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성·이영표 아니다…“한국 축구는 망했다” 돌직구 날린 ‘국대 출신’ 정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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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기만 반복하는 낡은 유소년 시스템, 한국 축구의 미래를 위협하다
손흥민·김민재 다음이 없다, 끊기는 유럽 진출의 악순환

“한국 축구는 망했다. 정말이다. 진짜 심각하다.”

대한민국 축구대표팀 손흥민과 구자철이 2019년 1월 16일 오후(현지시간) 아랍에미리트연합(UAE) 아부다비 알냐얀 스타디움에서 열린 2019 아시아축구연맹(AFC) 아시안컵 C조 조별리그 3차전 대한민국과 중국의 경기에서 교체하고 있다 / 뉴스1
대한민국 축구대표팀 손흥민과 구자철이 2019년 1월 16일 오후(현지시간) 아랍에미리트연합(UAE) 아부다비 알냐얀 스타디움에서 열린 2019 아시아축구연맹(AFC) 아시안컵 C조 조별리그 3차전 대한민국과 중국의 경기에서 교체하고 있다 / 뉴스1

대한축구협회(KFA)의 행정 난맥상과 낡은 유소년 육성 시스템을 향해 거침없는 작심 발언을 쏟아낸 인물은 박지성도, 이영표도 아니었다. 국가대표 출신이자 은퇴 후 축구 행정가로 변신한 구자철이었다.

구자철은 손흥민과 김민재, 이강인 등 일부 스타 선수들의 활약에 가려진 한국 축구의 구조적인 위기를 하나씩 짚었다. 지금 당장 변화를 시작하지 않으면 5년, 10년 뒤에는 상황이 더욱 심각해질 것이라는 경고도 던졌다.

“일은 안 하면서 권력만”…축구협회 기득권 직격

2025년 9월 14일 오후 서울 마포구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2025 넥슨 아이콘매치' FC 스피어와 실드 유나이티드의 경기, FC스피어 구자철이 수비를 하고 있다 / 뉴스1
2025년 9월 14일 오후 서울 마포구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2025 넥슨 아이콘매치' FC 스피어와 실드 유나이티드의 경기, FC스피어 구자철이 수비를 하고 있다 / 뉴스1

스포츠 채널 SPOTV의 프로그램 ‘스포 타임머신’은 19일 구자철과 진행한 심층 인터뷰를 공개했다.

구자철은 현재 제주SK FC 테크니컬 파트에서 활동하는 동시에 바이에른 뮌헨과 로스앤젤레스FC가 설립한 합작법인 R&G의 아시아 총괄을 맡고 있다. 선수 시절 독일 분데스리가를 경험한 데 이어 은퇴 후에는 국내외 유소년 시스템과 축구 행정을 직접 살펴보고 있다.

구자철이 가장 먼저 겨냥한 것은 협회의 후진적인 행정 시스템이었다. 그는 “지난 10년, 20년간 한국 축구의 시스템 선진화는 10% 수준에 불과한 반면 일본은 90%에서 110%를 달성했다”며 한일 축구 행정의 격차를 지적했다.

쇄신을 가로막는 근본적인 원인으로는 협회 내부의 기득권을 꼽았다. 구자철은 “대한축구협회라는 거대한 사단법인의 기득권을 잃고 싶은 사람은 없을 것”이라며 “기득권을 누리려면 그만큼 확실하게 일을 해야 하는데, 일은 하지 않으면서 권력만 쥐고 있으니 내부에서 목소리를 내도 수용되지 않는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내부에서 문제를 해결할 능력이 없다면 외부 전문가라도 적극적으로 영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스스로 해결할 능력이 없다면 쓸데없는 곳에 예산을 낭비하지 말고 유럽에서 검증된 인재를 데려와야 한다”고 일침을 가했다.

손흥민·김민재·이강인 뒤가 없다…끊기는 유럽 진출

대한민국 축구국가대표팀 손흥민과 이강인 / 뉴스1
대한민국 축구국가대표팀 손흥민과 이강인 / 뉴스1

구자철은 손흥민과 김민재, 이강인 등 세계적인 무대에서 뛰는 스타 선수들의 존재가 한국 축구의 위기를 가리고 있다고 진단했다. 눈앞에 보이는 일부 대표 선수의 활약만으로 한국 축구의 미래를 낙관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정작 이들의 뒤를 이어 유럽 무대에 진출할 선수층은 갈수록 얇아지고 있다고 우려했다.

구자철은 “당장 다음 시즌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에 진출할 선수가 아예 없고, 분데스리가행도 끊기고 있다”며 “현재 몇몇 핵심 선수들로 겨우 버티고 있는 심각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대표팀에 월드클래스 선수가 있다는 사실과 선수 육성 시스템이 정상적으로 작동하는지는 별개의 문제라는 지적이다. 손흥민과 김민재, 이강인 같은 선수들이 계속해서 자연스럽게 배출되는 구조가 아니라, 소수의 특별한 선수에게만 의존하고 있다는 의미다.

구자철은 지난 20년 동안 누적된 행정 공백 때문에 현재의 개혁 작업이 ‘무(無)에서 유(有)’를 만드는 수준도 아니라고 설명했다. 이미 경쟁국보다 뒤처진 상태에서 다시 출발해야 하는 만큼 “‘마이너스에서 유’를 만들어야 하는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기본기만 시키다 망친다”…유소년 시스템에 일침

구자철 해설위원이 2022년 11월 18일 오후(현지시간) 카타르 도하 알 에글라 트레이닝센터에서 열린 대한민국 축구대표팀 선수들이 훈련에서 생각에 잠겨 있다 / 뉴스1
구자철 해설위원이 2022년 11월 18일 오후(현지시간) 카타르 도하 알 에글라 트레이닝센터에서 열린 대한민국 축구대표팀 선수들이 훈련에서 생각에 잠겨 있다 / 뉴스1

구자철이 가장 답답함을 드러낸 부분은 한국의 낡은 유소년 훈련 방식이었다. 그는 “‘유소년은 무조건 기본기’라는 프레임이 한국 축구를 철저히 망치고 있다”고 직격했다. 기본기가 중요하지 않다는 의미가 아니라 공을 다루는 기술만 반복하고, 실제 경기에서 필요한 상황 판단과 공간 인식을 제대로 가르치지 않는 훈련이 문제라는 것이다.

구자철은 독일의 사례를 들며 “독일은 7세 아이들에게도 상황 인식을 통한 판단력을 코칭한다”고 설명했다. 어린 시절부터 상황 판단을 훈련받은 선수와 기본기만 반복한 선수의 격차는 성인이 된 뒤 걷잡을 수 없이 벌어진다고 강조했다.

한국 선수들의 가장 큰 약점으로는 느린 판단 속도를 지목했다. 그는 “우리나라는 지금 10년 동안 보면 선수들의 판단력이 너무 안 좋고, 너무 느리고, 판단이 경기 속도를 따라가지 못한다”고 말했다. 이어 “다들 레슨을 가면 기본기만 하기 때문이다. 똥인지 된장인지, 뭘 해야 하는지를 모른다”고 답답함을 토로했다.

그의 발언은 축구계 안팎에서 빠르게 확산했다. 스페인 발렌시아 유소년 시스템에서 성장한 이강인도 해당 인터뷰 내용을 자신의 인스타그램 스토리에 공유하며 공감을 나타냈다.

“방송에 다 나가도 된다”…구자철이 던진 경고

박지성 K-축구혁신위원회 공동위원장이 지난 13일 오후 서울시 종로구 국립현대미술관 사무동에서 열린 K-축구 혁신위원회 2차 회의를 마친 뒤 취재진의 질문을 받고 있다 / 뉴스1
박지성 K-축구혁신위원회 공동위원장이 지난 13일 오후 서울시 종로구 국립현대미술관 사무동에서 열린 K-축구 혁신위원회 2차 회의를 마친 뒤 취재진의 질문을 받고 있다 / 뉴스1

구자철은 자신의 발언 수위를 의식한 듯하면서도 물러서지 않았다. 그는 “이 말은 방송에 다 나가도 된다”며 한국 축구를 향한 비판에 책임을 지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그러면서 “한국 축구는 망했다. 정말이다. 진짜 심각하다”고 재차 강조했다. 이어 “5년 후, 10년 후면 더 안 좋아질 것이다. 지금부터 다시 10년 후를 준비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구자철은 단순히 외부에서 협회를 비판하는 데 그치지 않겠다는 뜻도 밝혔다. 그는 “축구 선수 이후의 행정가로서도 한국 축구의 뜻깊은 사람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며 직접 변화에 참여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이번 발언은 북중미 월드컵 이후 한국 축구가 대대적인 쇄신 작업에 착수한 시점에 나왔다는 점에서도 눈길을 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박지성과 최휘영 장관을 공동위원장으로 한 ‘K-축구 혁신위원회’를 출범시켰다. 이영표와 박주호 등도 참여해 대표팀 운영과 축구 행정 전반의 개편을 논의하고 있다.

그러나 일부 지역축구협회 관계자들이 혁신위원들의 전문성을 문제 삼는 등 기존 축구계 내부에서는 벌써 반발이 나오고 있다. 선수와 행정가의 시선으로 국내외 시스템을 모두 경험한 구자철의 작심 발언은 단순한 ‘쓴소리’를 넘어 한국 축구의 미래를 향한 경고에 가깝다.

박지성·이영표가 전면에 나선 혁신 작업에 구자철의 문제의식까지 더해지면서 실제 축구협회와 유소년 시스템의 변화로 이어질지 관심이 쏠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