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불빛 안 켜졌다면?… 76년 전 전세를 뒤집은 '한국 1호' 등대 정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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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최초 근대식 등대, 인천 팔미도 등대
인천상륙작전 당시 함대의 길을 밝힌 곳
인천 연안부두에서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가면 인천대교를 지나 작은 섬 하나가 모습을 드러낸다. 팔미도 정상에는 크기와 모습이 다른 하얀 등대 두 기가 나란히 서 있다. 하나는 우리나라 근대 등대 역사의 시작을 알린 옛 등대이고, 다른 하나는 지금도 인천 앞바다를 비추는 새 등대다.

팔미도는 인천항에서 남쪽으로 약 15.7㎞ 떨어진 작은 섬이다. 두 섬이 모래톱으로 이어진 모습이 여덟 팔(八) 자의 꼬리처럼 보여 팔미도라는 이름이 붙었다. 오랫동안 민간인의 출입이 제한됐으나 현재는 연안부두에서 출발하는 유람선을 이용해 들어갈 수 있다.
배에서 바라보는 팔미도는 크고 화려한 섬과는 거리가 멀다. 바위로 이뤄진 해안과 울창한 숲 위로 하얀 등대가 솟아 있다. 섬에 가까워질수록 낮고 오래된 옛 등대와 그보다 높게 세워진 새 등대의 차이가 분명하게 드러난다.

우리나라 근대 등대의 시작
팔미도 옛 등대는 1903년 6월 1일 처음 불을 밝혔다. 우리나라에 세워진 최초의 근대식 등대로, 인천항을 드나드는 선박이 안전하게 항로를 찾도록 돕기 위해 설치됐다. 당시에는 석유등을 사용해 바다를 비췄다.

옛 등대는 둥근 등탑 위에 등불을 밝히는 구조로 지어졌다. 지금의 대형 등대와 비교하면 아담하지만 인천항 진입 항로가 내려다보이는 섬 정상에 자리해 바닷길을 알리는 역할을 맡았다. 이후 전기등과 태양광 발전 시설이 도입됐고 무선표지와 위성항법 관련 설비도 갖추면서 항로표지 기술의 변화를 함께 겪었다.
등대는 100년 동안 인천항을 오가는 배의 길잡이 역할을 했다. 현재는 현역에서 물러났지만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아 국가유산(사적)으로 지정됐다. 등대와 주변 돌담이 잘 남아 있어 우리나라 최초 근대 등대의 모습을 가까이서 살펴볼 수 있다.

인천상륙작전의 길을 밝힌 불빛
팔미도 등대가 한국 현대사의 중요한 장소로 남은 배경에는 1950년 9월 인천상륙작전이 있다. 인천 앞바다는 조수 간만의 차가 크고 항로가 복잡해 대규모 함대가 접근하기 쉽지 않은 곳이었다. 어두운 바다에서 정확한 진입로를 찾는 데 등대의 불빛이 필요했다.
작전을 앞두고 팔미도에 들어간 요원들은 등대를 확보한 뒤 꺼져 있던 불을 다시 밝혔다. 이후 팔미도 등대는 인천으로 진입하는 연합군 함대가 항로를 확인하는 이정표 역할을 했다.
섬에서는 당시 상황을 보여주는 전시물과 관련 자료를 통해 그날의 긴박했던 작전 순간과 등대의 역사적 가치를 한눈에 살펴볼 수 있다.
나란히 선 옛 등대와 새 등대
옛 등대는 2003년 임무를 마치고 곁에 세워진 새 등대에 역할을 넘겼다. 국내 기술로 건립된 새 등대는 높이 26m로, 전망대와 위성항법보정시스템 기준국 등 항로표지 운영에 필요한 시설을 갖췄다.

내부에는 대형 회전식 등명기가 설치돼 있다. 불빛은 50㎞ 밖까지 닿으며 10초마다 한 차례 빛을 내 인천항을 오가는 선박의 안전 운항을 돕는다.
새 등대 옆에는 100년간 바닷길을 밝혔던 옛 등대가 나란히 서 있다. 아담하고 둥근 과거의 등대와 곧게 뻗은 현대식 등대가 대조를 이루며, 한국 등대 기술의 변화를 한눈에 보여주는 팔미도의 대표 풍경을 완성한다.
등대역사관과 숲길도 함께 둘러본다
새 등대 건물에는 팔미도 등대의 역사와 항로표지의 발달 과정을 살펴볼 수 있는 공간이 마련돼 있다. 옛 등대의 건립 배경과 인천상륙작전 당시의 역할을 영상과 모형으로 확인할 수 있다.
섬에 도착한 뒤에는 선착장에서 등대까지 이어지는 탐방로를 걷는다. 길목을 따라 해송과 칡, 담쟁이덩굴, 패랭이꽃 등이 자란다. 코스가 길거나 험하지는 않지만 경사구간과 계단이 이어지므로 걷기 편한 신발을 준비하는 것이 좋다.
섬 체류 시간이 한정된 만큼, 선착장에서 출발해 숲길을 지나 등대와 역사관, 전망 구역을 차례로 둘러보는 순서로 동선을 잡는 것이 효율적이다.

배를 타야 만날 수 있는 팔미도
팔미도는 육로로 연결되지 않아 인천 연안부두에서 유람선을 타야만 갈 수 있다. 배는 연안부두를 출발해 인천대교 아래를 지나 팔미도로 향한다. 섬까지는 약 50분이 걸리며, 이동하는 동안 바다 위에서 연안부두와 인천대교, 오가는 선박들을 차례로 조망할 수 있다.
유람선 운항 시간과 입도 여부는 날짜와 기상 상황에 따라 매번 달라진다. 매일 같은 시각에 출항하지 않으므로 방문 전 운영 홈페이지나 매표소를 통해 출항 시간과 예약 가능 여부를 반드시 확인해야 한다. 바람과 파도가 강하면 운항 일정이 변경되거나 취소될 수 있다.
연안부두에서 이어가는 인천 여행
섬 여행을 마친 뒤에는 유람선이 출발했던 연안부두 주변을 함께 둘러보기 좋다. 팔미도 유람선 매표소가 위치한 해양광장 전망대에 오르면 포구 전경과 서해가 한눈에 들어온다. 인근 인천종합어시장에서는 제철 생선과 꽃게, 조개류 등 싱싱한 수산물을 만날 수 있다.
![[삽화] 기사 이해를 돕기 위해 AI로 제작한 이미지.](https://cdnweb01.wikitree.co.kr/webdata/editor/202607/26/img_20260726213037_3f6dcfad.webp)
식사는 연안부두 밴댕이회무침거리를 찾으면 좋다. 밴댕이에 채소와 양념을 넣어 버무린 회무침을 비롯해 구이와 튀김 등을 판매하는 음식점이 모여 있다. 어시장 주변에서도 제철 회와 다양한 수산물 요리를 맛볼 수 있어 배 시간에 맞춰 식사 일정을 잡기 편하다.
시간 여유가 있다면 월미도와 인천 개항장, 차이나타운까지 동선을 넓힐 수 있다. 팔미도에서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식 등대를 살펴본 뒤 개항장 거리로 향하면 인천항을 중심으로 형성된 근대 도시의 흔적을 이어서 볼 수 있다.

팔미도 여행은 배를 타는 순간부터 시작된다. 인천대교를 지나 섬에 도착한 뒤 숲길을 오르면 서로 다른 시대의 등대 두 기가 모습을 드러낸다. 100년 동안 바닷길을 비춘 옛 등대와 지금도 불을 밝히는 새 등대가 같은 자리를 지키고 있어 인천의 바다 풍경과 근현대사를 함께 만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