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고시원에 책상 빼고 욕조 넣어도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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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인 가구 주거 공간으로 변모한 고시원, 규정을 바꿔 현실에 맞춘다
욕조·책상 규정 폐지, 고시원의 생활 공간화를 반영

이제 고시원에 욕조를 놓을 수 있고, 공부용 책상을 두지 않아도 된다.

예전의 ‘공부하는 방’에서 벗어나 실제 생활 공간으로 바뀐 고시원의 현실을 반영한 건축기준 개편이다.

국토교통부는 최근 고시원이 1인 가구의 주거 공간으로 활용되는 사례가 늘고 있는 점을 고려해 다중생활시설 건축기준을 합리적으로 개선하는 방안을 추진한다고 12일 밝혔다. 핵심은 고시원 개별 실에 욕조를 설치할 수 있도록 하고, 지금까지 의무였던 학습용 책상 설치 규정을 없애는 것이다.

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한 AI 생성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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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시원인데 왜 욕조가 허용 안 됐을까?

고시원은 실제로 사람이 먹고 자고 생활하는 공간이지만 법적으로는 일반적인 주택과 다르다. 건축법상 ‘제2종 근린생활시설’에 해당하는 ‘다중생활시설’로 분류된다.

다중생활시설은 여러 사람이 한 건물 안에서 생활하는 시설인 만큼 화재와 피난 등 안전과 관련된 별도의 기준이 적용된다. 현행 기준에 따르면 고시원은 각 실에 화장실과 샤워시설을 설치할 수 있지만 욕조는 설치할 수 없다.

취사시설도 설치가 제한된다. 여기에 책상 등 학습자가 공부할 수 있는 시설을 갖추도록 하는 규정도 있다.

문제는 실제 고시원 이용자의 모습이 과거와 크게 달라졌다는 점이다.

고시원이라는 이름 때문에 여전히 ‘시험을 준비하는 사람이 좁은 방에서 공부하는 곳’을 떠올리기 쉽지만, 최근에는 직장인이나 1인 가구가 월세 부담을 줄이기 위해 선택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국토부가 5년마다 실시하는 주거실태조사에 따르면 2022년 기준 주택 이외의 거처에 거주하는 약 44만3000가구 가운데 고시원·고시텔 등에 사는 가구가 약 15만8000가구로 35.7%를 차지했다. 주택 이외의 거처 가운데 가장 큰 비중이다.

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한 사진 /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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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하려고 고시원에 사는 사람’은 줄었다

고시원을 선택하는 이유를 보면 변화가 더욱 뚜렷하다.

2022년 조사에서 고시원·고시텔 등 주택 이외의 거처를 선택한 이유로 가장 많이 꼽힌 것은 ‘일자리 혹은 학교가 가까워서’였다. 응답률은 69.1%였다.

이어 ‘더 저렴한 월세를 찾기 어려워서’가 32.9%, ‘대중교통 이용이 편리해서’가 29.3%, ‘독립된 개인 공간이 필요해서’가 28.8%로 나타났다. 여러 이유를 선택할 수 있는 중복응답 조사다.

결국 고시원이 더 이상 공부를 위한 공간만은 아니라는 의미다.

직장이나 학교가 가까운 곳에서 잠시 머물 공간을 찾거나, 높은 주거비 때문에 일반 원룸을 구하기 어려운 사람이 선택하는 생활 공간으로 성격이 바뀌고 있는 셈이다.

국토부가 책상 설치 의무를 없애기로 한 것도 이런 현실을 반영한 조치다. 실제 거주자가 공부를 하지 않는데도 모든 방에 학습용 책상을 의무적으로 설치하도록 하는 것은 현재의 이용 형태와 맞지 않는다는 판단이다.

반대로 욕조와 같은 생활·위생시설에 대한 수요는 커질 수 있다는 게 국토부의 설명이다.

현재도 고시원마다 시설 차이가 큰데, 공동 화장실이나 공동 샤워실을 사용하는 곳보다 방 안에 개인 화장실과 샤워시설이 마련된 곳을 선호하는 사람이 있다. 욕조 역시 이런 주거 편의성을 원하는 수요를 고려한 것으로 풀이된다.

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한 AI 생성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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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세 부담 속 ‘개인 공간’ 찾는 사람들

고시원을 선택하는 가장 현실적인 이유 가운데 하나는 역시 주거비다.

특히 서울처럼 원룸이나 오피스텔 월세가 부담스러운 지역에서는 상대적으로 저렴한 비용으로 직장이나 학교와 가까운 곳에 머물 수 있다는 점이 고시원의 장점으로 꼽힌다.

하지만 저렴한 만큼 생활 편의시설을 포기해야 하는 경우도 많다.

방 안에 화장실이 없는 곳에서는 공용 화장실을 사용해야 하고, 샤워실 역시 여러 사람이 함께 이용하는 경우가 있다. 취사시설도 제한돼 식사를 직접 준비하기 어려운 곳이 많다.

이 때문에 같은 고시원이라도 개인 화장실이나 샤워시설이 갖춰진 곳에는 추가 비용을 지불하더라도 들어가려는 수요가 생긴다.

서울 중구에서 고시원에 거주하는 40대 A씨 역시 월수입의 절반에 가까운 48만원을 월세로 내고 있지만 현재 거처를 선택한 이유로 개인 위생시설을 꼽았다.

A씨는 방세가 더 저렴한 고시원의 경우 샤워실이나 화장실을 공동으로 사용하는 경우가 많아 지금의 고시원을 선택했다고 설명했다.

고시원이 단순히 ‘가장 싼 방’을 찾는 공간이 아니라 가격과 위치, 개인 공간, 위생시설 등을 비교해 선택하는 1인 가구의 주거 형태로 변하고 있다는 점을 보여주는 사례다.

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한 사진 /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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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과 무관한 규정부터 손본다

이번 건축기준 개편에서 국토부가 강조하는 부분은 ‘안전과 무관한 규정을 현실에 맞게 바꾼다’는 것이다.

고시원의 화재 안전이나 피난시설처럼 생명과 직결되는 기준을 완화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 거주 형태와 맞지 않는 일부 생활 관련 규정을 조정한다는 취지다.

욕조 설치가 허용되더라도 고시원 전체가 주택으로 바뀌는 것은 아니다. 여전히 법적으로는 다중생활시설이라는 기존 분류가 유지된다.

또 욕조 설치가 의무화되는 것도 아니다. 건축주가 공간과 수요 등을 고려해 설치할 수 있도록 선택권을 넓히는 방식이다. 책상 역시 앞으로 모든 고시원 방에 반드시 설치해야 하는 부담이 사라지게 된다.

국토부는 이번 개정안에 대해 8월 말까지 의견을 받을 예정이다. 이후 관련 절차를 거쳐 이르면 내년 1월부터 새로운 기준을 시행한다는 계획이다.