔히 찾는 민간요법으로 소개된다. 다만 이는 세대를 거쳐 전해진 생활 문화에 가까우며, 나바트 자체가 복통이나 소화기 질환을 치료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설탕인데 왜 수정처럼 생겼을까
나바트의 주재료는 특별한 약초가 아니라 설탕과 물이다. 설탕을 뜨거운 물에 높은 농도로 녹인 뒤 실이나 나무 막대를 넣어두면, 용액이 천천히 식는 동안 설탕 결정이 그 주변에 달라붙어 자란다.
작은 결정들이 며칠에 걸쳐 모이면서 우리가 흔히 보는 설탕보다 훨씬 크고 단단한 결정체가 만들어진다. 학술적으로도 나바트는 설탕 시럽을 다시 결정화해 만든 식품으로 분류된다.
이란에서는 샤프란을 넣어 색과 향을 더한 나바트가 특히 유명하다. 샤프란을 넣지 않은 제품은 투명하거나 흰색에 가깝지만, 샤프란 나바트는 노란색에서 황금색을 띤다. 장미수나 카다멈, 계피 등으로 향을 낸 제품도 찾아볼 수 있다.
막대형부터 덩어리형까지…모양도 다양하다
나바트는 만드는 방법과 먹는 용도에 따라 여러 형태로 판매된다.
가장 익숙한 것은 ‘나바트 추비(Nabat Chubi)’라고 불리는 막대형 제품이다. 나무 막대 주변에 설탕 결정을 키운 것으로, 뜨거운 차에 막대를 넣고 저으면 원하는 만큼 천천히 녹일 수 있다. 손님에게 차를 대접할 때도 사용하기 편하다.
‘샤헤 나바트(Shakhe Nabat)’는 실을 중심으로 결정이 가지처럼 뻗어 있는 전통적인 형태다. 큰 설탕 결정이 한 덩어리로 붙어 있어 필요한 만큼 깨서 차나 뜨거운 물에 넣는다.
이 밖에도 나바트를 작은 조각으로 부수거나 가루로 만든 제품, 한 번에 먹기 좋은 크기로 개별 포장한 제품이 판매된다. 샤프란을 넣지 않은 기본 나바트뿐 아니라 샤프란 특유의 황금빛과 향을 살린 제품도 있다. 카다멈이나 계피, 장미수 등 향신료와 향료를 첨가한 나바트도 볼 수 있다.
일부 이란 가정에서는 설탕을 갈색으로 캐러멜화한 ‘태운 나바트’를 물에 녹여 마시기도 한다. 특히 설사나 심한 복통이 있을 때 이를 찾는 경우가 있지만, 이 역시 의학적 치료가 아니라 전통적으로 이어진 섭취 방식으로 이해해야 한다.

한국에서도 간단하게 마실 수 있다
한국에서 나바트를 구입했다면 별도의 조리 과정 없이 따뜻한 음료에 넣어 먹을 수 있다.
먼저 홍차를 평소보다 연하게 우린 뒤 작은 나바트 조각 하나나 나바트 스틱을 넣는다. 이후 단맛을 확인하면서 천천히 저어 녹이면 된다. 속이 예민해 홍차의 카페인이 부담스럽다면 따뜻한 물이나 카페인이 없는 허브차에 넣어도 된다.
이란에서는 민트나 카다멈을 넣은 차에 나바트를 곁들이기도 한다. 특히 민트는 식후 더부룩함을 느낄 때 차로 마시는 경우가 있어, 따뜻한 민트차에 나바트를 소량 넣으면 이란식 가정 음료와 비슷하게 즐길 수 있다.
다만 너무 뜨거운 음료는 입과 식도에 부담을 줄 수 있으므로 마시기 편한 온도로 식힌 뒤 천천히 섭취하는 편이 좋다.
나바트 차와 경구수분보충액은 다르다
나바트 차를 마신 뒤 편안함을 느끼는 데에는 따뜻한 수분 섭취와 단맛, 휴식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 설탕은 빠르게 흡수되는 에너지원이기 때문에 식사를 제대로 하지 못해 기운이 떨어졌을 때 일시적으로 열량을 보충할 수도 있다.
그러나 나바트는 본질적으로 결정화한 설탕이다. 일반 설탕보다 특별히 영양가가 높거나 위장 질환을 치료한다는 충분한 과학적 근거는 확인되지 않았다.
특히 설사나 구토로 탈수가 발생했을 때는 나바트 물을 경구수분보충액(ORS) 대신 마셔서는 안 된다. 세계보건기구(WHO)가 권고하는 경구수분보충액(ORS)은 깨끗한 물에 포도당과 나트륨 등의 전해질이 적절한 농도로 배합된 용액으로, 탈수 치료에 특화되어 있다. 설탕만 넣은 나바트 물과는 성분과 목적이 다르다.
복통이 심하거나 반복될 때, 혈변이나 고열이 나타날 때, 구토와 설사로 물을 마시기 어려울 때는 민간요법에 의존하지 말고 의료기관을 찾아야 한다.
이란의 차 문화와 가족의 기억이 담긴 음식
나바트는 이란의 차 문화에서도 중요한 자리를 차지한다. 이란에서는 손님이 집을 방문하면 홍차와 함께 설탕이나 과자, 나바트를 내놓는 경우가 많다. 막대형 나바트를 차에 담가 천천히 저어 먹는 모습도 쉽게 볼 수 있다.
따라서 차이 나바트는 단순히 ‘배 아플 때 마시는 설탕물’로만 설명하기 어렵다. 아픈 가족에게 따뜻한 차를 건네고 잠시 쉬게 하는 이란의 돌봄 문화까지 담겨 있기 때문이다.
다만 나바트를 건강식품처럼 매일 많이 먹는 것은 주의해야 한다. WHO는 첨가당 섭취를 하루 총섭취 열량의 10% 미만으로 제한하고, 가능하면 5% 미만으로 줄일 것을 권고한다. 나바트 역시 일반 설탕과 같은 첨가당에 해당한다. 당뇨병이나 혈당 관리가 필요한 사람은 특히 섭취량을 조절해야 한다.
나바트 한 조각이 모든 복통을 낫게 해주는 약은 아니다. 하지만 따뜻한 차 한 잔으로 아픈 사람을 돌보는 방식이라는 점에서, 한국의 매실차나 숭늉처럼 한 나라의 생활과 가족 문화를 보여주는 흥미로운 음식임은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