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모리야스, 한국 대표팀 감독으로 데려오자'…한국축구 레전드의 파격 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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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우리가 자존심을 챙길 때가 아닌 것 같다”
2026 북중미 월드컵에서 A조 1승 2패, 승점 3으로 32강 진출에 실패한 한국 축구대표팀. 홍명보 감독이 조별리그 탈락 하루 만인 지난달 29일 사퇴를 선언하면서 차기 사령탑 선임 문제가 한국 축구의 최대 과제로 떠올랐다. 48개국 확대 체제에서 최종 34위로 대회를 마감한 결과는 단순한 성적 부진을 넘어 한국 축구의 구조적 위기를 다시금 수면 위로 끌어올렸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 축구 레전드 골키퍼 김영광이 파격적인 제안을 꺼냈다. 차기 대표팀 감독으로 일본 대표팀을 이끄는 모리야스 하지메 감독을 데려와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자존심 내려놓아야 할 때"…김영광의 직격탄
김영광은 최근 유튜브 채널 '피지컬갤러리'에 출연해 축구 크리에이터 '축구친구', '새벽의 축구 전문가' 등과 한국 축구의 현실과 발전 방향을 놓고 토론을 벌였다. MC 김계란이 "현실적 조건을 모두 떼고 아무나 데려올 수 있다면 누구를 고르겠느냐"고 묻자, 김영광은 모리야스 하지메를 지목했다.
그는 먼저 "개인적인 생각"이라는 전제를 달았다. 그런 다음 "일본은 100년을 생각하면서 축구를 만들어 왔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었고, 그 시행착오를 직접 경험한 감독이 모리야스다. 연령별 대표팀과 청소년 대표팀을 거치면서 어린 선수들을 다뤘고, 어떤 방식이 통하고 어떤 방식이 유럽 무대에서 통하지 않는지도 모두 시도해봤을 것"이라고 말했다.

감정적으로도 쉬운 발언이 아님을 스스로 인정했다. 김영광은 "나는 일본의 역사적인 부분을 잘 알기 때문에 일본을 정말 싫어한다. 과거를 생각하면 아직도 화가 난다"며 "연령별 대표팀 시절 일본과 열 차례 정도 맞붙었는데, 단 한 번밖에 패하지 않았다. 그만큼 일본을 만나면 반드시 이겨야 한다는 인식이 강했다"고 털어놨다.
그럼에도 모리야스를 선택한 이유는 분명했다. "일본 축구가 그동안 겪은 실패와 고난 속에서 축적한 모든 데이터가 모리야스 감독의 머릿속에 있다. 그 좋은 것들을 우리가 가져와서 배웠으면 좋겠다. 지금은 우리가 자존심을 챙길 때가 아닌 것 같다"고 강조했다.
현실적으로 모리야스 감독이 한국 대표팀 사령탑 후보가 될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은 상황이다. 그럼에도 한국 레전드의 입에서 '일본 현직 감독을 데려오자'는 말이 나왔다는 것 자체가, 현재 한국 축구가 얼마나 절박한 상황에 처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모리야스는 그는 대체 누구인가…'고졸 비엘리트'가 일본 축구를 바꿨다
1968년생인 모리야스는 화려한 이력과는 거리가 먼 지도자다. 1987년 나가사키일본대학고교를 졸업하고 실업팀 '마쓰다SC'에 입단했다. 낮에는 물류창고에서 일하며 선수 생활을 이어간 그는 1993년 J리그 출범 이후 '산프레체 히로시마' 소속으로 프로 선수가 됐고, 2003년 은퇴할 때까지 A매치 35경기에 출전해 1골을 기록했다. 월드컵 출전 경험은 없다.
지도자로서의 전환점은 2012년이었다. 친정팀 산프레체 히로시마의 지휘봉을 잡은 그는 J리그를 3회 우승(2012, 2013, 2015년)하며 지도력을 인정받았다. 2017년 히로시마 감독직을 내려놓은 뒤 그해 10월 일본 U-23 대표팀 사령탑으로 선임됐고, 2018년 7월부터는 성인 대표팀 감독을 겸임했다. 이후 A대표팀 단독 감독으로서 지금까지 9년째 팀을 이끌고 있다.

일본 축구계에는 와세다대와 쓰쿠바대 출신이 협회와 대표팀 주요 자리를 독점하는 이른바 '가쿠바쓰(학벌)' 문제가 뿌리 깊었다. 고졸 출신인 모리야스는 그 어느 파벌에도 속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JFA가 그를 낙점한 기준은 데이터와 실적뿐이었다. 경기 중 수첩에 끊임없이 기록을 남기는 습관, 선수들과 대화로 전술을 고민하는 리더십이 그의 트레이드마크가 됐다. 모리야스 체제의 일본은 A대표팀 감독 부임 이후 유럽팀 상대 7승 1무를 기록하며 무패 행진을 이어갔고, 독일·스페인·잉글랜드 등 우승 경험국들을 연파했다.
이번 북중미 월드컵 조별리그에서 일본은 1승 2무로 32강에 안착했다. 모리야스 지휘봉 아래서 일본이 '아시아 최강'을 넘어 우승 다크호스로 불리는 배경에는 9년간 쌓인 데이터와 시스템의 힘이 있다.

한·일 격차의 5가지 구조적 원인
김영광의 주장이 설득력을 얻는 이유는 단순한 감정적 호소가 아니라, 실제로 한일 격차가 수치와 구조로 증명되고 있기 때문이다.
첫째. 100년 로드맵 vs 단기 임기응변
일본축구협회(JFA)는 1990년대 초반 수립한 장기 계획 '백년구상(百年構想)'을 협회장이 바뀌어도 일관되게 추진해 왔다. 유소년 육성, 지도자 교육, 성인 대표팀의 전술 철학이 하나의 시스템 안에서 맞물린다. 연령별 대표팀에서 쌓인 전술 언어가 성인 대표팀에 그대로 이어지는 구조다.
반면 한국은 대표팀 감독이 교체될 때마다 축구 스타일이 통째로 뒤바뀌는 일이 반복됐다. 빌드업 축구를 지향하다가 선수비 후역습으로 급선회하거나, 감독 개인의 철학에 따라 선수 활용 방식이 달라졌다. 장기 비전 없이 개별 감독의 역량에만 의존하는 행정 구조가 격차를 누적시켰다.

둘째. 유소년 저변의 두께
일본은 클럽 유스와 학교 축구의 공존 구조를 구축했다. 매년 수만 명의 관중이 몰리는 고교 선수권 대회를 통해 스토리와 선수 발굴이 동시에 이뤄지고, 촘촘한 하부 리그 시스템이 그물망 역할을 한다.
한국은 엘리트 학원 축구 시스템이 해체되는 과정에서 이를 대체할 클럽 시스템이 안착하지 못했다. 인구 감소 추세와 맞물려 축구를 시작하는 유소년 인구 자체가 줄었고, 체계적인 스카우팅 체계 부재로 유망주 발굴 경로가 좁아진 상황이다.
셋째. 유럽파의 두께가 다르다
이번 북중미 월드컵에 나선 일본 대표팀 26명 가운데 23명이 유럽파였다. 일본 선수들의 유럽 진출 규모는 대표팀 급만 따져도 100명을 넘는다. 일본 자본이 2018년 벨기에 구단 신트트라위던 VV를 인수해 유럽 진출 전초기지로 활용한 전략이 핵심 동력이었다. 도미야스(아스널), 엔도 와타루(리버풀) 등이 이 루트를 통해 빅클럽으로 이어졌다. 2002년 한·일 월드컵 당시 일본을 지휘했던 필립 트루시에 감독은 "유럽 1~2부 리그에 최소 30명이 있어야 8강을 노릴 수 있다"고 했는데, 일본은 그 수치를 이미 세 배 이상 넘어섰다.
한국은 손흥민(토트넘), 김민재(뮌헨), 이강인(PSG)처럼 세계 최상위 수준의 선수를 배출하는 데는 성공했다. 그러나 그 바로 아래 계층의 두께가 얇다. 병역 문제로 만 26세 전 귀국이 사실상 불가피한 구조와 K리그의 상대적으로 높은 연봉 조건이 중소 유럽 리그 도전을 막는 걸림돌로 작용해 왔다.

넷째. 전술 아이덴티티의 유무
일본 축구는 자국의 신체 조건과 문화적 특성을 반영해 '패스를 통한 주도권 장악과 기술 축구'라는 정체성, 이른바 '재팬스 웨이(Japan's Way)'를 수립했다. 연령별부터 성인까지 동일한 전술 언어를 공유하기 때문에 청소년 대표에서 성인 대표로 올라가는 선수가 전술 적응에 시간을 낭비하지 않는다.
한국 축구는 '투혼'과 '강한 피지컬', '빠른 측면 역습'이 전통적인 강점이었지만, 현대 축구 트렌드 속에서 이 색깔이 희미해졌다. 감독이 바뀔 때마다 추구하는 축구 스타일이 달라지면서 협회와 지도자, 선수들 사이에서 공유되는 전술적 지향점이 사실상 없는 상태다.
다섯째. 리그 자생력과 행정 전문성
J리그는 지역 밀착 마케팅과 재정 건전성 규정을 통해 대기업 지원 없이도 구단이 자생할 수 있는 토대를 만들었다. DAZN과의 대형 중계권 계약이 리그 전체 수익 구조를 키웠고, 그 재원이 유소년 투자와 인프라 확충으로 흘러 들어가는 선순환이 이뤄졌다. 1부부터 3부까지 승강제가 촘촘하게 연결돼 있어 선수 발굴 경로가 다양하다.
K리그는 여전히 모기업이나 지자체 예산에 의존하는 구단이 많아 재정 기반이 취약하다. 리그의 자생력이 떨어지면 우수 선수 보유와 인프라 확장에 한계가 생긴다. 여기에 감독 선임 과정에서 반복된 절차 논란과 협회 행정의 불투명성이 더해지면서, 구조 개선의 출발점조차 잡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