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키퍼인데 최전방 ‘스트라이커’로 투입…어제자 한국축구서 벌어진 최악의 사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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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키퍼가 스트라이커로?…20살 신예의 충격 데뷔전

프로 데뷔전을 치르는 20살 골키퍼가 필드 유니폼도 없이 동료의 유니폼을 빌려 입고 최전방 공격수로 그라운드를 밟았다. 한국 축구에서 좀처럼 보기 힘든 장면이 코리아컵 무대에서 연출됐다. 이정효 감독이 이끄는 수원 삼성이 K3리그 부산교통공사에 연장 혈투 끝에 무릎을 꿇으며 코리아컵 여정을 조기에 마감했다.

명가 재건 임무를 안고 장기 계약한 이정효 수원삼성 감독. / 뉴스1
명가 재건 임무를 안고 장기 계약한 이정효 수원삼성 감독. / 뉴스1

수원 삼성은 15일 오후 7시 양산종합운동장에서 열린 2026-2027 하나은행 코리아컵 64강전에서 부산교통공사에 1-2로 패했다. 전반 11분 페신의 선제골로 앞서갔으나 후반 16분 부산교통공사 외국인 공격수 얀에게 동점골을 내줬고, 연장 전반 15분 김지호의 자책골로 승부가 갈렸다. K리그2 승격을 노리는 수원이 K3리그 팀에 덜미를 잡혔다.

시저스킥에서 시작된 선제골…전반은 수원의 흐름이었다

경기 초반 분위기는 나쁘지 않았다. 수원은 전반 11분 코너킥 상황에서 리드를 잡았다. 박스 외곽에 있던 고승범이 시도한 시저스킥이 정확히 맞지 않았지만, 골문 앞으로 흐른 공을 페신이 머리로 밀어 넣으며 스코어를 갈랐다.

사기가 오른 수원은 전반 19분 추가골 기회도 만들었다. 2선에서 박스 왼쪽으로 침투 패스가 연결됐고 한현서가 오른발 발리슛을 시도했으나 공은 크로스바 위로 벗어났다. 전반 41분에는 고승범이 먼 거리에서 오른발 감아차기 프리킥을 시도했지만 부산교통공사 골키퍼 선방에 막혔다. 전반 추가시간에도 김도연이 박스 왼쪽 공간에서 오른발 감아차기 슈팅을 날리며 공세를 이어갔다.

다만 불안 요소는 이미 전반부터 감지됐다. 부산교통공사 공격수 얀은 전반 39분 박스 외곽에서 수원 수비수 두 명을 제친 뒤 강력한 왼발 슈팅을 시도하며 존재감을 드러냈다. 전반 30분에는 이윤재의 먼 거리 슈팅이 골문을 살짝 비껴가기도 했다. 부산교통공사는 K3리그에서 경기력과 결과를 모두 가져가는 강팀이었고, 한 골 차 리드는 언제든 뒤집힐 수 있는 스코어였다.

이정효 감독. 수원삼성 팬들이 열정적인 응원을 이 감독에게 보내고 있는 모습. / 뉴스1
이정효 감독. 수원삼성 팬들이 열정적인 응원을 이 감독에게 보내고 있는 모습. / 뉴스1

양형모의 치명적 실수…얀에게 헌납한 동점골

후반 들어 우려는 현실이 됐다. 얀은 후반 14분 오른쪽 측면에서 넘어온 크로스를 다이빙 헤더슛으로 연결하며 수원 골문을 정조준했다. 그리고 2분 뒤, 승부의 분수령이 된 장면이 나왔다.

수원 골키퍼 양형모가 상대의 전방 압박에 실수를 범했고, 얀은 이 틈을 놓치지 않았다. 볼을 탈취한 공다휘의 패스를 받은 얀이 빈 골문에 공을 가볍게 밀어 넣으며 승부를 원점으로 돌렸다. 골키퍼의 어이없는 판단 미스가 곧바로 실점으로 이어진 것이다.

기세를 잡은 부산교통공사는 역전까지 노렸다. 후반 28분 오현교의 강렬한 왼발 슛이 옆그물을 때렸고, 후반 43분에는 박스 외곽에서 절묘한 연계 플레이로 찬스를 잡은 이윤재의 왼발 강슛을 양형모가 가까스로 막아냈다. 후반 추가시간 5분에도 골문 앞에서 얀이 결정적인 기회를 잡았으나 마무리에 실패했다. 90분 안에 승부를 내지 못한 양 팀은 결국 연장전에 돌입했다.

골키퍼가 스트라이커로…20살 이경준의 잔인한 데뷔전

연장전에서 이날 경기의 가장 충격적인 장면이 나왔다. 수원은 연장 전반 4분께 부상을 입은 박대원의 공백과 극도로 지친 김성주의 체력 문제가 겹치면서 벤치에 남은 유일한 카드였던 골키퍼 이경준을 필드 플레이어로 투입했다. 포지션은 다름 아닌 최전방 스트라이커였다.

골키퍼이지만 최전방 스트라이커로 교체 투입되며 프로 데뷔한 이경준. 수원삼성과 부산교통공사의 코리아컵 경기에서 나온 장면. / 유튜브 'KFATV Live'
골키퍼이지만 최전방 스트라이커로 교체 투입되며 프로 데뷔한 이경준. 수원삼성과 부산교통공사의 코리아컵 경기에서 나온 장면. / 유튜브 'KFATV Live'

이경준은 본래 골키퍼이기에 필드 유니폼 자체가 없었다. 결국 부상으로 아웃된 박대원의 유니폼을 대신 입고 피치를 밟았다. 더 뼈아픈 대목은 이 경기가 이경준의 1군 데뷔전이었다는 점이다. 이경준은 매탄고 출신의 수원 성골유스이자 연령별 대표팀에서 각광받아 온 전도유망한 골키퍼다. 그런 유망주의 프로 첫 무대가 골문이 아닌 최전방 공격수 자리였다.

결과는 예상대로였다. 골키퍼가 하루아침에 스트라이커 역할을 소화할 수는 없었다. 이경준은 제대로 위치조차 잡지 못했고, 수원은 점유율만 가져갈 뿐 답답한 공격을 반복했다. 오히려 얀을 앞세운 부산교통공사의 공격이 더 위력적이었다.

그리고 연장 전반 15분 승부에 마침표가 찍혔다. 부산교통공사 양정운의 오른쪽 측면 크로스가 골문 앞에서 수비하던 수원 김지호의 몸에 맞고 그대로 골문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자책골이었다. 부산교통공사는 이 득점을 끝까지 지켜내며 수원을 무너뜨리고 32강에 진출했다.

벤치에 후보 6명뿐…왜 교체 카드가 없었나

왜 수원이 골키퍼를 공격수로 쓸 수밖에 없는 지경까지 몰렸을까. 답은 이 감독의 원정 명단 구성에 있다.

수원삼성 이경준. 골키퍼가 최전방 스트라이커로 교체 투입되는  최악의 사태 발생. / 유튜브 'KFATV Live'
수원삼성 이경준. 골키퍼가 최전방 스트라이커로 교체 투입되는 최악의 사태 발생. / 유튜브 'KFATV Live'

수원은 부산 원정에 나서면서 대대적인 로테이션을 가동했다. 김성주, 정동윤, 모경빈, 김지성, 양형모 등 1군 출전 시간이 많지 않은 선수들을 선발로 내세웠고, 이적생 한현서도 선발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일류첸코, 김도연, 고승범 같은 주전급 자원도 함께 나서긴 했지만, 문제는 벤치였다.

수원이 데려온 후보는 골키퍼 이경준을 포함해 르본, 강성진, 김지호, 박지원, 박대원까지 단 6명이었다. 규정상 벤치 명단은 9명까지 채울 수 있었지만 이 감독은 최소 인원만 데리고 원정길에 올랐다. 코리아컵은 리그와 마찬가지로 5명 교체가 가능하고, 연장에 돌입하면 1명을 추가로 바꿀 수 있다.

수원은 후반 들어 박대원을 시작으로 강성진, 르본, 김지호를 차례로 투입했고, 박대원이 부상으로 쓰러지자 박지원까지 넣으며 5장의 교체 카드를 모두 소진했다. 연장에서 추가 교체가 가능해졌을 때 벤치에 남은 필드 플레이어는 단 한 명도 없었다. 남은 선수는 골키퍼 이경준뿐이었고, 극도로 지친 김성주를 빼기 위해서는 골키퍼를 필드에 세우는 것 외에 선택지가 없었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고는 하나, 그 상황 자체를 만든 것은 6명만 데려온 명단 구성이었다.

부산교통공사 축구단에게 2-1로  패한 수원삼성. / 유튜브 'KFATV Live''
부산교통공사 축구단에게 2-1로 패한 수원삼성. / 유튜브 'KFATV Live''

'이정효호'를 향한 시선…신뢰에서 의심으로

물론 전략 자체가 완전히 틀렸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시각도 있다. 승격을 노리는 수원 입장에서 K리그2가 최우선 과제이고, 코리아컵에서 높이 올라간다고 해도 실익이 크지 않은 만큼 리그에 집중하는 것이 합리적인 선택이라는 논리다. 로테이션 가동 역시 그 연장선에 있었다.

그러나 결과가 모든 것을 뒤집었다. K3리그 팀에게 손쉬운 승리가 예상됐던 경기에서 연장까지 끌려간 끝에 패했고, 그 과정에서 골키퍼가 스트라이커로 뛰는 장면까지 나왔다. 후보를 6명만 데려간 결정은 결과적으로 최악의 선택이 됐다.

이경준 개인에게 남은 상처도 가볍지 않다. 연령별 대표팀을 거치며 성장해 온 20살 신예 골키퍼의 프로 데뷔전이 낯선 포지션에서, 남의 유니폼을 입은 채 치러졌다. 불가피한 상황이었다 해도 유망주의 커리어 첫 페이지에 새겨진 기록은 지워지지 않는다.

수원의 이번 패배는 단순한 컵대회 탈락 그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그동안 이 감독에게 신뢰를 보내던 수원 팬들 사이에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후반기 이정효호를 바라보는 시선은 이제 기대보다 의심에 가까워졌다. 수원이 남은 K리그2 일정에서 어떤 성적표를 받아드느냐에 따라 이날 양산에서의 패배는 승격을 위한 쓴 약이 될 수도, 시즌 전체를 흔든 균열의 시작점이 될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