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바퀴벌레 사태, 현재 이 정도로 심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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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변화가 부른 재앙... 모기 신고는 되레 줄어
밤이 되자 서울역 인근 공중 보행로 '서울로 7017'의 화단과 벤치 사이가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한 외국인이 '밤에 서울을 산책하면 보이는 것'이라는 제목으로 최근 소셜미디어에 올린 짧은 영상에는 대형 화분 주변을 수십 마리씩 떼 지어 오가는 바퀴벌레가 고스란히 담겼다. 이 영상이 퍼지면서 온라인이 술렁였다. 서울시가 두 차례 방제 작업에 나섰지만 공원과 골목 곳곳에서 무리를 목격했다는 제보가 이어지고 있다.

'서울로 7017'만의 일이 아니다. 서울 도심 전역이 바퀴벌레의 습격에 몸살을 앓고 있다. 조선일보 25일 보도에 따르면 바퀴벌레를 잡아달라는 민원이 2021년 2379건에서 지난해 1만1789건으로 4년 만에 약 5배로 늘었다. 이 자료를 보면 올해도 지난달까지 6158건이 접수돼 이미 지난해 전체의 절반을 넘어섰다. 바퀴벌레가 가장 왕성하게 움직이는 7~8월이 아직 남은 만큼 지난해 기록을 갈아치울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바퀴벌레는 흔히 '살아있는 화석'으로 불린다. 수억 년을 버틴 비결은 몸 구석구석에 촘촘히 박혀 있다. 우선 감각이 남다르다. 냄새를 맡는 화학수용체 유전자가 다른 곤충을 압도하는 154개, 맛을 느끼는 미각수용체 유전자는 522개로 지금까지 보고된 곤충 가운데 가장 많다. 몇 걸음 떨어진 부스러기 냄새도 놓치지 않는다는 뜻이다.
먹성은 그 감각을 그대로 뒷받침한다. 바퀴벌레는 밥·빵 같은 녹말과 단맛을 특히 좋아하지만, 사실상 사람이 먹는 것은 무엇이든 먹는다. 당분과 이스트가 든 맥주에도 꼬이고, 심하면 종이·풀·머리카락은 물론 동료의 사체나 배설물까지 먹어치운다. 그러면서도 신진대사가 느려 아무것도 먹지 않고 한 달가량을 버틴다. 미국에서 흔한 이질바퀴는 굶겨도 3주를 살고 물만 있으면 90일까지 산다. 머리를 잘라도 며칠을 더 살아 움직이는데, 숨구멍이 머리가 아니라 몸통 곳곳에 뚫려 있어서다. 결국 머리가 없어서가 아니라 물을 마시지 못해 말라 죽는 쪽에 가깝다.

몸놀림도 만만치 않다. 위협을 느끼면 몸을 납작하게 눌러 동전 두께의 틈으로 파고들고, 다리 끝에 발톱과 접착 기관을 함께 갖춰 유리처럼 매끄러운 수직 벽도 타고 오른다. 등딱지는 제 몸무게의 900배를 견딜 만큼 단단해 어지간한 힘으로는 짓눌러 잡기도 쉽지 않다. 낮에는 빛을 피해 좁은 틈에 숨었다가 밤에만 움직이는 야행성이라 사람 눈에 잘 띄지도 않는다. 배설물에 밴 '집합페로몬'을 서로 좇아 10~40마리씩 한자리에 모여 사는 습성 탓에, 한 마리가 보였다면 벽 틈 안쪽에는 수십 마리가 도사리고 있을 공산이 크다.
번식력은 이 모든 특성의 정점이다. 암컷은 알 30~40개가 든 알집을 꽁무니에 매달고 다니다가 죽는 순간에도 알집만은 떨궈 종족을 남긴다. 조건만 맞으면 한 마리가 1년 사이 수만 마리로 불어난다. 살충제도 오래가지 못한다. 일부 바퀴벌레는 방제용 독먹이의 단맛 성분을 오히려 쓴맛으로 인식해 입도 대지 않는 쪽으로 진화했다. 어설픈 약제 남용이 되레 약에 강한 '슈퍼 바퀴'를 키우는 셈이다. 국내에서 가장 흔한 종도 이름과 달리 미국산 이질바퀴가 아니라 독일바퀴와 집바퀴다.
그저 징그러운 데서 그치지 않는다. 바퀴벌레는 40여 가지 병원균을 옮겨 식중독을 일으키고, 배설물과 벗어놓은 허물은 아토피·천식을 부르는 알레르기 유발 물질이 된다.
이렇게 강인한 바퀴벌레의 개체 수가 최근 부쩍 는 배경으로는 기후변화가 먼저 꼽힌다. 겨울 추위가 누그러지면 야외에서 겨울을 나는 바퀴벌레의 생존율이 올라가고 활동할 수 있는 기간도 길어진다. 기온이 높으면 성장 속도가 빨라져 번식 주기까지 짧아진다. 실제 서울의 연평균 기온은 2022년 13.2도, 2023년 14.1도, 2024년 14.9도로 꾸준히 올랐다. 2024년 수치는 관측 사상 가장 높았다. 여름철 고온다습한 날이 늘면서 바퀴벌레가 좋아하는 조건이 오래 이어진 것이다.
도심 노후화도 한몫했다. 조선일보에 따르면 서울연구원 집계상 2024년 기준 서울 건축물 가운데 지은 지 30년이 넘은 건물은 58.9%에 달했다. 연면적 기준으로도 29.6%였다. 빛을 피해 좁은 틈에 숨는 바퀴벌레에게 낡은 주택가의 갈라진 벽과 어두운 구석은 더없이 좋은 은신처다. 재개발·재건축이 늦어져 노후 주택이 쌓일수록 바퀴벌레가 번지기 쉬운 환경이 된다는 얘기다.
역설적으로 잘 가꾼 조경도 바퀴벌레를 부른다. 공원이나 대형 화분처럼 손질된 녹지는 사람에게만 쾌적한 게 아니다. 숨을 곳과 물기가 넉넉해 바퀴벌레에게도 훌륭한 보금자리가 된다. 보행로마다 대형 화분이 늘어선 '서울로 7017'이 그 대표적 사례다. 서울시도 생활권 주변 녹지가 늘어난 데다 기후변화로 생존율까지 높아지면서 시민 눈에 띄는 일이 잦아진 것으로 보고 있다.
코로나 이후 자리 잡은 배달 문화도 원인으로 지목된다. 음식물이 남은 배달 용기를 골목에 그대로 내놓는 일이 잦아지면서 바퀴벌레의 먹이가 풍부해졌다.
반면 모기 민원은 되레 줄고 있다. 조선일보에 따르면 서울시에 접수된 모기 민원은 2023년 8918건으로 정점을 찍은 뒤 2024년 7901건, 지난해 7270건으로 2년 새 20% 가까이 감소했다. 올해는 지난달까지 2923건이 들어왔다. 모기는 27도 안팎에서 가장 활발하고 32도를 넘는 폭염에는 활동성과 생존력이 오히려 떨어진다. 틈새에 숨어 무더위를 넘기는 바퀴벌레와 달리 모기는 여름 더위에 먼저 지쳐 나가떨어지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