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냉면 마니아들이 들으면 꽤나 놀랄지도 모르는 '평양냉면의 본래 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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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6년 동아일보에 실린 평양냉면 기사
여름엔 고깃국물, 겨울엔 동치미가 기본
평양냉면을 먹는 데도 ‘정답’이 있다고 믿는 사람이 많다. 국물부터 마셔야 하고, 식초와 겨자는 나중에 넣어야 하며, 면은 가위로 자르면 안 된다고 한다. 육수는 슴슴해야 하고 메밀 향이 분명해야 한다. 너무 달거나 짜면 평양냉면을 제대로 먹을 줄 모르는 사람 취급을 받기도 한다. 그런데 100년 전 평양 사람이 지금 서울의 유명 평양냉면집에 앉는다면 어떨까. 의외로 고개를 갸웃할 가능성이 있다. “이건 평양냉면이 아니다”라고 말할 수도 있다. 적어도 1926년 평양의 냉면을 직접 보고 쓴 신문 기록에는 오늘날 평양냉면을 둘러싼 통념과 다른 모습이 적지 않게 나온다. 물론 이것을 근거로 현재의 평양냉면이 ‘가짜’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오히려 반대다. 100년 전 기록을 들여다보면 평양냉면 자체가 지금 생각하는 것처럼 하나의 고정된 조리법으로 존재했던 음식이 아니라는 사실이 드러난다.

1926년 8월 21일 동아일보에는 ‘평양인상(9) 요리비판―평양냉면’이라는 글이 실렸다. ‘버들쇠’라는 필명을 사용한 기자 유지영이 평양의 음식 문화를 둘러보고 쓴 글이다. 당시 평양냉면이 어떤 음식이었는지를 보여주는 꽤 흥미로운 기록이다.
글의 첫인상부터 지금의 평양냉면과 상당히 다르다. 글쓴이는 서울에서도 국수를 잘 만든다고 하지만 밀가루를 섞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하면서 평양에서는 국수를 ‘순전한 메밀’로 만든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평양냉면에는 고기를 서울보다 “갑절씩이나” 넣는다고 썼다.
오늘날 평양냉면을 떠올릴 때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것은 메밀면과 맑은 육수다. 고명으로 올라간 고기는 몇 점 정도가 전부인 경우가 많다. 고기를 많이 먹기 위해 냉면을 주문하는 음식도 아니다. 그런데 고기의 존재감이 상당했다는 걸 보면 1926년 평양냉면은 달랐던 듯하다.
국물 역시 재미있다. 당시 글은 평양냉면의 육수를 고기를 삶은 국물이라고 설명한다. 서울의 냉면과 비교하면서 평양에서는 고기를 삶아낸 국물을 차게 해서 냉면에 붓는 방식이 훌륭하다고 평가했다.

지금의 ‘평양냉면 공식’과 충돌하는 지점이 생긴다. 요즘 평양냉면 마니아 사이에선 육수의 지나친 고기 맛을 경계하는 경우가 많다. 진하고 자극적인 육수보다 은은한 육향과 메밀 향의 균형을 높이 평가한다. 어떤 집의 육수가 진하다는 이유만으로 평양냉면의 본질에서 벗어났다고 평가하기도 한다. 하지만 100년 전 기록에서 고기 삶은 국물은 평양냉면의 중요한 특징으로 등장한다.
계절에 따라서도 달랐다. 당시 기록에 따르면 여름에는 고깃국물에 국수를 말았고 겨울에는 동치미 국물을 이용했다. 지금처럼 사계절 내내 일정한 육수를 사용하는 방식과는 차이가 있다.
냉면 자체가 원래부터 여름 음식이었다는 생각도 다시 볼 필요가 있다. 냉면은 오히려 겨울 음식으로 유명했다. 조선 후기 세시풍속 관련 기록에서도 냉면은 겨울철 음식으로 등장한다. 차가운 동치미 국물에 메밀국수를 말아 먹는 음식이었고, 평양을 비롯한 서북 지역의 냉면이 이름을 떨쳤다.
오늘날 냉면이 대표적인 여름 음식이 된 것은 자연스러운 변화다. 더운 날 차가운 국물을 찾는 현대인의 식생활과 잘 맞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냉면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여름에 먹는 음식’이라는 설명부터 완전한 것은 아니다.
평양냉면이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전국에 퍼진 과정도 중요하다. 해방과 6·25전쟁을 거치면서 평양 등 이북 지역의 음식점 운영자와 실향민들이 남쪽으로 내려왔다. 이들이 서울을 비롯한 남한 지역에서 냉면집을 열면서 평양식 냉면이 널리 알려졌다. 서울의 유명 평양냉면집 가운데에는 실제로 평양에서 냉면집을 운영했던 집안의 음식이 이어진 경우도 있다.

그러나 음식이 이동한다고 해서 원래의 모습이 그대로 보존되는 것은 아니다. 재료가 달라지고 물이 달라진다. 손님들의 입맛도 달라진다. 냉장·냉동 기술과 식재료 유통 환경도 달라진다. 식당에서 한꺼번에 많은 손님에게 음식을 내기 위한 조리 방식도 달라진다. 결국 같은 이름의 음식이라도 세월이 지나면 맛과 형태가 변할 수밖에 없다. 평양냉면도 그 과정을 거쳤다고 보는 것이 자연스럽다.
오늘날 서울의 평양냉면집을 보면 같은 평양냉면이라는 이름을 달고 있어도 차이가 크다. 어떤 곳은 소고기 육향을 강하게 내고, 어떤 곳은 돼지고기를 함께 사용한다. 동치미 국물의 존재감이 큰 집도 있고 고기 육수의 비중이 높은 집도 있다. 메밀 함량과 면의 질감도 식당마다 다르다.
그런데 평양냉면을 둘러싼 논쟁에서는 이런 차이가 때때로 사라진다. 어떤 사람이 “이 집은 평양냉면인데 육수가 너무 진하다”고 말하면 또 다른 사람은 “그건 평양냉면이 아니다”라고 한다. 식초를 넣으면 안 된다고 하고, 겨자를 넣으면 안 된다고 한다. 면을 자르면 안 되고, 육수를 먼저 마셔야 한다고 한다.
이런 방식의 ‘평양냉면 부심’은 음식의 역사와는 조금 다른 문제다. 특정 식당의 맛을 좋아하는 것은 취향이다. 메밀 향을 섬세하게 느끼고 싶어 아무것도 넣지 않고 먹는 것도 취향이다. 식초와 겨자를 넣지 않는 것도 취향이다. 그러나 그것을 곧바로 100년 전부터 내려온 절대적인 규칙이라고 주장한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1926년의 기록만 봐도 평양냉면은 지금보다 훨씬 다양했다. 순메밀을 강조했고, 고기를 많이 넣었다. 계절에 따라 고깃국물과 동치미 국물을 달리 사용했다. 당시 사람들이 먹었던 냉면이 오늘날 서울의 어느 특정 냉면집과 정확히 같았을 가능성은 오히려 낮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가 먹는 평양냉면은 가짜일까. 그렇게 말할 근거도 없다. 평양냉면이라는 음식이 평양에서 시작해 남쪽으로 전해지고 시대에 따라 변형된 것이라면 지금 서울에서 만들어지는 평양냉면 역시 그 역사 안에 포함된다. 음식은 박물관에 보관하는 유물이 아니라 사람이 계속 만들어 먹으면서 변하는 생활문화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문제는 ‘진짜 평양냉면’이라는 말을 지나치게 좁게 사용하는 데 있다. 현재 서울에서 유행하는 슴슴한 육수와 거친 메밀면의 조합이 평양냉면의 대표적인 한 형태인 것은 맞는다. 하지만 그것이 평양냉면의 유일한 원형이었다고 볼 근거는 충분하지 않다. 특히 1926년 평양을 직접 관찰한 기록에서부터 이미 지금과 다른 모습이 확인된다.
100년 전 평양 사람이 지금의 평양냉면을 먹는다고 해서 반드시 “이건 가짜다”라고 말할 것이라고 단정할 수도 없다. 반대로 지금의 평양냉면 마니아가 1926년 평양의 냉면을 먹는다고 해서 반드시 “이게 진짜다”라고 감탄할 것이라고도 할 수 없다. 그 시절에는 그 시절의 냉면이 있었고 지금은 지금의 냉면이 있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평양냉면을 제대로 먹는 법을 안다는 것과 평양냉면의 역사를 제대로 아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식초를 넣지 않는다고 역사를 더 잘 아는 것도 아니고, 메밀 향을 느낀다고 평양냉면의 본질을 독점하는 것도 아니다. ‘슴슴해야 진짜’라는 현재의 미식 문법을 100년 전 평양의 식탁에까지 거꾸로 적용할 수도 없다. 오히려 오래된 기록이 알려주는 것은 평양냉면이 생각보다 훨씬 자유로운 음식이었다는 사실이다.
오늘날 우리가 먹는 평양냉면은 분명 평양냉면이다. 다만 그것이 100년 전 평양에서 먹던 냉면과 똑같은 음식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그리고 그 차이는 평양냉면이 가짜라는 증거가 아니라 평양냉면 역시 다른 모든 음식처럼 시대와 함께 변해왔다는 증거에 가깝다. 그러니 다음에 평양냉면을 앞에 두고 “이건 진짜 평양냉면이 아니다”라고 단정하는 사람이 있다면 한 번쯤 물어볼 만하다. “1926년 평양냉면은 먹어봤느냐”고. 적어도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평양냉면은 생각보다 오래된 음식이 아닐 가능성이 크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