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몰랐다... 하이닉스·삼성 주가가 무시무시하게 오른 '뜻밖의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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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펀드 회사 때문이라고?
한국 반도체주가 7월에 급락한 배경에는 미국의 한 신생 헤지펀드가 있다. 이 펀드는 빌린 돈을 크게 얹어 반도체 주식에 투자했다. 그러다 주가가 꺾이자 보유 물량을 대거 내다 팔았다. 이 매도가 SK하이닉스, 삼성전자를 비롯한 국내 반도체주를 끌어내리고 코스피 전체를 짓눌렀다. 그 매도가 멈춘 31일 눌려 있던 증시가 큰 폭으로 반등했다.

문제의 펀드는 시추에이셔널 어웨어니스(Situational Awareness)다. 이 펀드를 만든 사람은 레오폴드 아셴브레너. 오픈AI 연구원 출신으로 독일에서 태어나 15세에 미국 컬럼비아대에 입학하고 19세에 수석 졸업했다. 2024년 AI의 미래를 다룬 장문의 에세이로 주목받은 뒤 그해 펀드를 세웠다. 정식으로 돈을 굴려 본 경력은 없었지만, AI 시대엔 반도체·전력·데이터센터가 핵심이 된다는 논리로 대규모 자금을 끌어모았다.
미국 매체들에 따르면 이 펀드는 올해 상반기에만 수수료를 뗀 뒤 약 439%의 수익을 냈다. 자산 규모도 한때 최대 약 450억 달러까지 불어났다. 그러나 7월 한 달 만에 가치가 약 67% 줄었다. 펀드 자산이 약 450억 달러에서 100억 달러 안팎으로 쪼그라들었다.
문제의 핵심은 레버리지, 즉 빚을 낸 투자였다. 시추에이셔널 어웨어니스는 자기 돈에 빌린 돈을 얹어 최대 4배까지 베팅한 것으로 알려졌다. 자기 자본이 1이라면 4를 굴린 셈이다. 이렇게 빌린 돈으로 투자하면 오를 때는 수익이 몇 배로 불어나지만 내릴 때는 손실도 그만큼 커진다.

이 펀드가 가장 많이 담은 종목 가운데 하나가 SK하이닉스였다. 지난달 반도체주가 급락하자 펀드의 자기 자본이 빠르게 녹았다. 자기 자본이 줄면 빌린 돈의 비중이 상대적으로 커진다. 그러면 돈을 빌려준 쪽에서 담보가 부족하니 더 채우거나 자산을 팔라고 요구한다. 이것이 마진콜(추가 증거금 요구)이다.
마진콜에 몰린 펀드는 갖고 있던 주식을 팔 수밖에 없다. 대규모 물량이 한꺼번에 시장에 나오면 주가는 더 떨어진다. 주가가 떨어지면 펀드 손실이 다시 커지고, 손실이 커지면 또 팔아야 한다. 파는 힘이 하락을 부르고, 하락이 다시 매도를 부르는 악순환이다. 시장에서는 이 과정을 디레버리징이라고 부른다. SK하이닉스가 이 펀드의 최대 보유 종목 가운데 하나였던 만큼 펀드가 쏟아낸 물량은 국내 반도체주와 코스피 전체를 끌어내리는 압력으로 작용했다.
악순환의 고리는 펀드가 통째로 팔리면서 끊겼다. 시추에이셔널 어웨어니스는 보유 중이던 상장주식 대부분을 켄 그리핀이 이끄는 헤지펀드 시타델(Citadel)에 한꺼번에 넘겼다. 한 곳이 물량을 통째로 받아 가면서 시장을 짓눌러 온 강제 매도가 멈출 것이란 기대가 퍼졌다.
여기에 미국 빅테크의 실적이 반등에 힘을 보탰다. 마이크로소프트는 클라우드 사업인 애저(Azure) 매출이 1년 전보다 43% 늘어 2022년 초 이후 가장 높은 성장률을 기록했다고 밝혔다. AI 투자 계획도 기존 방침대로 유지하기로 했다. 아마존도 클라우드 매출이 시장 기대를 웃돌았다. 앤디 재시 아마존 최고경영자(CEO)는 데이터센터에 쏟아붓는 대규모 투자가 2년 뒤부터 수익으로 돌아온다고 밝혔다. AI 설비 투자가 언제 돈이 되느냐는 시장의 의구심을 누그러뜨리는 발언이었다.
이런 소식이 겹쳐서 뉴욕증시에서 반도체주가 먼저 급등했다. SK하이닉스 미국주식예탁증서(ADR)가 17.52% 올랐고, 마이크론(18.36%), 샌디스크(25.99%), 웨스턴디지털(15.37%) 등 메모리·저장장치 기업이 큰 폭으로 뛰었다. 필라델피아 반도체지수는 8.19% 상승했다. 삼성전자가 컨퍼런스콜에서 D램 물량의 70%를 5년 이상 장기 계약으로 묶었고 2028년에도 공급이 부족할 것이라고 밝힌 점도 힘을 보탰다. 반도체 경기가 이미 고점을 찍었다는 우려를 상당 부분 걷어내는 내용이었다.
억눌렸던 매도 압력이 걷히자 미국 반도체주보다 더 싸게 거래되던 국내 반도체주가 더 가파르게 튀어 올랐다. 7월 31일 SK하이닉스는 상한가인 29.95% 오른 171만8000원에 마감했다. 2015년 6월 코스피·코스닥 가격제한폭이 ±15%에서 ±30%로 확대된 이후 SK하이닉스가 상한가를 기록한 것은 처음이다. 삼성전자도 26.81% 뛴 26만2500원에 거래를 마쳤다. 코스피는 전 거래일보다 1001.89포인트, 17.91% 오른 6595.45로 마감했다. 하루 상승률로는 지수 역사상 가장 높다. 외국인은 이날 SK하이닉스를 3조6061억원어치 순매수했다. 사상 최대 규모다.
이번 반도체주 급락과 반등의 배경에는 국내 시장의 구조 변화도 있다. 한국거래소는 지난 5월 특정 종목 하나에 2배로 베팅하는 단일종목 레버리지 ETF를 처음 도입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 연동된 상품이 잇따라 상장됐고, 상반기 상승장에서 개인 투자자들이 빚을 내 몰렸다. 주가가 꺾이자 이 상품들이 자동으로 손절 매물을 쏟아내며 낙폭을 키웠다. 7월 28일과 29일에는 거래를 일시 중단하는 서킷브레이커가 이틀 연속 발동됐다. 코스피 사상 첫 연속 서킷브레이커였다. 코스피는 7월 19일 장중 9385.59로 고점을 찍은 뒤 7월 29일 장중 5262.77까지 밀렸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7월 30일 SK하이닉스 주식 3620주를 약 48억원에 사들였다. 최 회장이 SK하이닉스 주식을 직접 매입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정부도 시장 변동성을 줄이기 위한 조치에 나섰다. 단일종목 레버리지 ETF에 투자할 때 필요한 최소 예탁금을 기존 1000만원에서 3000만원으로 이날부터 올렸다.
다만 지나친 낙관을 경계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AMD와 엔비디아 등 미국 반도체 기업의 실적 발표, 내년도 D램 수요 향방 등 가격을 크게 흔들 수 있는 변수가 아직 남아 있어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