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왕은 절대 안돼" 일본 '36촌 일반인' 찾아 왕위 자격 부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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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0년 전 먼 친척에게 왕위 개방, 왕녀는 여전히 배제된 일본 황실
여성 일왕 70% 지지에도 보수 전통 고집하는 일본 정치권의 모순

일본 정치권이 여성 왕족의 왕위 계승 허용 논의를 미룬 채 약 600년 전 같은 조상을 둔 옛 왕족 후손에게 왕위 계승 가능성을 열어주는 법안을 통과시키면서 논란이 커지고 있다.

일본 국회 참의원은 지난 17일 본회의를 열고 왕족 수 감소 문제에 대응하기 위한 황실전범 개정안을 최종 가결했다. 이번 개정안은 왕실의 양자로 들어온 옛 왕족의 남계 남성에게서 태어난 아들에게 왕위 계승 자격을 인정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에 따라 일본은 왕족 수를 유지하기 위해 과거 황족 신분에서 일반인으로 전환된 옛 왕실 후손을 다시 황실 구성원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마련하게 됐다. 황실전범 본칙이 개정된 것은 1949년 이후 처음이다.

유튜브 '채널A 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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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개정안의 적용 대상은 '구 궁가'로 불리는 11개 옛 황족 가문이다. 이들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연합군 최고사령부(GHQ)의 점령 정책에 따라 1947년 황족 신분을 잃고 일반인이 됐다. 이후 수십 년 동안 평범한 시민으로 살아왔지만 이번 법 개정으로 일부 후손이 다시 황실과 연결될 가능성이 생겼다.

현재 양자로 들어갈 수 있는 옛 왕족의 남계 남성은 약 6명 정도로 알려졌다. 이들은 나루히토 일왕과 약 600년 전 공통 조상을 둔 36~38촌 관계다. 촌수로만 보면 매우 먼 친척이지만 일본 황실은 부계 혈통을 중시하는 남계 계승 원칙을 유지하고 있어 왕위 계승 대상이 될 수 있다.

가장 큰 논란은 나루히토 일왕의 외동딸인 아이코 공주가 여전히 왕위를 물려받을 수 없다는 점이다. 현행 황실전범은 남성만이 아니라 부계 혈통을 이어받은 남성인 '남계 남성'만 왕위를 계승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여성인 아이코 공주는 왕실 직계 혈통임에도 왕위 계승권이 없다.

'남계'와 '남성'은 다른 개념이다. 남성은 단순히 성별이 남자인 사람을 뜻하지만, 남계는 부계 혈통이 끊기지 않고 이어지는 혈통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여성 일왕의 아들은 남성이지만 부계 혈통이 이어지지 않기 때문에 일본 황실에서는 남계로 인정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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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일본의 왕위 계승 순위는 나루히토 일왕의 동생인 후미히토 왕세제, 후미히토의 아들인 히사히토 친왕, 나루히토 일왕의 숙부인 히타치노미야 마사히토 친왕 순이다. 그러나 왕족 수가 계속 줄어들면서 장기적으로 왕위 계승 체계 유지가 어려울 수 있다는 우려가 꾸준히 제기돼 왔다.

일본에서는 여성 일왕 허용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꾸준히 커지고 있다. 마이니치신문과 아사히신문이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는 여성 일왕을 허용해야 한다는 응답이 70%를 넘었다. 일본 국민 상당수가 왕위 계승 자격을 남성에게만 제한하는 현행 제도를 바꿔야 한다고 생각하는 셈이다.

나루히토 일왕 역시 최근 공개석상에서 "국민의 이해를 얻는 논의가 이뤄지길 바란다"고 언급하며 정치권의 논의를 우회적으로 촉구한 바 있다. 일본 언론은 이를 여성 일왕 논의를 외면하는 정치권에 대한 사실상의 메시지로 해석하기도 했다.

국제사회에서도 비판은 이어지고 있다. 유엔 여성차별철폐위원회(CEDAW)는 2024년 일본 황실전범이 남성에게만 왕위 계승권을 인정하는 것은 여성차별철폐협약 취지와 양립하기 어렵다며 법 개정을 권고했다.

그럼에도 일본 정치권은 여성 일왕 문제는 이번 개정안에서 제외했다. 보수 진영은 약 2600년간 이어져 온 남계 계승 전통을 유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일본 황실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세습 왕조라는 상징성을 유지하기 위해 부계 혈통을 반드시 이어가야 한다는 논리다.

반면 진보 진영과 일부 전문가들은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을 내놓고 있다. 수백 년 전 갈라져 일반인으로 살아온 옛 왕족 후손을 다시 황실로 편입하는 것보다, 국민적 지지가 높은 여성 일왕 제도를 도입하는 것이 시대 변화에 맞는 해법이라는 주장이다.

영국과 스웨덴, 네덜란드, 벨기에, 노르웨이, 덴마크 등 유럽의 주요 왕실은 이미 성별과 관계없이 첫째 자녀에게 왕위를 물려주는 '절대적 장자 상속제'를 채택하고 있다. 과거에는 남성이 우선이었지만 법을 개정해 성평등 원칙을 반영했다. 일본은 주요 입헌군주국 가운데 여전히 남계 남성만 왕위 계승을 허용하는 거의 유일한 국가로 남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