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유독 센 ‘12.5%’ 관세 때린 미국…이유가 어처구니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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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제노동 수입 차단 제도 미흡 이유로 12.5% 관세 부과
자동차·철강 등 기존 품목별 관세 대상은 이번 조치에서 제외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한국을 포함한 60개 교역국에 새로운 관세를 부과하며 글로벌 관세 장벽을 다시 세웠다.

AP통신과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23일(현지시간) 미국 무역대표부(USTR)는 강제노동 제품의 유통을 제대로 차단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60개 국가와 경제권에 10~12.5%의 추가 관세를 부과한다고 밝혔다. 새 관세는 미국 동부시간 기준 24일 오전 0시 1분(한국시간 24일 오후 1시 1분)부터 발효된다. 한국에는 상대적으로 높은 12.5%의 관세율이 적용된다.
이번 조치는 기존에 적용하던 10% 임시 관세가 종료되는 시점에 맞춰 시행됐다. 트럼프 행정부는 임시 관세가 끝나는 즉시 새 관세를 적용해 사실상 관세 공백이 발생하지 않도록 했다.
관세 대상이 된 60개국은 미국 전체 수입의 약 99%를 차지한다. 한국과 일본을 비롯해 중국과 호주, 인도, 캐나다 등이 포함됐다. 유럽연합과 영국도 조사 대상에 이름을 올렸다.
미국은 강제노동으로 생산된 상품의 수입을 금지하는 제도를 갖추고 이를 실제로 집행하는지에 따라 관세율을 구분했다. 관련 제도나 집행이 상대적으로 낫다고 평가된 국가에는 10%를 적용했다. 제도 자체가 없거나 미국이 보기에 충분하지 않은 국가에는 12.5%를 부과했다.
한국은 일본과 중국 등과 함께 강제노동 제품의 수입을 금지하고 이를 실효적으로 집행할 제도가 충분하지 않은 국가로 분류됐다. USTR은 지난 6월 발표한 조사 결과에서 한국을 포함한 54개 경제권이 강제노동 생산품의 수입을 금지하는 제도를 제대로 마련하거나 집행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캐나다와 유럽연합, 멕시코 등 6개 경제권은 금지 제도는 갖췄지만 집행이 미흡한 곳으로 구분했다.
‘강제노동 관세’는 무엇인가
강제노동은 처벌이나 위협을 앞세워 당사자의 자발적인 동의 없이 일을 시키는 행위를 말한다. 낮은 임금을 주는 수준을 넘어 노동자가 일터를 자유롭게 떠날 수 없거나 빚과 신분증 압수 등을 통해 노동을 강요받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이번 관세는 한국산 제품이 강제노동으로 만들어졌다는 의미는 아니다. 미국이 문제 삼은 것은 각국의 수입 관리 제도다. 미국 정부는 다른 나라들이 강제노동으로 생산된 제품을 자국 시장에서 충분히 차단하지 않으면 해당 제품이 국제 시장에서 낮은 가격으로 유통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그 결과 미국 기업이 강제노동과 관련된 값싼 제품과 불공정한 경쟁을 해야 한다는 것이 트럼프 행정부의 논리다. USTR은 강제노동 생산품의 유통이 정상적인 기업의 수익성을 떨어뜨리고 미국 시장과 수출 시장에서 미국 기업을 불리하게 만든다고 주장했다.
제이미슨 그리어 USTR 대표는 미국이 약 100년 동안 강제노동 생산품의 수입을 금지해 왔다며 다른 교역국들도 같은 조치에 동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국의 노동자와 기업이 강제노동을 활용해 생산비를 낮춘 외국 제품과 경쟁하도록 내버려 둘 수 없다는 취지다.
USTR은 지난 3월 한국을 포함한 60개 경제권을 대상으로 무역법 301조 조사를 시작했다. 이후 조사 보고서를 공개하고 서면 의견을 받았다. 이달 7일부터 9일까지는 공개 청문회도 진행했다. USTR은 이 과정에서 약 60명의 증언과 500건의 의견 및 반박 자료를 접수했다고 설명했다.
한국 정부는 미국 현지시간으로 지난 6일 USTR에 제출한 의견서를 통해 12.5% 관세가 한국의 실제 상황에 비해 과도하다는 입장을 전달했다. 주미 한국대사관은 한국에 대한 관세 부과가 적절하지도 필요하지도 않다며 재검토를 요청했다.
이어 9일 열린 공개 청문회에서도 같은 입장을 거듭 밝혔다. 한국 측은 미국이 관세 부과를 강행하더라도 한국에는 더 유리한 대우를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다만 모든 한국산 수출품에 12.5% 관세가 일괄적으로 붙는 것은 아니다. 미국이 국가안보를 이유로 별도 관세를 부과하고 있는 철강과 알루미늄, 자동차와 자동차 부품 등은 이번 관세에서 제외된다.
원유와 천연가스 등 에너지 제품도 면제 대상이다. 비료와 일부 식품 및 농산물도 적용 대상에서 빠진다. 미국·멕시코·캐나다협정(USMCA)의 원산지 요건을 충족하는 제품도 새 관세를 적용받지 않는다.
관세는 해외 상품이 미국에 들어올 때 미국 수입업자가 부담하는 세금이다. 한국 기업이 미국에 제품을 수출하면 현지 수입업자가 통관 과정에서 추가 관세를 내야 한다.
문제는 수입업자가 늘어난 비용을 혼자 떠안지 않는다는 점이다. 한국 수출업체에 납품 가격 인하를 요구할 수 있다. 미국 내 판매 가격을 올릴 수도 있다. 결국 한국 기업의 수익성이 낮아지거나 미국 소비자의 부담이 커질 가능성이 있다.
예를 들어 한국산 제품의 미국 통관 가격이 100달러이고 이번 12.5% 관세가 온전히 적용된다면 수입 과정에서 12.5달러의 추가 비용이 발생하는 구조다. 실제 부담액은 기존 관세와 면제 여부, 제품 분류, 원산지 기준에 따라 달라진다.
대법원이 막은 관세, 다른 법으로 되살렸다
이번 조치가 주목받는 또 다른 이유는 트럼프 행정부가 연방대법원의 제동 이후 새로운 법적 근거를 이용해 관세 정책을 되살렸기 때문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앞서 국제비상경제권한법을 근거로 세계 각국에 광범위한 상호관세를 부과했다. 미국의 지속적인 무역적자를 국가 비상사태로 규정하고 대통령 권한으로 관세를 매겼다.
그러나 미국 연방대법원은 지난 2월 국제비상경제권한법이 대통령에게 관세를 부과할 권한까지 주지는 않는다며 기존 상호관세에 제동을 걸었다. 트럼프 행정부는 이후 1974년 무역법 122조를 근거로 전 세계 수입품에 10%의 임시 관세를 적용했다.
무역법 122조 관세는 최장 150일 동안만 유지할 수 있다. 해당 관세가 24일 종료되자 트럼프 행정부는 이번에는 무역법 301조를 근거로 새 관세를 도입했다.
무역법 301조는 외국 정부의 행위나 정책이 부당하거나 차별적이고 미국 무역을 제한한다고 판단될 때 관세와 같은 대응 조치를 취할 수 있도록 한 규정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첫 임기 때도 이 조항을 활용해 중국산 제품에 대규모 관세를 부과했다.
기존 상호관세와 새 관세는 법적 명분이 다르다. 기존 관세는 미국의 무역적자를 비상사태로 규정했다. 이번에는 다른 나라들이 강제노동 제품의 수입을 제대로 차단하지 않아 미국 기업이 피해를 본다는 논리를 내세웠다.
외신들은 트럼프 행정부가 대법원 판결로 무너진 관세 체계를 무역법 301조를 통해 다시 구축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강제노동 근절이라는 인권 문제를 앞세웠지만 관세 정책을 계속 유지하기 위한 성격도 강하다는 분석이다.
한국 기업에는 관세율 자체뿐 아니라 공급망 관리도 중요한 과제가 됐다. 미국에 제품을 수출하는 기업은 원재료가 어느 국가와 업체에서 생산됐는지 확인해야 한다. 생산 과정에 강제노동이 개입되지 않았다는 점을 증명할 자료도 갖춰야 한다.
제품별 예외 규정과 원산지 기준을 확인하는 작업도 필요하다. 같은 회사의 제품이라도 품목분류 번호와 원재료 구성에 따라 관세 적용 여부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추가 관세 가능성도 남아 있다. USTR은 강제노동 문제와 별도로 각국의 구조적 과잉생산이 미국 무역에 미치는 영향을 조사하고 있다. 과잉생산 조사 결과에 따라 새로운 관세가 추가되면 한국 기업의 부담이 더 커질 수 있다.
한국 정부는 기존 한미 관세 합의에 따른 이익이 훼손되지 않도록 대응하겠다는 입장이다. 한국은 미국의 최종 조치와 품목별 적용 범위를 분석하고 국내 기업에 미칠 영향을 점검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