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 제국주의에 맞선 일본인 아나키스트… 가네코 후미코 서거 100주기, 세종서 평화·인권 빛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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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일 세종시 부강면 가네코후미코 다실 일원서 서거 100주기 추모 위령제 엄수
한일 방문단·지역 주민 등 200여 명 참석… 국경과 이념 뛰어넘은 인류애 되새겨
박열의 동지이자 독립운동가… 세종 부강면 어린 시절 인연과 평화 정신 재조명 과제
[세종=위키트리 양완영 기자] 일제강점기 제국주의의 광기 속에서 일제의 침략 전쟁과 국가 폭력에 정면으로 저항했던 일본인 여성 아나키스트이자 독립운동가, 가네코 후미코(金子文子, 1903~1926)의 서거 100주기를 맞아 그가 유년 시절을 보냈던 세종특별자치시 부강면에서 추모의 물결이 일었다.
세종시(시장 조상호) 부강면은 가네코후미코 선양사업회가 24일 부강면 가네코후미코 다실 일원에서 '가네코 후미코 서거 100주기 추모 위령제'를 개최했다고 밝혔다.
이날 위령제는 일제에 맞서 투쟁하다 옥중에서 요절한 가네코 후미코의 넋을 기리고, 그가 생전에 몸소 실천했던 국경을 초월한 평화와 인권 정신을 다지기 위해 마련됐다.
행사에는 조상호 세종시장을 비롯해 최의헌 부강면장, 지역 주민, 그리고 일본에서 건너온 한일 공동 방문단 등 200여 명이 참석해 묵념과 추모사를 올리며 고인의 숭고한 뜻을 되새겼다.
가네코 후미코의 삶에서 세종시 부강면은 그의 사상적 정체성이 싹튼 결정적인 공간이다.
1903년 일본 요코하마에서 출생한 그는 호적조차 등재되지 못한 비참한 환경에서 자란 뒤, 1912년(당시 10세) 친척이 있던 조선 충북 청원군 부용면(현 세종시 부강면)으로 건너와 약 7년간 거주했다.
부강에서 보낸 유년 시절은 학대와 차별의 연속이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당한 개인적 불행에 머무르지 않고, 일제 경찰과 지주들이 조선인들에게 가하는 참혹한 수탈과 차별을 눈앞에서 목도했다. 특히 1919년 부강 장터에서 일어난 3·1 운동 만세 시위를 직접 목격한 후, "조선인들의 만세 부르짖음은 권력에 대한 저항이자 인간 선언이었다"고 회고하며 일제 제국주의의 비인간성에 강한 회의를 품게 되었다.
이후 일본으로 돌아간 그는 아나키즘 사상에 입문했고, 1922년 운명의 동지이자 남편인 독립운동가 박열(朴烈, 1902~1974)을 만나 '흑도회', '불령사' 등을 조직해 항일 운동에 투신했다.
1923년 관동대지진 당시 일제가 흉흉한 민심을 돌리기 위해 조작한 '일왕 세자 암살 모의 사건(대역사건)'으로 박열과 함께 체포된 그는 사형 선고를 받았다.
비겁한 사면령으로 무기징역으로 감형되었으나, 일제의 회유를 거부하고 1926년 7월 23일 우쓰노미야 형무소에서 23세의 젊은 나이로 의문사(옥사)했다. 정부는 그의 공로를 인정해 2018년 대한민국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
가네코 후미코의 서거 100주기가 갖는 역사적 의의는 단순히 '독립운동가의 부인'이라는 수식어에 갇히지 않는다. 그는 "나는 일본인이지만 일제의 조선 침략과 수탈을 단 한 순간도 인정할 수 없다"며 자국의 국가 권력이 저지른 불의에 타협 없이 저항한 세계 시민적 인권주의자였다.
가네코 후미코의 유해를 경북 문경의 박열의사기념관으로 거두어 가꾸고, 이번 100주기 행사에 한일 양국의 시민사회가 한자리에 모여 추모제 및 학술 교류를 이어간 것은 거친 한일 관계 속에서도 지속 가능한 '민간 평화 연대'의 이정표를 제시한다는 점에서 뜻깊다.
조상호 세종시장은 "가네코 후미코가 남긴 평화와 인권의 정신은 100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우리 모두에게 깊은 울림을 주고 있다"며 "이번 추모 행사가 도심 주민과 부강면 주민이 함께 역사적 자산을 공유하고, 한일 간의 아픈 역사를 극복해 평화로운 미래로 나아가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다만 가네코 후미코와 세종시 부강면의 소중한 인연이 100주기 단발성 기념행사로 휘발되지 않으려면, 지속적인 역사 문화 콘텐츠화 작업이 뒤따라야 한다는 지적이다.
부강역 일대의 유년 시절 거주지 터 복원 및 역사 탐방로 조성, 그리고 청소년들을 위한 '동아시아 평화·인권 교육 프로그램'으로 승화시키는 정교한 행정적 후속 조치가 절실하다.
가네코 후미코 서거 100주기 추모제는 100년 전 일제의 칼날 앞에서도 굴하지 않았던 한 인간의 존엄성과 평화에 대한 열망을 대외적으로 선포한 자리였다. 앞으로의 평가는 단순한 추모식 개최 발표를 넘어, 세종시가 부강면의 역사적 스토리를 동아시아 인권 평화의 성지로 어떻게 다듬고 발전시켜 나가는지 여부에 따라 결정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